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3년 전 개봉한 <아바타>도 대단했지만 <아바타: 물의 길>(아래 <물의 길>)이 지상에 이어 해양까지 이질감 없이 확장해낸 판도라의 생태계, 손에 물방울이 맺힐 듯한 물의 질감, 세심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광원의 현실감은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CG에 돈을 썼다는 게 거짓말이고 판도라에서 촬영하고 나비족 섭외에 공을 들였을 것'이라는 포털의 베스트 댓글은 제임스 카메론이 여전히 관객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경이로운 창작자라는 고백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야심은 3D, CG라는 스크린의 기술을 뛰어넘어 현 시대를 규정하는 테크놀로지로의 탐험으로 이어진다. <아바타>가 개봉한 2009년은 페이스북, 트위터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사이버 스페이스로 불리던 온라인 공간이 사회성을 겸비한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으로 확장되던 시기다.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던 가상 공간이 사회(Social)라는 실체로 연결되어 폭발적인 것처럼, 실제의 몸과 링크를 통해 연결하는 가상의 몸을 두고 선택해야 했던 <아바타>는 이 놀라운 변화를 예견한 듯 보였다.

<물의 길>이 개봉한 2022년에는 소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조건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9년에는 현실과 사이버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온라인은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은 오프라인이었다. 온라인은 온라인만의 규칙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나 다양한 SNS에 계정을 갖고 있고 활동한다. 온·오프의 일체는 너무 흔한 일이다. 온라인에서 생성한 가상의 인격이 오프라인의 정체성을 강하게 대변하거나 심지어는 뛰어넘는 일도 흔하다. 이제 '부캐'는 열풍이 아니라 일상이다.
 
<물의 길>에서는 제이크와 그레이스 박사뿐 아니라 쿼리치 대령과 그의 부하들도 인간 시절의 기억을 이식받은 아바타로 등장한다. <아바타>에서 겉으로나마 판도라의 나비족과 지구의 인간이 대결했다면 <물의 길>은 같은 나비족끼리의 싸움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나비족과 쿼리치 사이의 차이를 안다. 외형이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신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바타>가 어떤 몸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개인의 이야기였다면 <물의 길>에서는 서로 다른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 간의 갈등이 전면에 등장한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신념의 공동체를 향해
 
이때 신념의 갈등이 나비족과 인간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쿼리치의 추격을 피해 숲 부족을 떠나 난민이 되어버린 제이크의 가족은 산호초 부족에 구호 요청을 한다. 위협을 감수한 산호초부족장의 선택으로 안식처를 얻지만 따가운 시선은 어쩔 수 없다. 나비족이라고 하나 각각 숲과 물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두 부족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 속에서 빠른 이동을 위해 발달한 물 부족의 두꺼운 팔근육, 꼬리에 비하면 숲 부족의 팔과 꼬리는 너무 앙상하다.

심지어 아바타와 나비족의 혼혈인 제이크의 자녀들은 편견 어린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비족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위치와 환경에 따라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극적으로 변한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토루크 막토의 아들, 딸에서 위험을 몰고 온 난민 부부의 사고뭉치 아이들이란 추락을 견뎌내기에 이제 막 10대 중후반이 된 네이티얌, 로아크, 키리, 투크의 정신은 강하지 않다.

제이크의 둘째아들 로아크의 이야기는 교감을 중시하는 나비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잘 보여준다. 로아크는 산호초 부족의 아이들과 친해져 보려 하지만 오히려 큰 위험에 처하고, 부모인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실망시킴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결국 로아크를 비롯한 제이크의 가족은 산호초 부족에게 인정받는다. 로아크의 신념이 그들과 맞닿았던 덕분이다. 
 
 영화 <아바타 물의길> 스틸컷

영화 <아바타 물의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산호초 부족은 고래를 닮은 툴쿤과 영혼의 교류를 한다. 로아크는 위기의 순간 그를 도운 파야칸과 진심을 나눴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지킨다는 신념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결국 파야칸의 도움으로 인간들의 침공을 무찌른다. 로아크의 이런 극적인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에이와의 의지를 믿고 판도라의 생명들과 교감을 나누는 나비족의 교집합이 숲 부족과 물 부족과 겉모습의 차이에서 오는 여집합보다 컸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되는 상황으로 <물의 길>에서 더 심층적인 갈등은 외형이 같은 제이크와 쿼리치에게서 발생한다. <아바타>에서는 인간들은 나비족과 판도라 생명체들의 합동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지구로 퇴각해야 했다. 이때 제이크가 쿼리치 대령을 배신하고, 네이티리에 의해 쿼리치 대령이 죽었다는 사실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끝장을 내야만 끝나는 둘 사이의 악연은 신념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인 탓이다.
 
제이크는 입버릇처럼 '아버지는 지킨다'고 외친다. 제이크가 지킨다는 건 자녀들뿐 아니라 판도라의 생태계, 나비족의 안식처와 일상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인간을 위해 숲을 불태우고 툴쿤을 무자비하게 학살해버리는 쿼리치의 신념과는 철저히 다르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본인의 신념을 꺾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대립할 운명이다. MCU와 달리 한 명의 빌런을 시리즈의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결정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등장하는 빌런마다 신념이 달라서야 제이크와 대결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비족의 물의 길, 인간의 데이터의 길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테마 중 하나로 꼽히는 게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에일리언의 잔혹한 공격성을 보고도 이를 이용하려 진실을 은폐하는 대기업 웨이랜드 유타니(<에일리언2>). 미래에서 온 기계 인간의 잔해를 써먹으려다가 결국 기계의 지배를 받으며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사이버다인(<터미네이터2>). 세계 최대의 배라는 기술에 취해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를 불러온 <타이타닉>까지. 제임스 카메론의 세계에서 기술에 대한 맹신은 곧 처참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반물질 언옵티늄을 얻으려 판도라를 훼손하는 인간도 이 세계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물의 길>은 여기서 숨겨진 테마를 하나 더한다. 바로 타인과의 교감이다. <터미네이터2>에서 T-1000이 용광로에 빠지며 엄지를 추켜세우는 명장면은 인간과 기계의 깊은 정서적 교감의 상징과도 같다. 이외에도 특등석과 3등석으로 나뉘었던 <타이타닉>과 잭과 로즈도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에일리언2>에서는 리플리가 잠시나마 퀸에일리언과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기술 맹신에 대한 이성적 비판과 이질적인 존재와의 진실한 교류라는 감성을 융합시킨 제임스 카메론은 할리우드 흥행의 왕좌를 차지했다.

<아타바> 시리즈도 이런 제임스 카메론의 노선을 따른다. 인간이지만 진정한 나비족으로 인정받은 제이크 설리뿐 아니라 부족장의 딸로 태어나 많은 위기를 헤쳐나갈 네이티리. 자녀세대인 로아크, 키리, 스파이더가 각각 키워나갈 신념의 영역은 때로는 같고 때로는 다르게 합쳐지고 충돌하며 우리의 시선을 판도라에서 뗄 수 없도록 만들 것 같다. 또한 인간 쿼리치의 기억을 이식받아 복수의 화신이 됐지만 아들인 스파이더와의 만남과 교감을 위해 발달한 나비족의 신체로 살아가게 된 아바타 쿼리치의 변화 역시 중요한 변수로 활용될 것처럼 보인다.

겉모습은 같아도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고 외형이 다르지만 누구보다 진한 정서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믿음.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질적인 타인과 무한한 접속의 기회가 생겼지만 편향된 정보취득으로 결국 에코 체임버에 갇혀 고립되고 파편화된 2022년의 우리에게 제임스 카메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물의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산호초 부족의 잠언은 물처럼 흐르는 데이터의 길에도 통한다.
영화 아바타 물의길 제임스 카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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