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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폭염' '역대급 한파'. 매년 갱신하는 기록에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요즘, 소비 트렌드도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환경보호 운동을 트렌디하게 실천하는 '힙환경'이 떠오르고 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제로웨이스트', 소재 선정에서 제조 공정까지 친환경으로 이뤄지는 '컨셔스 패션', 다회용기에 음식을 포장하는 '용기내 챌린지' 등 환경 문제에 맞서 다양한 가치소비를 실현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서도 이전보다 확실한 친환경 실천 방법을 내놓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환경부는 편의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식당에서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기업에서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ESG 경영을 선언하며 환경친화적 기업 활동을 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다만 아직 허울뿐인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환경 경영이 이뤄지기까지는 개선할 점이 많다.

완전한 친환경 실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은 나날이 커지는 반면 겉핥기 수준의 대책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전국 곳곳 생겨나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은 우리가 친환경 삶에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등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천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상점 '산제로상점'을 운영하고, 쓰레기 문제를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하는 이하경 대표를 지난 11월 17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후세에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고 싶다는 그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환경운동가로서 환경에 진심이었고, 또 절박했다.

"제로웨이스트,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은 부모 마음​"
 
이하경 산제로상점 대표. 부천시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산제로상점의 이하경 대표는 상점 운영 뿐만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상점 컨설팅, 환경교육, 재활용 캠페인 등 다양한 환경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하경 산제로상점 대표. 부천시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산제로상점의 이하경 대표는 상점 운영 뿐만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상점 컨설팅, 환경교육, 재활용 캠페인 등 다양한 환경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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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죠.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며 자연과 어울려 사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이란 걸 알았어요.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인식하니 환경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죠."

- 제로웨이스트 상점도 아이에게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고요.

"저희 첫째 아이가 4학년 때 학교에서 쓰레기를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했어요. 아이가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집에 와서 종일 잔소리했죠. 학부모끼리 모였는데 다들 그 문제로 골치를 앓더라고요. 하지만 모두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죠. 아이들이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했어요. 당시 서울에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생겨 다 같이 구경갔는데 그때 번뜩 떠올랐어요.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이들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왔죠."
   
산제로상점에는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 용기에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담아갈 수 있다. 담은 무게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산제로상점에는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 용기에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담아갈 수 있다. 담은 무게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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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제로상점은 어떤 곳인가요?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물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입니다. 지역 내 재활용 가능 자원을 모으고, 재이용하는 곳인 자원 순환 거점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 관련 캠페인과 교육도 진행합니다."

- 산제로상점은 부천시 대안학교 산학교 내에 있습니다. 교내에 상점이 있는 것이 특이해요.

"학교 측에서 상점 공간을 무상제공 했어요. 제로웨이스트 상점 이야기를 하니 쓰지 않는 공간을 내주겠다고 하셨죠. 아이들이 밴드실로 쓰던 유휴공간입니다. 다른 조건은 없었어요. 다만 저희가 수익 중 일부를 학교 재정에 기부합니다. 임대료 부담이 없어 운영에 큰 도움이 돼요."

- 도심 한복판이 아닌 마을에 상점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환경운동 기회를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극받을 기회와 선택할 기회를 주니까요. 이런 곳이 번화가에 몰려 있으면 그곳까지 가야 할 결심이 필요해요. 하지만 동네에 있으면 지나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어요. 일상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산제로 상점 내부 모습
 산제로 상점 내부 모습
ⓒ 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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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로 상점 내부 모습
 산제로 상점 내부 모습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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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물건들을 판매하나요? 

"커피 찌꺼기로 만든 커피 화분, 대나무 칫솔, 수제 비누, 천연 수세미, 맥주병을 업사이클링한 화병 등 다양합니다. 용기를 가져오면 세제, 섬유유연제를 담아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마련돼 있습니다."

산제로상점에서는 산학교 학부모가 만든 제품도 만날 수 있다. 제빵, 재봉, 목공, 뜨개질 등 육아로 이루지 못한 꿈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산제로상점은 '커뮤니티 자원 회수 센터'이기도 하다며,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대감이 쌓이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재활용 시스템에 허점 많다... 개선해 나가야"
 
분쇄된 플라스틱. 플라스틱 방앗간에서는 페트병 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을 분쇄하고 재활용해 새 제품으로 만든다.
 분쇄된 플라스틱. 플라스틱 방앗간에서는 페트병 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을 분쇄하고 재활용해 새 제품으로 만든다.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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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 내 플라스틱 방앗간은 어떤 공간인가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재활용해 새 제품으로 만드는 곳이에요. 비누받침, 책갈피 같은 생활소품을 만듭니다. 버려지는 작은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함으로써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정에서 분리 배출한 생활 폐기물은 '수거-선별-재활용처리' 3단계 처리 과정을 거친다. 이후 재활용품 선별시설에서 재활용 목적과 필요에 따라 자원이 재활용된다. 그러나 수거된 폐기물 중 소형 플라스틱, 이물질이 혼입된 용기 등 약 35%가 선별단계에서 버려진다. 재질별로 선별을 거친 재활용 가능 자원도 최종 단계에서 약 15%가 폐기돼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 1인당 배달음식 플라스틱 사용현황(2021. 10)
 한국소비자원, 1인당 배달음식 플라스틱 사용현황(2021. 10)
ⓒ 윤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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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공공 플라스틱 선별시설에서 처리한 하루 평균 플라스틱 폐기물은 923톤이다. 코로나19 환경의 장기화로 비대면 소비문화가 확산하며 플라스틱 용기 사용은 급증했다. 1회 평균 1인당 2인분을 주문하면, 연간 1인당 배달음식 플라스틱 사용량은 1341개로, 약 11kg이다. 선별 단계에서 절반은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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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방앗간에서 만든 비누받침, 책갈피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만든 비누받침, 책갈피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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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플라스틱에 주목한 이유는?

"재활용되지 못한 작은 플라스틱은 매립하거나 소각해요. 그 과정에서 유해 물질, 발암 물질이 나와 문제가 됩니다.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아 그냥 버려지는 것들이 많아요. 플라스틱 방앗간에서는 플라스틱 재활용 체험도 하는데요, 작은 플라스틱도 자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쓰레기 문제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매립과 소각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강물과 바다로 버려진 플라스틱에 의해 해양생물종의 88%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바다에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회수하기도 어렵고, 작은 조각으로 분해돼 미세 플라스틱이 되면 우리의 식탁 위에 다시 올라온다. 

- 한국은 재활용률이 높은 나라임에도 재활용 시스템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하지만 공공의 개입은 아직 미미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주도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제품이나 포장재 생산자에게 폐기물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을 때 부과금을 주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일회용품 책임을 소비자에게만 묻지 않고, 생산자에게 책임을 물어 쓰레기 저감화를 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해요."

-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적용한 캠페인을 계획 중이라고 들었어요. 무슨 캠페인인가요?

"내년 부천시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와 캠페인을 제로웨이스트로 진행하자고 시에 제안했어요. EPR을 적극적으로 이행하자는 겁니다. 부천시는 행사시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조례를 만들고, 행사 주최사는 제로웨이스트를 염두에 두는 기획을 하고, 시민들은 행사에 개인 텀블러, 다회용기, 에코백을 가져오도록 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에요."

"산제로상점 오래 남아주길"... 정부와 사람들의 관심 필요
 
이하경 대표는 산제로상점이 집 앞 할머니가 세제병을 들고 편하게 방문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하경 대표는 산제로상점이 집 앞 할머니가 세제병을 들고 편하게 방문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윤서연·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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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을 운영하며 환경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혼자 애쓴다는 생각이 들면 힘들어요. 이상기후를 체감하며 문제가 있음을 느끼지만, 사람들이 정작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는 것 같아요. 혹은 알고 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하죠. 우리는 열심히 환경 문제를 알리고 실천하자고 말하는데 변하지 않는 현실에 마음이 아파요. 벽에 대고 소리친다는 생각이 들면 괴리감을 느낍니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시작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 세대가 함부로 산 결과가 미래 세대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해요. 이 일을 할수록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죠."

- 산제로상점 대표로서 꿈꾸는 미래가 있다면요?

"오래 남아서 사람들이 잊지 않고 방문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죠. 많은 제로웨이스트 상점들이 환경적 가치를 실천하고 지역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정부에서도 저희의 노력을 알고 지원을 확장해주길 바랍니다. 친환경 생활이 일상이 되는 것, 그것이 저희의 꿈이자 미래이니까요."

* 산제로상점 이하경 대표 인터뷰 ② 기사 <뚝딱 장난감 고치는 아이들, 얼마나 큰 의미냐면요> ( http://omn.kr/2212t )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윤서연 기자와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에서도 게재됩니다.


태그:#제로웨이스트, # ESG, #환경, #재활용,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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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힘을 아는 기자 윤서연입니다.

산업재해 전문 취재 프리랜서 기자 당신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 블로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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