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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초가 되면 문자로 대출이자 납부 문자가 발송된다.
▲ 대출이자 납부 문자 매달 초가 되면 문자로 대출이자 납부 문자가 발송된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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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였다. 대출이자 상환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확인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 처음엔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의심했다. 분명 전 달과 같은 금액을 이자 상환 통장에 넣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맙소사 금리가 연 3.9%에서 5.58%로 변동되어 납부해야 할 금액이 대폭 상승했다. 부랴부랴 다른 통장에서 돈을 빼서 송금했다.

금리가 오른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경험하니 체감이 확 되었다. 거의 두 달 치 용돈에 가까운 돈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한숨을 넘어 막막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살아보려 발버둥 쳤는데 늘어난 만큼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영혼 끌어모아 집 샀건만 남는 것은 빚뿐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2년 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하며 마음이 덩달아 조급해졌다. 이때를 놓치면 더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란 불안이 옆에서 계속 부채질했다. 운 좋게 분양받은 아파트는 들어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전세를 주고 있었고, 9년 가까이 처가살이 중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커갔고, 성별도 다르기에 각자 방이 필요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아내와 상의 끝에 기존 집을 처분하고, 주택담보 대출을 최대치까지 받아 지금 사는 아파트를 구했다. 평수 넓은 대단지 아파트에서 20년이 넘은 단독 아파트로 바꾼 것이다. 말 그대로 영혼까지 모두 끌어모았다. 그래도 집값이 오를 거란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헛된 꿈에 불과했음을 금방 깨달았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집값은 폭락했고 결국 오른 것은 대출이자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조금 더 버텼어야 했다. 지금 후회해 받자 아무 소용 없었다. 앞으로 고물가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최후의 보루라 여기며 최대한 버텼는데 더는 어쩔 수 없었다. 첫째는 중학생이라 그렇다 치고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둘째도 점차 사교육비가 늘어났다. 월급쟁이의 뻔한 월급에 지출은 계속 증가하니 매달 마이너스를 피할 수 없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더는 감당이 안 되었다.

남들처럼 재테크를 잘하지도 못했다. 그 흔한 주식이나 코인도 해본 적도 없었다. 그 분야엔 젬병이라며 오히려 가만 있어서 돈을 벌었다고 합리화를 했다. 아내는 몇 번 투자하는 것 같더니 별다른 소득이 없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엔 자신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좋아하던 '별다방' 커피 가격이 부담되어 가성비 좋은 무인 카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 동네 무인카페 좋아하던 '별다방' 커피 가격이 부담되어 가성비 좋은 무인 카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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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은 방법은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절약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점심때 밖에서 식사하지 않고, 간단히 집에서 싸 온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시작한 점심 산책이 계속 이어졌고, 처음엔 남은 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끊었다. 밖에서 식사하면 한 끼가 만 원에 육박했다. 한 달이면 20만 원이 넘었다. 비단 식사뿐이 아니었다 식후 마시는 커피도 5천 원이 넘었다. 꾹 참고 사무실에 돌아와 달콤한 커피믹스로 대체했다.  

토요일에는 아내도 일을 하고 아이들은 학원 가랴 친구들 만나랴 사라져서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기 그래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보려고 근처 카페에 종종 갔다. 그런데 평소 애용하던 '별다방'은 커피 한 잔이 웬만한 식사 한 끼였다. 눈물을 머금고 무인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커피값이 1/4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조그마한 테이블도 갖춰져 있어 이용하는 데 불편함도 없었다. 다만 쌉싸름한 그 맛이 그리울 뿐.

곰곰이 생각하니 식비도 문제였다. 가족 모두 식성이 좋아서 주말에 한 번 이상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비싼 배달료에 4인 가족 기준 5만 원은 훌쩍 넘었다. 외식은 물론 그 이상이었다. 당장 끊을 수는 없기 때문에 2주에 한 번 정도만 먹기로 합의했다. 한창 크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다. 강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일단 밀어붙였다.  
 
겨울이면 즐겨 먹던 붕어빵 가격이 많이 올랐다.
▲ 붕어빵 겨울이면 즐겨 먹던 붕어빵 가격이 많이 올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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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와 길을 가다가 붕어빵 가게를 발견했다. 쌀쌀한 날씨에 고소한 냄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작년만 해도 1000원에 3개였는데, 지금은 2000원에 3개였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1년 사이에 두 배가 올랐다. 5천 원어치만 사도 가족 모두 배불리 먹었는데 이제는 맛만 보는 수준이다. 그래도 좋아할 아이들이 떠올라 만 원어치를 샀다. 집에 가는 길에 아내와 이제는 붕어빵도 마음껏 사 먹지 못하겠다며 슬픔을 나눴다.  

새해 첫 출근길에 평소 애청하는 시사 라디오 채널을 켰다.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가지 변화되는 점과 앞으로를 전망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암울했다. 당분간 경제 한파와 고금리·고물가는 지속된다고 예측했다. 우스갯소리로 줄어드는 것은 한국 나이밖에 없다는 말에 씁쓸했다.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말에 어찌 살아야 할지 짙은 한숨이 나왔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지만, 기대보다는 근심과 걱정이 앞섰다. 나아질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늘려야 하나', '아이들 교육비까지는 줄이면 안 되는데 어쩌지', '정말 투잡이라도 뛰어야 하나'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지하철역에 내려 회사로 가는 길이 유독 춥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태그:#고물가, #대출이자, #고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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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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