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3년 새해가 밝았다. 팬데믹 이후 두 번째로 방문하는 목욕탕, 평일임에도 묵은 때를 벗겨내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탕 내부에 붙어 있었으나 대다수가 맨얼굴이었다.

내게는 노마스크를 할 용기가 없었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목욕 바구니에 든 여분의 마스크 두 장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빠른 세안 후 다시 착용한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었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자 마스크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왔다.

마스크 안에 고인 물보다 정작 신경이 쓰이는 대상은 옆에 앉은 할머니였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앞의 수도꼭지가 신경 쓰였다. 할머니가 때를 미는 내내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대야에 물이 끊임없이 흘러넘치는데 할머니는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이 계속 흘러넘쳐요. 제가 잠가 드릴까요?" 용기가 부족해 내뱉지 못한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말을 꺼내지 못할 바에야 눈을 질끈 감기로 했다. 자리를 피해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푹 담갔다. 투명한 통창으로 바짝 마른 다랭이논이 눈에 들어왔다.

봄에는 저 논에 찰방찰방 물을 채워 모를 심을 것이다. 모내기를 할 즈음엔 물이 부족하지 않아야 할 텐데... 이번 겨울은 가뭄이 유달리 심한 편이었다.

고향집 앞 개천이 생각난다.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이 고여있는 듯 보이는 지저분한 개천이다. 내가 어릴 때는 달랐다. 미꾸라지, 버들치 같은 물고기와 도롱뇽, 다슬기, 가재들이 사는 곳이었다.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산속에 작은 폭포와 깊은 웅덩이도 있었다. 여름에는 물놀이장, 겨울에는 썰매장이 되어 주던 풍요로웠던 개천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말라갔다. 물이 마르면서 개천은 오염되었고 폭포도, 그 많던 생물들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물 때문에 전쟁이 나고 식수가 없어 병에 걸리는 곳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국내에도 유례없는 가뭄으로 단수를 하는 지역이 있다. 지금처럼 물을 펑펑 쓰는 습관은 기후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나부터 하나씩 실천하려고 한다. 씻을 때 가급적 물을 세게 틀지 않는다. 비누칠하는 동안에는 물을 잠그고 양치할 때는 컵을 사용한다. 딸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지금의 아이들이 컸을 때 일상적으로 물 부족을 겪지 않으려면 미리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 절약에 동참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거기! 넘치는 물 좀 잠가 주실래요?

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 동시기고합니다.


태그:#목욕, #온천, #가뭄, #물부족, #물절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