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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동영 일병, 고 김여상 일병, 고 김우찬 중위, 고 김정운 대위, 고 남승우 일병, 고 박도진 중위, 고 박인주 대위, 고 윤승주 일병, 고 이예람 중사, 고 이종찬 중사, 고 이지명 하사, 고 한진식 병장, 고 홍정기 일병, 고 황인하 하사, 고 박세원 수경.

차례차례 호명됐다. 지난 14일 여의도 국회도서관 B103 소회의실에서 징집됐다가 사망한 군인과 유족의 이름이 순서대로 울려 퍼졌다. 이들의 이름이 나열된 건, 군인권센터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3년에 걸쳐 '군내 인권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회복을 위한 원스톱 지원 사업' 결과 보고에서였다. 

그동안 군인권센터는 삼성전자와 사랑의 열매가 후원하는 '2020 나눔과 꿈' 기금 선정자로 지정돼 군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250회가량 진행했다. 19명의 순직 군인 유가족을 대상으로 자조모임도 10회 열었고, 군 인권침해자 37명에게 5800여만 원의 법률지원금을 지원했다. 1000여 만 원의 의료·약제비도 제공했다.

이날 보고회는 국가가 군 사망사고 유족을 돌봤어야 했지만 그 역할을 하지 않아, 대신 군인권센터라는 시민단체가 지난 3년간 유족과 함께 한 사실이 공유되는 자리였다. 광주와 제주, 철원과 풍기, 영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군에서 자식 잃은 유족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그동안 군인권센터는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을까.
 
지난 14일, '군내 인권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회복을 위한 원스톱 지원 사업' 성과 발표회
 지난 14일, '군내 인권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회복을 위한 원스톱 지원 사업' 성과 발표회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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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유족의 상처를 보듬다

14일 행사는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인사말과 축사로 시작됐다. 연이어 지난 3년간 사업에 참여한 군 사망사고 유족의 소감 발표, 사업의 성과와 입법 및 정책 제안 등의 순서로 이뤄졌다.

임태훈 소장은 "연간 100여 명이 군대에서 죽고 다치고 전역을 한다"라며 "지금까지 국가에서 군 사망사고 유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않아 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계속 싸워주신 유가족 분들께 감사드린다"라며 "이 사업이 끝나지만 앞으로 모금으로 진행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지난 3년간 군인권센터는 군 트라우마 심리상담 프로그램인 '마음결'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 및 제작, 군 사망사고 유족을 대상으로 250회가량 실시했다. 유족을 대상으로 1박 2일 치유 여행 프로그램 '마음통', 유족이 다른 유족과 함께 자식들이 묻힌 국립묘지 현충원을 함께 방문해 상처를 보듬는 '마음곁' 기획 등이 이뤄졌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미숙씨(55,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는 보고회 자리에서 "군 사망사고로 한 달에 15명씩 죽고 있다"며 "군 사망사고가 터지면 국가와 사회가 유족을 나몰라라 한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박씨는 "유족이 각개전투하고 있다"라며 "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 죽고 있음에도 기사 한 줄 제대로 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4일 아침에 경상북도 영주에서 올라온 이순희씨(53, 고 고동영 어머니)는 "사업 내내 군인권센터 간사가 세심하게 보살펴 줬다"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새벽에 올라온 고 김여상 일병의 어머니 박아무개씨(61)도 "이 프로그램 끝 무렵부터 참여했다"면서 "참여 기간 내내 군인권센터의 정성이 느껴졌다"고 소회했다.

보고회 자리에서 군 사망사고 유족의 심리상담을 진행했던 김소명씨는 "해가 질 때 가장 힘들다"라는 유족의 말에 "일상을 파괴하는 트라우마에 집중했다"고 사업 추진 과정과 목표 그리고 느낌을 발표했다.

이에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 사망사고 유족을 더 빨리 모시지 못했다"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그동안 우리 정부가 책임 회피에 급급하여 순직과 국가유공자, 보훈대상자 등급을 나누는데 그쳤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임 소장은 "피해 회복에 더뎌, 결국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2차적 피해를 입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14일, 군 사망사고 유족과 군인권센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아랫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함께한 ‘군 인권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회복을 위한 원스톱 지원 사업 성과 발표회’가 열렸다(출처: 군인권센터)
 지난 14일, 군 사망사고 유족과 군인권센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아랫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함께한 ‘군 인권침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회복을 위한 원스톱 지원 사업 성과 발표회’가 열렸다(출처: 군인권센터)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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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로 태어나 고맙고,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 쉬고 있으렴"
"국방의 의무 다하고 하늘의 큰 별이 된 우리 아들!"


지난 3년간 군인권센터는 '마음곁' 프로그램 일환으로 유족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유족들이 동판과 도장 제작을 놓고 투표해 가로·세로 3cm, 높이 7cm의 '도장'이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군인권센터는 전각가 이주연(50)씨에게 의뢰, 개당 약 2주간의 제작기간이 총 13개의 도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지난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주연씨는 각 도장에 "내 아들로 태어나 고맙고,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 쉬고 있으렴" "국방의 의무 다하고 하늘의 큰 별이 된 우리 아들!" 등의 보고회 자리에서 소개된 유족이 원하는 문구를 도장 측면에 새겼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도장을 제작하며 군에서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돼 힘든 적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이 사업에 참여해 느낀 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유족이 아들 얼굴이 새겨진 도장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볼 때마다, 지난 수고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면서 "비록 이 프로그램이 이번에 끝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되면 계속 참여하고 싶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14일 보고회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진선미, 강훈식, 박주민, 송옥주, 권인숙, 양이원영, 이탄희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군인권센터 ‘마음곁’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작된 고 김여상 일병 도장. "사랑하는 여상아 잘 쉬고 있으렴"이라는 문구가 도장 측면에 새겨져 있다(사진은 유족의 동의를 받아 전각가 이주연 씨가 제공)
 군인권센터 ‘마음곁’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작된 고 김여상 일병 도장. "사랑하는 여상아 잘 쉬고 있으렴"이라는 문구가 도장 측면에 새겨져 있다(사진은 유족의 동의를 받아 전각가 이주연 씨가 제공)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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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인권센터, #군 사망사고,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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