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재벌집 막내아들>의 한 장면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의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났다. 원작과 달리 윤현우(송중기 분)가 살아 돌아오고 화분 속에 묻어 둔 USB 스틱이 세상에 나와서 살인사건의 증거가 되었다. 억압된 기억이 소생하고 윤현우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왜 원작의 결말을 배반하면서까지 윤현우를 살렸을까? 윤현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기 답이 있을 것이다. 

1. 주인공 윤현우 

송중기가 맡은 1인 2역, 재벌기업 순양의 회사원 윤현우와 순양 창업주 진양철(이성민 분)의 막내 손자 진도준은 제15화까지는 안경착용 여부와 옷차림으로 구분이 된다. 제16화 시작 부분에서 환자복을 입고 깨어날 때면 윤현우인지 진도준인지 바로 알 수 없다.

그런데 깨어난 사람이 진도준이 아니라 윤현우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윤현우가 재벌 3세 진도준이 되어 환생한다는 판타지 스토리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진도준이 주인공인 세상은 드라마 속의 현실 차원에 있지 않고 드라마 속의 드라마, 즉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꿈으로 밀려난다.

드라마 속에서도 꿈의 차원으로 밀려난 진도준 스토리에서 진도준이란 인물을 주도하는 것은 윤현우다. 윤현우가 진도준이 되어 재벌 순양의 창업자 진양철과 대화한다. 진도준이 하는 서명은 현우의 서명이라는 점도 진도준이란 인물이 궁극적으로 현우라는 점을 확인해 주는 장치다.

윤현우는 또 현우의 세계로도 돌아다닌다. 미행과 비밀 녹음이 넘치는 순양가 사람들도 접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다.

꿈 속에서 재벌 3세 진도준의 본체가 된 현우는 진도준의 지위를 빌려 자신이 현실에서 겪은 그 불행한 순간들을 피해가려 하지만, 불행은 피할 수 없었다.

진도준이 순양 창업주 진양철 회장이 가장 인정하는 손자라든가, 서민영 검사와 연인이었다거나 회장이 되기 직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몇 가지 사실은 드라마 속 현실이 확인해 주지만, 현우의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많은 부분 현우의 이야기다.

어디서 어디까지 드라마 속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꿈 속의 현실일 뿐일지는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진도준이 되어 사는 동안 현우는 20년간 무의식 저 아래로 숨긴, '억압'된 기억으로 접근해 간다.   

2. 윤현우의 과거  

윤현우에게는 작은 음식점을 하는 어머니와 노동운동을 하는 아버지와 동생이 있었다. 부유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IMF와 바이코리아와 기업의 인수합병과 카드 쓰는 사회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경제적 변화 속에서 아버지는 실직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동생은 아프고 아버지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현우는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며 취객들에게 갑질 당한다. 순양에 고졸 사원으로 취직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 같았지만, 회장직 취임을 앞둔 진도준을 살해하는 사건에 엮인다. 

처음부터 공범은 아니었다. 상관의 지시로 트럭을 세우고 내릴 때만 해도 몰랐다. 자신이 몰고와서 세운 그 트럭 뒤에 서 있던 도준의 자동차를 또 다른 트럭이 밀어붙여 자동차 속의 도준이 죽어갈 때, 자신이 살인사건에 가담한 사실을 깨닫는다.  

상관인 주련에게 항의하지만, 회사를 그만 둘 용기는 없었다. 112에 신고하려 하다가, 환히 웃으며 스치는 회사원들을 보며 "남들처럼 살기 위해" 신고를 포기한다.  

그렇게 시작한 순양 회사원 생활 20년 동안 윤현우는 돈을 잘 벌며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지만, 아버지의 무능을 증오한다. 

윤현우는 아직 어둠이 깃든 이른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기업 회계와 증권에 관해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많이 읽어 너덜너덜해진 듯한 진양철 회장의 자서전이 책상에 놓여 있다.

'오너 일가의 지시는 거절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반복하며 20년 순양에 충성해 온 윤현우는 재벌3세 진성준(김남희 분)의 재무담당이 되어 비자금 7억 달러를 찾아오는 업무를 수행한 후 살해 당한다. 

살해 당하는 벼랑 앞에서 윤현우는 자신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은 회사 후배 신대리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신대리는 슬픈 표정을 하고선 윤현우가 가르쳐 준 바로 그 말 '오너 일가의 지시는 거절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너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7일간 사경을 헤매면서 꾸는 꿈은 결국 순양가에서 보낸 20년간의 악몽을 마무리하고 다시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돌아오는 여정이다. 

3. 진양철에서 진도준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윤현우 혹은 진도준이 방문한 진양철 회장 기념관은 진양철 회장의 자서전처럼 윤현우가 진양철 회장을 향해 갖고 있는 애정과 동일시 현상을 반영하는 장치다. 

드라마 속에서 윤현우가 혼수상태에서 꾸는 꿈의 기저에는 창업자 진양철에 대한 동일시, 후계자가 될 뻔한 진도준을 향한 호감과 동일시 감정이 깔려 있다. 이에 더해 자기 가족의 불행을 벗어나게 하고 싶은 윤현우의 희망도 반영된다.  

윤현우가 처음부터 진도준에 대해 모든 것을 기억한 것은 아니다. 혼수 상태에 빠진 7일간의 꿈 속에서 현우는 처음에는 진도준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는 가계도에 사망자로 진도준의 이름이 등장한다. 종국에 가서는 자신이 진도준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20년 동안 '억압'된 기억이 돌아온다. 

20년 전 살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여 무의식에 숨긴 것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이제 오너가에게서 살해당하기까지 하는 충격적인 순간에 억압된 기억이 소생되기 시작한다.

3. 다시 깨어난 윤현우, 억압된 기억의 소생

돌아온 아파트에서 화분에 물을 준다. 식물이 시들어 있다. 진도준 살해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동생을 시켜 화분에 묻어둔 USB 스틱을 꺼낼 때 식물은 다시 녹색을 띄고 있다. 우리들의 주인공 윤현우도 다시 웃기 시작했다.

작가는 진도준보다 윤현우를 내세워 지난 20년 혹은 30년 질주하며 달려 온 한국사회를 돌아본다. 억압된 기억을 소생시켜야 할 사람이 윤현우 한 사람만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작가가 윤현우란 주인공을 통해 추구한 결말은 복수가 아니라 참회와 성찰이었다.
윤현우 송중기 재벌집막내아들 순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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