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0 07:15최종 업데이트 23.02.2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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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는 흙집의 벽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프로 골퍼가 되려고 갈비뼈 3개가 금이 갈 정도로 하루 종일 골프채를 휘두른 것도, 농민이 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구마를 캐는 것도, 흙벽을 만드는 노동에 비하면 그저 율동에 불과할 뿐이다.

기초로 놓은 돌 위에다 흙벽을 세우는 것은 노동의 정수이자 '엑기스'라고 할 만하다. 온종일 흙벽을 쌓다 보면 하루가 이렇게나 긴 것에 놀라고, 사람의 몸에서 땀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 것에 또 놀라게 된다. 그리고 흙집을 짓겠다고 나선 주동자를 온몸과 마음으로 극렬하고 맹렬하게 미워하게 된다.


흙집이 완성되기까지 매 순간, 찰나의 순간 그리고 1초를 8000개로 나눈 한순간인 셔터 속도 1/8000초의 순간까지도 나는 남편이 미웠다. 흙벽을 세우는 과정에 접어들면 흙집 짓기는 돌이킬 수 없는 수순에 이르게 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그저 온몸의 기력을 쥐어짜 내서 하루하루 버텨 내야 한다. 만약 지옥이 건물처럼 구성됐다면, 그 벽은 흙벽으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흙벽에 넣을 낙엽송 나무를 제재소에서 사 와서 다듬고 자를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젠틀한 신사였다. 그런데 흙벽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자 남편은 천하에 보기 드문 개망나니로 변해 버렸다. 몸이 힘들다 보니, 예민해져서 걸핏하면 빨끈빨끈 화를 내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뭐 뀐 놈이 성낸다고 참으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었다.
  

나는 주로 황토를 동그랗게 공처럼 뭉쳐서 남편에게 건네는 일을 했다. ⓒ 노일영

 
반죽이 된 황토를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서 건네면, 황토의 양이 많다느니 하며 남편은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래? 그러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 되겠네!"

내가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집 짓는 현장을 벗어나면, 등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나도 하루 종일 북과 장구만 치면 좋겠다. 책에는 흙벽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지 안 나와 있었다고. 책에 있는 사진을 보면 다들 웃으면서 흙벽을 만들길래 쉬운 줄 알았지. 나도 이런 생지옥이 펼쳐질지 몰랐다고."

흙집의 벽체는 동그란데, 그 흙벽을 만들며 남편과 내 마음은 자꾸만 모나고 있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 후배 하나가 집으로 찾아와 골프와 관련해서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고 간 일이 있었다. 그날 남편과 나는 대판 싸웠다. 자기는 흙벽을 만들며 기진맥진하고 있는데, 나만 골프 얘기를 했다고 삐친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해 줬다.

"아니, 흙집 짓겠다는 걸 허락해 준 것만 해도 내게 고마워해야지. 밤은 나 혼자 다 주웠잖아. 30kg짜리 포대를 메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나는 허리까지 삐끗했다고."
"그래, 혼자서 밤 줍게 한 건 미안해. 그런데 혼자 흙벽 쌓는 건 정말 힘들다고. 옆에서 누가 안 도와주면 이건 그야말로 무간지옥이라고, 해 봐서 잘 알잖아?"

"없어도 될 지옥을 만들어서, 그 문을 연 건 당신이라고!"
"쩝, 뭐 그렇긴 하지만···."


문틀 하나와 창틀 2개를 만들고 흙벽 위에 놓을 때도 상당히 힘들었다. 특히 문틀은 크기가 커서 직각을 맞추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기계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끌과 전동대패를 사용해서 나무를 다듬었는데, 제법 능숙하게 일을 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좀 해 줬다.
  

남편이 기초 돌과 흙벽 위에다 세운 문틀 ⓒ 노일영

 
한옥학교에서 잘 배운 것 같다고 얘기하니, 남편은 오만한 표정으로 건방을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흙벽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마음과 체력의 여유가 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맞장구를 쳐 주며 남편의 손을 미화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남편은 쉴 새 없이 자신을 찬양하며 책에 나온 대로 기초 돌 위에 흙을 10cm 정도 쌓고, 보기 좋게 그리고 직각을 정확하게 맞춰서 문틀을 놓았다.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문틀 작업을 남편이 무난하게 끝내서 정말로 놀랐고, 그래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칭송해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흙벽 쌓기가 땀으로 범벅된, 오롯이 인간의 육체로만 완성되는 노동의 집대성이란 걸 몰랐다.

흙벽 만들기가 건축 행위가 아니라 개고생의 순수한 결정체임을 증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흙벽의 일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벽을 쌓아가는 도중에 창틀 옆의 일부 구간이 U자 모양으로 순식간에 넘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황토에 수분이 많으면 벽체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기초 돌을 놓고, 집짓기를 시작하기 전에 포클레인이 찰흙 정도의 수준으로 황토를 반죽했던 터라 수분 때문은 아니었다. 문제는 벽체를 올리면서 수직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흙벽 작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수평계로 확인했는데도, 이 정도 기울기야 괜찮겠지 하다가, 그냥 벽이 살포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적반하장의 아주 정확하고 모범적인 사례
  

순식간에 무너진 흙벽 ⓒ 노일영

 
남편은 넋을 잃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무너진 흙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남편의 두 손은 부들부들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1톤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철물점에서 사 올 물건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무너진 벽을 수습해서 다시 황토를 깔고 나무를 올려서 벽체를 쌓고 있는데, 남편은 2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더니 읍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무너진 벽체에서 황토를 걷어내 둥글게 공처럼 만들어 쌓으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후회막심이었다. 남편이 흙집을 혼자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막았어야 했다. 늘 혼자서 뭘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뒷감당과 수습은 내 몫일 때가 많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또 속아 넘어가다니···.

무너진 벽체가 거의 다 원상 복구됐을 때쯤 남편은 동네 아재의 트럭을 얻어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기분은 좋아 보였는데, 복구된 벽을 보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적반하장의 아주 정확하고 모범적인 사례였다.

"아니, 내일 내가 이걸 다 복원하려고 했는데, 혼자서 이걸 해 버리면 어떡하냐고."
"됐고. 내일은 내가 쉴 테니까, 혼자서 하면 되잖아."


동네 아재는 제법 그럴듯하게 올라간 흙벽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아재 앞이라서 허세를 부리느라 남편이 화를 낸 게 분명했다. 남편은 아재에게 흙집 짓기의 전문가이자 대가처럼 종알종알 지껄이고 있었다. 책 한 권 읽고 일을 시작한 남편이 내뱉는 말치고는 좀 많이 과했다.

"이렇게 집에까지 태워 주셨는데, 만약에 뭐 아저씨가 흙집을 짓겠다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이 짓을 한 번 더 한다고?' 아재에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저는 절대로 다시는 흙집을 안 만들 거니까, 아재랑 우리 신랑이랑 둘이서만 하세요. 흙벽 쌓다가 보면 저절로 피눈물이 나오는데, 저는 죽어도 다시는 안 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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