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실황

제70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실황 ⓒ Anne-laure Lechat

 
"드뷔시가 살아 생전에 상상이나 해봤을까요? 자신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 악기들로 자신의 작품이 재구성될 것을." 

오는 1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래 '아창제')에서 연주되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희열도II>'를 쓴 이성현(27)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곡은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를 위한 <희열도I>의 관현악 버전이다. <희열도I>은 앙상블 페이즈(Ensemble Phase)의 위촉을 받아 쓴 것인데, 당시 연주회 테마였던 '이음'과 관련해 "고전과 현대를 잇고, 동서양을 의미있게 이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작곡 당시였던 2018년은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가 서거 10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국악관현악을 위한 <희열도II>'는 드뷔시 작품에 담긴 영감, 몸짓, 형식 등을 재구성해 바쁜 도시에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기쁨을 새롭게 재탄생시킨 곡이다. 그래서 도시의 다양하고 극단적인 소리를 작품에 투영시켜 서양 고전의 다양한 요소들을 동양 악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었다.

국악에 관심있던 그가 독일로 유학을 떠난 까닭은?

이성현 작곡가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서 작곡 전공을, 이태리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아에서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현재는 독일 뒤셀도르프 음악대학의 작곡 최고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그가 국악관현악을 위한 곡을 쓴 이력도 독특한데, 지난해 말부터는 서양음악의 본거지인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다. 현재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메일로 그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국악수업을 들으며 우리 악기에 관심을 가졌어요. 서양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공부하며서 20세기까지의 어법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특정한 음색에 초점을 맞춘 현대음악의 경향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국악기의 메커니즘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와 특징적인 짜임새가 서양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우주를 발견한 것이죠."

"이것을 제 음악에 녹여내어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기술은 서양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이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국악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실질적인 경험과 문헌들을 통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양의 현대음악, 특히 유럽의 음악이 세밀한 기보들과 복합적인 짜임새를 통해 작품을 구성하는 반면 국악은 소리의 과정 안에 수많은 변화와 다양한 음색의 전조과정이 포함된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자연스럽게 연주자와 협업해 의견을 교류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많은 국악 연주자들이 새로운 시도와 창작음악에 열려 있는 점도 작곡가로서는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단순히 한국과 서양음악을 섞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음악의 고유성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어릴 적부터 즐겨 연주했던 <기쁨의 섬(L'isle Joyeuse)>(1904년)이 떠올랐어요. 기쁨을 형상화한 다양한 단편, 주제, 몸짓을 국악기 특성에 맞춰 현대적이면서 극단적으로 변용해 색다른 음악을 썼거든요. 작품 속 다양한 소재의 원형을 쉽게 인지할 수 없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주요 메타포인 '기쁨'과 '섬'을 제 삶에 투영해 작품의 전체 아이디어를 채운 것이죠."

작품은 총 다섯 악장이 서로 큰 연관성 없이 섬처럼 떨어져있다. 각 악장의 제목은 '고독', '빠른 기계들', '밤의 간주곡', '그루브 위의 그루브들', '피날레-영원한 춤들'인데, 이것은 고요함과 시끄러움, 휴식과 희열이 공존하는 21세기 서울 밤의 이미지를 담아냈단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국악기만 가질 수 있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끌어낸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필자는 드뷔시와 국악이 어떤 지점에서 연결됐으며, 청중들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비법을 물었다. 

"<기쁨의 섬>에는 이미 다양한 동양 음악과 인도네시아 가믈란 음악의 영향이 섞여 있습니다. 여기에 주목해 드뷔시의 작품 속 다양한 요소들을 해체하고 변주, 변용, 재배합해서 악곡을 구성했어요. 여기에 국악기 조율을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특수주법을 사용해 새로운 소리를 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드뷔시 작품의 인용이 명확히 인지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서양음악을 끌어다가 국악에 편곡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들이 모호하게 뒤섞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뜻이다. 마치 드뷔시가 그의 작품에 동양 음악의 요소와 가믈란 음악을 녹여냈지만, 그 출처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한 것처럼 말이다. 

서양음악 기술을 녹여내 국악 관현악의 가능성 엿봐 
 
 제70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실황

제70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실황 ⓒ Anne-laure Lechat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아창제는 1월 18일에 열리는 국악 부문이다. (2월 1일에는 양악 부문의 공연이 진행된다) 드뷔시를 모티브로 작곡했고, 서양음악을 전공했던 이력도 있지만 그가 국악 부문에 출품한 이유가 궁금했다. 

"국악기 소리에 강한 친밀감을 느꼈어요. 전 세계에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는 서양 관현악보다 국악 관현악에서 탐구할 것이 더 많거든요. 콜론 낸캐로우(Conlon Nancarrow)나 해리 파르취(Harry Partch)와 같은 작곡가들처럼 완전히 유럽 서양음악의 전통과 단절됐지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서양음악과 국악이 자유롭게 뒤섞여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초문화적인 가능성이 열려있는 장르입니다." 
 
그는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 음악저널 콩쿠르, 학생 음협 콩쿠르 등 다수 콩쿠르에 입상했다. 뉴욕과 제네바, 로마, 베를린을 비롯해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SCM 세계현대음악제, 대구 국제현대음악제 등 다수의 국내외 현대음악제와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학업과 작곡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인 지난 20대를 이렇게 되돌아봤다. 

"작품을 생각하고, 쓰고, 준비하고 발표하는 매 순간이 소중합니다. 콩쿠르나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고 향후에 작품 위촉 등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콩쿠르가 목적인 작품은 한 번도 없었어요. 주로 전작들을 고치거나 작품을 쓰다가 콩쿠르 편성에 맞았을 때 출품했어요. 그래서 명성과 상의 값어치보다 그 작품이 연주되는 순간, 그 작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제가 음악적으로 발전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작품의 길이와 난이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게 연주되기 어려운 작품들도 콩쿠르에서는 수준 높게 연주될 수 있는 점도 작곡가에게는 중요하고요."
 
아창제에 대해서도 작곡가로서 실현하기 어려운 대편성 작품을 큰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장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작품이 실제로 연주되는 상황에서 겪는 여러 실패 요소가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하며, 악보에 쓴 여러 요소들이 실제로 상상처럼 작동하지 않았을 때 배우는 점은 어떤 수업보다 값지다고 강조했다. 

2019년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공교롭게 그때부터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강의가 원격으로 바뀌었고, 그는 한국으로 귀국해 온라인으로 원격수업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정말 배우고 싶었던 이탈리아 작곡가인 이반 페델레(Ivan Fedele)와 2년간 수업을 하면서 2021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석사를 졸업했고, 이제 다시 독일로 출국해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현지에서 작곡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아창제 이성현 드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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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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