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9 11:38최종 업데이트 23.01.09 11:38
  • 본문듣기
"…나는 어른 되면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오빠는 아기 낳는 게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잖아!"

연말에 조카 해님이와 두 살 터울의 오빠가 나누는 대화의 한 대목을 들었다. 멀찌감치에서 음성으로만 듣느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전후 맥락은 알지 못했다. 다만 해님이의 어조가 평소와 다르게 오빠를 힐난하는 듯했다. 

정작 해님이는 잊어버렸을 그 말을 며칠이나 혼자 되뇌었다. 사실은 해님이에게 조금 놀랐다. 2018년에 태어났으니 만 나이를 무시하고 계산해도 올해 겨우 여섯 살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아기나 다름없는데 벌써부터 여성을 '아이 낳는 성별'로 알다니. 여자 아이들은 왜 이렇게 빠를까?
 

ⓒ 게티이미지뱅크

 
6살 여조카에게 하지 못한 말

그러나 특별히 빨라서 안 게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대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온 세상이 해님이 또래의 여아에게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낸다. 주변의 이모들, 친구의 엄마, 동화책 주인공의 엄마까지, 성인 여성의 대부분이 생애 주기에 따라서 아기를 낳는다. 또 친구들과 즐겨하는 엄마아빠 놀이나 여아를 겨냥한 장난감이 끊임없이 여성의 성역할, 그중에서도 엄마의 역할을 강조한다. 


나도 누구의 아내가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엄마가 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린 나이에도 그건 여자인 내가 밟아야 할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또 내 주변에는 '틀에 박힌 성역할에서 벗어난 삶도 있다'고 가르쳐주는 어른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라도 나서서 해님이가 모르는 사실을 일깨워야 했다. 

"고모처럼 아기 낳지 않는 여자도 있는데? 너도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낳지 않아도 돼."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마침 해님이는 외출 준비 중이었고 여성의 다양한 삶에 관해서 설명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아니, 이건 핑계에 불과하다. 진짜 이유는 해님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 애의 작은 머리에서 고모가, 내 예상보다 더 해괴한 별종 카테고리에 분류돼 있을 가능성을 재보느라 바빴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의 사례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아직도 고모는 남자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누군가 집에서 나만 기다린다? 숨이 막힌다! http://omn.kr/20hph) 

'더 자라서 배우는 게 낫겠지….'
골치 아픈 문제를 앞에 두고 '회피'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해님이는 산타를 만나러 가버렸다. 
 

선택 온전한 내 의지, 욕망이 자리 잡을 시간은 주어지지도 않았다. ⓒ 게티이미지뱅크

 
비혼 출산에 성공한 B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친구의 친구인 B가 비혼 출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B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이든 '한다면 하는 여성'이다. 한때 엄마가 "능력이 되거든 혼자 살아라" 하고 마치 당신이 비혼자격승인위원회에 소속된 심의위원인양 비혼의 자격에 관해 운운한 적이 있다. B야말로 바로 그 '능력을 갖춘 여성'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다. 

전해 듣기로, 그는 전부터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낳고 싶어 했다. 오랜 바람이 무서운 추진력과 만나 꿈이 이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최첨단인, B가 거주하는 도시에서는 비혼 출산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라고 한다. 

혼자서 출산을 강행한 B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에게도 비혼을 선택함으로써 출산의 기회까지 함께 사라지는 일이 부당하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내 인생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랑의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건 고민할 것도 없이 내 아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유일함을 향한 욕망이 B가 해낸 비혼 출산까지 치달으면서 그때부터 온통 아이를 부양할 능력에 관해 생각했다. 하물며 비혼으로 사는데도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데(아무도 '능력이 되거든 결혼하라'고 하지 않는다) 비혼 출산은 얼마나 더 엄격한 승인 전차를 밟아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약 오르는 일이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누구를 부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는 동안 몸은 노화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몇 해 전부터 엄중하게 경고했다. 재생산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금이 아니면 유효기간이 끝난 쿠폰처럼 기회는 영영 사라질 거라고. 어떻게든 희박한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는 내 몸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의 길 잃은 욕망은 어디로 갔는가? 놀랍게도 그 욕망은 완전히, 자연적으로 소멸했다. 비혼으로 살면서 나라는 사람에 관해 알면 알수록, 중요한 건 능력 따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욕망의 출처였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나 유능한 B처럼 사회적인 강요가 아니라,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순진한 환상이었다. 지금의 해님이 나이일 때부터 아니, 여아라고 분홍색 리본을 표식처럼 머리에 달고 다니던 때부터 세상은 엄마, 아기, 우리 집, 사랑을 세뇌하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온전한 내 의지, 욕망이 자리 잡을 시간은 처음부터 주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채로 무작정 누군가의 어린 시절로 들어가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유일한 사람이 된 사례는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도 없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나의 부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내놓은 두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화해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큰 걸림돌이었다. 그 손에 길러진 나 또한 부모와의 문제를 겪은 건 물론 자신과도 화해하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불화하고 있다. 
 

부모 나는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로 서툴지만 충실한, 나의 부모가 되기로 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나도 '부모'가 됐다

한 인간이 자신과 화해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아무래도 평생을 다 써도 모자랄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화해와 자기애는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화해가 끝나야 사랑하기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로 서툴지만 충실한, 나의 부모가 되기로 했다.  

그때부터 어떤 일을 선택하기에 앞서서, 나는 태어나지 않은 딸을 생각한다. 그 애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 애에게 어떤 선택을 권할 것인가? 가끔씩 어리석고 자기 파괴적인 선택이 너무나 유혹적일 때 나를 태어나지 않은 딸이라고 생각하면 답은 단순해진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 

언제나 이게 나의 정답이다. 해괴한 별종인들 뭐 어떤가. 다음번에는 해님이에게도 용기 내어 말해야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