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31 11:36최종 업데이트 22.12.3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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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문물이 있다. 19세기 후반 커피는 서구인들에 의해 근대를 상징하는 문물의 하나로 동아시아에 전해졌다. 일본에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중국에는 영국 선교사들이 그리고 조선에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최초로 전했다. 개항에 이어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열강과의 수교가 이어졌고, 서양인들이 외교관, 의료인, 기술자, 여행자, 무역인 등의 신분으로 개항장인 제물포, 부산, 원산 등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을 통해 신문물 커피가 조선 땅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1884년 1월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으로부터 커피 대접을 받았고, 1884년에 입국한 미국인 의사 호스 알렌은 고종을 알현하기 위해 경복궁을 방문하여 대기하는 동안 커피 대접을 받았다. 궁중에서 외국인 접대용으로 커피를 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1883년도 수출입 일람표에 커피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공식적으로 수입된 커피가 외국인 접대 필요성이 높았던 왕실과 김홍집 등 고위 관리들에게 배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890년대에는 특히 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에서 커피를 마신 기록을 남겼다.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명성황후 치료를 담당했던 미국인 의사 애니 엘러스 벙커, 선교사 언더우드 등이다. 호러스 언더우드와 엘리어스 호튼은 조선에서 만나 1889년 초에 결혼하고 평안도 지방으로 떠난 신혼여행에 커피를 휴대했다. 꿀을 탄 커피를 현지 조선인들과 나누어 마셨다는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조선인 커피 음용 기록

조선사람으로 낯선 음료 커피를 최초로 마신 것은 누구였을까?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최초로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큰 조선인은 1837년 6월 마카오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던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일행이었다. 마카오 주재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제공하는 서양음식을 먹고 생활하였던 이들 조선인들이 식후 음료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퍼시벌 로웰에게 1884년 1월에 커피를 대접한 김홍집이나 동석했던 어대윤, 홍영식 등이 로웰과 함께 커피를 마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궐 주변에서 언제, 어디서, 누가 커피를 최초로 마셨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커피를 처음 접한 일본인들이 주로 그 맛이 거북하였다는 기록을 남겼던 것에 비해 조선인들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쓴맛이 있는 숭늉에 익숙한 조선인들에게 설탕이 들어가 달달씁쓸한 커피는 거북하지 않은 맛이었을 수도 있다.

최근 특이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1881년 조사시찰단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민건호라는 인물은 부산감리서 서기가 되었다. 감리서는 외국인의 상업, 개항장의 해관(세관)을 관리·감독하는 관청이다. 감리서의 서기관 민건호는 1883년부터 1914년까지 쓴 일기 '해은일록'에서 1884년 7월 27일 당소의(唐紹儀)로부터 갑비차(甲斐茶, 당시 커피를 지칭한 말)를 대접받았다는 명확한 기록을 남겼다. 당소의는 당시 주조선한성영사였고, 후일 조선총영사와 중화민국 초대 내각총리를 역임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조선인 커피 음용 기록이다.

조선인 중 외국에서 커피를 마신 기록을 남긴 최초의 사례는 개화 지식인 윤치호다. 그가 커피를 마신 기록을 일기에 남긴 것은 1885년 6월이었고, 장소는 중국 상하이였다. 신문물 견학을 위해 1876년부터 여러 차례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일행이 커피를 접했을 수도 있지만 역시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아직 커피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1883년에 미국에 파견되었던 보빙사 일행도 안타깝게 커피 마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이미 커피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음료로 널리 음용되던 때였다. 어디를 가나 커피 향이 진동하고, 상점마다 커피가 넘치던 시절이었다는 점에서 보빙사 일행이 미국 체류 중 커피를 접대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특히 귀국을 보류하고 현지에 남아 유학을 시작한 유길준이나 유럽을 경유하여 귀국한 민영익 일행이 커피를 접했을 것은 분명하다.

최초의 커피 광고, 최초의 베이커리카페

커피가 우리나라 신문 광고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96년이었다. <독립신문> 1896년 9월 15일 자에 독일인 알베르트 골샤키(Albert F. Gorschalki)는 정동에 문을 연 자신의 식품점에서 새로 로스팅한 모카커피 원두를 1파운드에 75센트, 자바커피를 70센트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실었다. 정동이 서양인 밀집 거주 지역이었고, 공사관 거리였던 만큼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었겠지만 조선인들의 출입 없이 사업이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골샤키는 최초의 베이커리카페 또한 열었다. 1897년 3월 20일 자 <독립신문> 영문판에 보면 골샤키는 정동에서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빵을 제공하는 베이커리를 시작했다. 빵 가격은 파운드당 8센트였다. 같은 무게 커피 원두의 1/7 가격이었다. 빵이 저렴한 것이 아니라 커피가 비싼 편이었다. 같은 신문에 좋은 자바 커피 화물이 도착하였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개화기에 외국인을 통해 신문물 커피가 조선 땅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사진은 서울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에서 진행된 '개화기' 플래시몹 퍼포먼스. 2019.3.24 ⓒ 연합뉴스

 
조선 최초의 커피 판매점을 개업한 알베르트 골샤키(Albert Friedrich Gorschalki)는 독일인으로서 개항 초기인 1884년 1월에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무역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1889년에는 또 다른 독일인 사업가인 오커스트 메르텡스라는 인물로부터 누에와 뽕나무 농장을 넘겨받아서 1892년까지 경영하였다.

1895년 초에 서울로 이주하여 바로 위 광고에 나오는 식료품 상점을 열었다. 식료품점에 이어 1897년에 골샤키는 공사관 거리와 가구점 거리가 만나는 사거리, 지금의 정동 미국대사관 관저 북쪽 번화가에 건물을 지어 건물주가 되었다. 이 건물은 임대를 목적으로 한 주거용 건물이었다. <독립신문> 1897년 9월 30일 자에 임대 광고를 실었다.

골샤키는 조선의 식민지화 직후인 1911년부터 1917년 사망할 때까지 제물포에서 펜션을 운영하였다. 그의 부인 이다 골샤키(Ida Wilhelmine Gorschalki)는 남편이 사망한 1917년 독일로 돌아간 후 1922년 9월 15일 현지에서 재혼하였다. 상대는 골샤키 식품점과 골샤키빌딩이 있던 정동에서 독일어학교 교장을 지냈던 요하네스 볼얀(Johannes Bolljahn)이었다. 랑데부 거리 정동에서 싹튼 인연이 뒤늦게 결실을 맺은 셈이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커피 판매점 또한 <독립신문> 광고에 등장하였다. 1899년 8월 31일이었다. 윤용주라는 인물이 새로 개통된 전차의 종점이었던 홍릉역에 다과점(Refreshment Rooms)을 열었는데 이곳에서 차, 커피 그리고 코코아 등을 제공한다는 광고였다. 외국인들을 우대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던 것으로 보아 고객 중에는 내국인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 다른 형태의 업소로 짐작되는 '청향관'이라는 이름의 '가피차' 파는 집 광고가 <황성신문> 1900년 11월 24일, 26일, 27일 자에 연속으로 실렸다. 광화문에 있었다는 것 이외에 이 가피차 파는 집의 성격이나 판매 음료의 내용이 알려진 것은 없다.

1880년대는 커피 역사에서 의미 있는 전환기였다. 1869년 실론섬(현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커피 녹병으로 20년 만에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재배 중이던 커피나무는 거의 전멸하였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1/3이 사라졌다. 커피 가격은 급상승하였고, 커피의 대중화는 주춤하였다. 동아시아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커피 가격이 급상승하였던, 이런 전환기였다. 커피 대중화는 신흥 커피 강국 브라질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유튜브채널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조지 클레이튼 포크지음. 조범종, 조현미 옮김(2021). 화륜선 타고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알파미디어.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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