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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빈 자리
 교실의 빈 자리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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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중·고등학교 교실에는 한 반에 50~60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앉아있었다. 지금은 한 반이 20명 정도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저출생으로 인해 학령기 인구가 급감한 탓이다. 담임이 교단에 서면 학생들이 한눈에 다 들어올 인원이다.

예전에 비해 교과 교육과 생활지도를 하기에 더 효율적이지만, 가끔 교실에 빈자리가 생긴다. 가정과 학교의 보호망을 벗어나 가출과 무단결석을 반복하는 '위기청소년'의 자리다.

어느 촉법소년의 한마디, 말문이 막혔다 

몇 년 전, 내가 보호관찰 지도 감독을 맡았던 촉법소년(13세)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죄명은 절도였다. 소년이 보호관찰 신고를 위해 출석해서 나와 첫 면담을 했다. 판사가 부과한 특별준수사항이 '가출하지 말 것'이니, 앞으로 가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육했다. 소년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살아보셨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의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

소년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집을 나갔고 학교에 무단결석했다. 어머니는 소년이 3살 때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겨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했다. 할머니가 소년을 실질적으로 양육했다. 할머니는 어머니 없이 자란 소년을 측은히 여겨 온정적으로 훈육했다.

일용 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소년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소년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해서 불량교우들과 어울리며 생계형 절도를 저질렀다.

매년 청소년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6만여 명의 소년 범죄자가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판사는 이중 약 70%의 소년에게 사회 내 처우인 보호관찰 처분을 결정한다. 소년원에 수용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가정에서 생활하며 준수사항을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비행성을 교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소년은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순응하며 가정에 충실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하지만, 보호처분 결정 이후에도 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따라서 보호관찰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소년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원호·지원을 하는 것이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은 약 545만 명이다. 전국 초·중·고등학생 중 최근 1년 이내 가출 경험 비율은 3.5%이다. 가출 이유는 부모님과의 문제(61.7%)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학업 문제(15.9%)였다.

따라서 사각지대 위기청소년의 교화·개선은 가정과 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농협 등 유관기관과 기업의 복지재단에서 기부받은 예산으로 소년의 가정을 경제적으로 보살폈다. 쌀과 라면 등 식료품을 원호하고, 소년의 우울증과 할머니의 지병 치료를 위한 의료비도 지원했다. 교육청과 협의해서 경험 많은 학교 교사와 멘토링을 연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년은 불량교우들을 멀리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보호처분 결정 전에는 지각이나 무단결석이 잦았으나,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보호관찰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소년은 지원받은 쌀과 김으로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김치찌개도 끓이고 제육볶음도 만들었다며 밥상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소년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기 위해 방과 후 한식조리학원에 다니도록 학원비를 지원했다.
 
소년이 가족을 위해 차린 밥상
 소년이 가족을 위해 차린 밥상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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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들이 가정과 학교로 돌아가려면 
 
형사사법 접촉 경험이 적고 위법성 및 보호처분에 대한 인식 저조
높은 학생 비율(2022년 촉법소년 1,020명 중 학생 907명, 88.9% 차지)
보호자 및 보호환경의 높은 영향력 
빈약한 대인관계, 미성숙한 사회적 역할,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 학교 부적응, 낮은 준법의식, 낮은 보호력, 심리적 부적응 등

- '저연령 소년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처우실태 및 지역사회 협력방안에 관한 연구' 발췌 (형사정책 연구원, 2020년)

촉법소년을 포함한 상당수 위기청소년은 보호관찰 기간 중 재범 없이 가정과 학교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물론 소년의 의지만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소년 보호관찰은 비행 초기 단계 위기청소년의 가족관계 회복과 학교 적응을 위한 원호·상담 등 회복적 사법을 지향점으로 한다. 

특히 촉법소년은 학생 비율이 높고 보호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점 등을 고려하여 교사(상담교사), 보호자, 보호관찰관, 지역사회 자원이 협업하여 교내·외, 가정의 밀도 있는 지도로 비행을 차단해야 한다. 

언론에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촉법소년 범죄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범죄 원인을 분석하고 복지적 처우를 강화하여 재범률을 낮추고 소년을 가정과 학교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치유·회복적 사법을 현장에서 실현해야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저출산과 인구절벽 시대에 교실의 빈자리를 방치하고 외면해서는 미래가 어둡다. 위기청소년의 상당수는 과거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이들이 가정과 학교에 부적응하고 불량교우와 교제하면서 가해자가 되거나 다른 비행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서적·신체적으로 미성숙하고 저연령 시기에 비행한 촉법소년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그:#촉법소년, #소년법, #소년원, #위기청소년, #비행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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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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