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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독한 미식가>한 장면. 일본 현지 식당의 메뉴판은 은유적인 한자 표현이 많고 훈음과 독음이 뒤섞여 있어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렵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한 장면. 일본 현지 식당의 메뉴판은 은유적인 한자 표현이 많고 훈음과 독음이 뒤섞여 있어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렵다.
ⓒ TV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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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본에 가면 당황스러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좌우가 뒤바뀐 도로 방향, 동전 지갑이 필수인 현금 선호 문화, 너무 복잡한 지하철 노선, 그리고 일본어 초보들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망한 메뉴판.

많은 이들이 메뉴판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현지를 여행하는데, 관광지가 아닌 지역을 여행한다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음식을 주문하게 되는 우울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메뉴가 한자로 적혀있다면 더욱 그렇다. 한자를 아는 이에게조차 일본 식당의 메뉴 읽기는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다(손으로 쓴 메뉴판은 번역 앱이 안 통할 때도 있다). 일본은 한자를 독음과 훈음, 두 가지로 구분해 읽는 데다 음식 명칭이 은유적인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그 은유적인 표현이 와닿는 것이라면 아! 하면서 무릎이라도 쳤을 텐데, 그럴 리가. 

외국인에게 쉽지 않은 일본어 음식 이름들

한 번은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돈승(豚勝)이라는 한자를 보고 '이게 뭔 메뉴야?' 당황했던 적이 있다. 돼지가 이겼다고? 누구에게? 무엇을? 무엇으로? 거기엔 동사만 있을 뿐 그 어떤 수식어도 없었다. 사실 일본에서 돈가스는 とんかつ 또는 豚かつ처럼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체 왜 이 가게는 굳이 한자로만 돈가스를 표기했던 걸까?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는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돼지가 뭘 어떻게 해서 누구를 이겼단 말인가. 그래서 이긴 돼지가 무슨 음식이 됐냐고! 

나중에서야 그게 돈가스의 한자 표현이라는 걸 알았다. 그 식당의 추천 메뉴가 돈가스라는 건 당연히 몰랐다(당시는 번역 앱이 보편화되기 전인 2015년이었다). 결국 히라가나로 적힌 메뉴를 간신히 읽어가며 알 수 없는 메뉴 하나를 주문했다. 굴튀김이었다. 김치찌개가 맛집인 곳에 가 기어이 된장찌개를 시킨 꼴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일본어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나 볼 걸.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참치회를 간장양념에 재워 밥 위에 올린 데카동은 (鉄火丼) '철화'로 읽히는 한자 때문에 철판구이인 줄 알고 맛도 보지 못했고, 튀김 덮밥인 텐동(天丼)은 하늘=조류=닭고기라고 지레짐작한 탓에 주문했다가 튀김만 잔뜩 먹고 나왔다(텐동과 오야코동을 혼동한 결과다). 

우연히 알게 된 일본요리 '냉노'의 정체
 
토마토, 가쓰오부시에 간장 양념을 더한 일식 냉두부 히야얏코. 두부에 잘 어울리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올려 먹을 수 있다.
 토마토, 가쓰오부시에 간장 양념을 더한 일식 냉두부 히야얏코. 두부에 잘 어울리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올려 먹을 수 있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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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아픔이 떠오른 건 최근 SNS 알고리즘에 냉노(冷奴)라는 두부요리 레시피라 올라와서다. 날카롭게 떠오르는 실패의 기억들. 섬네일이 없었다면 그게 두부요리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냉노. 두부면 두부지 왜 차가운 노예일까. 그 은유의 기원이 뭘까 검색엔진을 뒤져봤다. 

찾아보니 차가운 노예의 이름은 히야얏코. 히야얏코는 얏코 도후라고도 불리는데, 히야(冷)는 차갑다는 의미의 형용사, 얏코(奴)는 일본 에도 시대 말기 사무라이의 하인(노비)을 가리킨단다. 네모나게 썰어 담은 찬 두부의 모양이 하인 의복의 각진 어깨 선을 빗대어 히야얏코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

음, 그러니까 한식으로 치면 총각김치 같은 건가. 총각김치란 이름이 조선시대 미혼 남성이 머리 땋은 모습을 총각무에 비유한 데서 나온 것처럼. 그래도 한국은 뒤에 '김치'라고 친절하게 명사까지 붙여주는데. 누가 지었는지 일본 요리의 이름들은 어딘가 좀 불친절하다. 

이런 장황한 설명까지 곁들여가며 히야얏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맛있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재료도 많이 필요 없다. 무엇보다 가짓수가 무한대로 나올 수 있고 술안주로도 좋다. 모양도 그럴듯해 SNS에 사진 몇 장 남기기에도 딱이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횟집에서 간장에 고춧가루를 타 순두부에 끼얹어주는 밑반찬, 많이 드셔 보셨을 게다. 그것도 일종의 한국식 히야얏코인 셈. 

싸고 간단하며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한 히야얏코
 
쌀식초와 간장을 섞은 양념장에 고수를 올린 일식 냉두부. 만들기도 간단하고 무한대에 가까운 가짓수가 나와 자주 식탁에 올린다.
 쌀식초와 간장을 섞은 양념장에 고수를 올린 일식 냉두부. 만들기도 간단하고 무한대에 가까운 가짓수가 나와 자주 식탁에 올린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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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히야얏코는 간장 양념에 고수 조합이다. 쯔유, 맛술, 설탕 간장, 쌀식초를 섞은 뒤 두부에 끼얹는다. 그 위에 고수를 올린다. 토마토와 가쓰오부시를 올려도 잘 맞는다. 꼭 이렇게 안 해도 된다. 그냥 고명으로 올릴 수 있는 건 다 올려보자. 일본 현지에서는 낫토나 김치를 올리기도 한다. 

단점이 있다면 쓸데없이 맥주를 찾게끔 한다는 것. 그렇다. 사실 히야얏코는 밥반찬을 빙자한 술안주였던 것. 만들기가 워낙 쉽다 보니 아내에게 술상 차려주는 횟수가 그만큼 늘어난다. 이게 다 차가운 노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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