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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남녀는 결혼을 해야만 하고, 맺어진 부부는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고. 부모와 아이로 이어진 가정이 가장 완전한 상태이기라도 한 양,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아이가 가정을 완성시키고 마침내 행복하게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당장 TV만 봐도 그렇지 않나. 요즘 인기인 채널A 프로그램 <요즘 육아 -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문가조차 혀를 내두르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장 다정한 부모가 될 자질을 갖춘 이들조차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고 만다. 왜 아니겠는가.

TV에서 보이는 아이들이 작은 악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를 때리고, 욕하고, 온갖 방법으로 학대하는 아이들을 볼 때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몇 년 째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온갖 것을 두려워하며 강박적인 행동을 계속하여 주변 모두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다. 일부는 부모와 주변 환경이 문제로 지목되지만, 또 일부는 도무지 문제를 찾을 수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하게 된다. 모든 아이는 선한가. 모든 가정은 행복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 모두가 거대한 거짓말은 아닐까. 아주 어쩌면 말이다.

부모의 잘못 없이도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 행복을 파괴하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누구도 부모를 탓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책 표지
▲ 다섯째 아이 책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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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가 가져온 불행

여기 한 가정이 있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낯설어 보이기까지 하는 가정이다. 1960년대 런던에 터를 잡은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는 어느 모로 보아도 행복한 가정을 이룬 듯 보인다. 여러 아이들이 뛰어놀기 충분한 큰 저택에서 네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이들 부부는 자연스럽게 다섯 째 아이를 갖는다. 가족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던 이 아이는, 그러나 가족의 행복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한 해리엇은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바로 깨닫는다. 그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뱃속에서부터 제 마음대로 엄마인 해리엇을 쥐고 흔들던 아이는 세상에 나온 뒤 제가 가진 야수성을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사랑받고 사랑하던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 그들의 네 아이가 벤의 탄생과 함께 분명한 공포를 겪는다. 그건 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본능적인 인식 때문이자, 벤의 낯설고 폭력적인 행동들 때문이기도 하다.

선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이룬 가정이 행복하리라는 건 여러 문화를 건너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믿음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은 축하할 만한 일이라는 것 역시 다양한 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믿음이다. 그러나 <다섯째 아이>를 쓴 도리스 레싱은 이 같은 믿음이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언제고 단 한 명의 아이가 그와 같은 행복하고 안락한 세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당해내지 못하는 위기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선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해리엇은 벤을 사랑한다. 벤의 형과 누나들에게 그러하듯이, 제 배로 낳은 아이를 본능적으로 아낀다. 하지만 동시에 해리엇은 그를 두려워한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멍한 눈길과 그 안에 깃든 폭력성과 다른 아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에 공포를 갖는다.

해리엇은 벤이 자신과는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한다. 일찍이 멸절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격세유전 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다. 저와 제 남편,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여서 결코 어울리지도 이해하지도 못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의심이 해리엇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벤을 만나본 모두가 정도를 다를지언정 해리엇과 같은 인상을 받는다. 벤의 울부짖음을 들은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해리엇 부부의 파티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나 누구도 벤이 꺼림칙해서 떠나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해리엇은 여러 차례 의사를 찾아 벤에 대한 공포를 털어놓지만 의사들은 벤이 정상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의사들은 모두 해리엇과 같은 공포를 벤에게 느끼면서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벤이 진학한 학교의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벤이 지극히 정상이며 다소 폭력적이거나 집중하지 못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벤이 다르다는 걸 느끼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합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는 선하게 태어난다는 믿음이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책임은 오로지 엄마의 몫?

그러니 책임은 온전히 해리엇의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듯, 누구도 벤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남편인 데이비드조차 점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들도 벤을 제 형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벤의 일탈은 점점 거세지고 마침내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해리엇은 그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모두는 마치 벤이 제 가족이며 이웃이 아닌 양 모른척한다.

도리스 레싱은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환상을 하나씩 깨뜨린다. 남과 다른 한 아이가 완전해 보였던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내보인다. 굳건해 보였던 관계가 무너지고 모든 부담이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그려낸다. 어머니조차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 앞에서 독자들은 저도 모르는 채 외면하거나, 비난하거나, 제 일이 아닌 것에 안도한다. 어쩌면 이 상황의 부조리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엔 남과 다른 많은 아이가 있다. 학업 능력이 뒤처지는 아이, 일탈하는 아이, 어쩌면 선하지 않은 아이, 아예 악하다고 부를 수 있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런 아이를 대할 때 너무나 쉽게 그의 환경이며 가정이며 부모를 탓하는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 하지조차 않으면서 말이다.

2023년 한국에 '다섯째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또 절망하는 해리엇과 외면하는 데이비드는 얼마나 많을지를. 때로 공포스럽고 당해낼 수 없어 보이는 진실을 그러나 우리는 마주해야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정덕애, #민음사,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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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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