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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이완식.
 소프라노 이완식.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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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은? 호흡이다. 호흡은 곧 생명이고 전신의 신경과 근육, 뼈에 사무치기도 한다. 열기도 하고, 넓히기도 좁히기도 한다. 집약하여 집중하다 보면 파워풀한 소리도 거르고 걸러 최대한 릴렉스 한, 최고 끝점에서 아주 피아니씨모(아주 여리게)한 소리를 자아낼 수도 있다.

연주자의 의도대로 역동적인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 반대되는 테크닉을 동시다발로 펼칠 수 있는 기량을 닦아야만 성악이라는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그 내면에 사랑과 위로 겸손까지 더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지난 10일 삶이 담긴 노래가 나오면 그 노래로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소프라노 이완식씨의 말이다.

지경이 넓은 곳에서 자신의 노래 인생을 강연으로 들려주고 싶다는 그녀는 "이제 제 소개를 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가려운 곳을 제일 잘 긁어줄 수 있는 강사 소프라노 이완식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 무엇보다 기뻐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굉장한 귀여움을 받고 자랐을 것 같은데 어린시절 어땠나?

"우리 아버지는 경찰이셨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 '이 순경'이라고 불렀다. 내 놀이터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지서(현 파출소)였다. 그때는 왜 그리도 사이렌 소리가 자주 났던지. 오밤중에도 자주 위이잉~~~ 들리곤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퇴임지였던 서산시 부석면에서 8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형제들과 함께 살 때는 정말 많이 행복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모두들 출가하다 보니 혼자서 많이 외로워했던 것 같다. 공부도 재미 없었다. 하지만 음악은 너무 재밌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세계는 험하고 먼 길이었다. 고독했던 학창시절 교회 가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이자 전부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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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목회하는 오빠와 히드로공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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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의 교육관은 어땠는지.

"부모님은 항상 우애·화목·성실을 강조하셨다. 특히 한 사람만 잘못해도 부모님은 언니 오빠들까지 모두 다 꾸중을 하며 벌을 세우셨다. 이유는 서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인지 손위 언니 오빠들의 동생 향한 사랑은 유난스럽다.

아버지 얘기를 하니 갑자기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 아버지를 자랑하고 싶다. 아버지는 양재기술이 뛰어나셨다. 형제들 모두 비키니 수영복을 직접 만들어 입혀 주시곤 화분에 물 주는 조루 꼭지를 샘터 위 샤워꼭지처럼 매달아 여름이면 물을 쏟아지게 해주셨다. 그 밑에 고무통을 놓고 물놀이를 즐겼던 우리 형제들.

또 포퍼먼스에도 능하셨고 노래도 잘하셨다. 거기다 외모가 워낙 출중하여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주 멋쟁이로 인기가 많으셨다. 누구보다 마음씨가 착하셨던 우리 부모님. 지금은 저 높은 하늘에서 우리 형제들 우애 있는 모습 보시며 흐뭇해하실 것이다."

- 학창시절 할 수 없던 음악공부를 결혼 후에 했다. 혹시 계기가 있나?

"남편이 음악을 전공했다. 항상 내 소질을 남달리 봐주고 아까워했다. 어느날 그가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권했고 또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했다.

사실 그때 나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며 피아노학원을 했다.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몸과 맘이 어려웠던 시기였음에도 어떻게 학업을 이어나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당시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이 안간다. 항상 남편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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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공포증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무 곳에서나 노래를 불렀다는 소프라노 이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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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지금은 극복했다고 했는데 아직도 많은 분이 무대 공포증이 있다. 비법은?

"한마디로 마인드컨트롤이다.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무대 공포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때로는 무대 한가운데 섰는데 연습 때는 그리도 멀쩡하게 기억나던 가사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 음향이 탈 나기도 했다. 이밖에도 연주 중에 예기치 않은 소소한 일들을 자주 겪었다. 식은땀이 나며 가슴이 터질 듯이 떨렸다. 때로는 발을 움직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처럼 무대 공포증은 약간 공황 증상과 비슷하다. 심장이 막 뛰면 숨이 거칠어진다. 그러다 보니 복식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전주가 시작될 무렵이 이런 증상이 왔다. 그때는 노래를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무 데서나 노래를 불렀다. 식당에서도, 커피숍에 가서도, 공원에 가서도. 몇몇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어도 그냥 부른다. 사실, 클래식은 가요 같지 않게 준비된 곳에서만 노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불러 볼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내 경우엔 담력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누가 날 쳐다보든 안 보든, 들어주든 아니든, 노래에 대한 반응을 보이든 안 보이든 그냥 훈련을 계속했다. 때론 밥 먹다가도 내 노래를 원하면 빼지 않고 그냥 즉석에서 불렀다. 미친 척하고 그 어떤 곳에서도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불렀다. 심지어 산에서는 나무들이 내 관객이라 생각하고 불렀고 바닷가에서는 부딪치는 파도가 관객이겠거니 하고 부르기도 했다.

내가 관객을 압도하지 않으면 관객이 나를 먹어버린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2만 명이든 3만 명이든 내 앞에 앉아 있으면 이 사람들을 내 노래에 다 심취해서 숨을 못 쉬게 할 거다'는 생각을 해가면서 불렀던 것 같다(웃음). 그렇게 하고 나서 무대에 올라갔는데 이런 생각이 먹혔는지 덕분에 떨리는 게 없어졌다. 요즘은 무대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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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자랑 심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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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각자 가진 개성을 서로 맞춰가면서도, 또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 신기하고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도 이 속에서 보람과 함께 힘든 부분도 있을 텐데.

"물론 있다. 혼자서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공연을 한다. 음악은 서로 협력하고 맞추는 것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음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때론 약간의 보이지 않은 질투와 견제가 존재한다. 때때로 음악에 대한 회의감 같은 감정들을 겪는다. 이 속에는 상대방을 눌러야 내가 빛이 난다는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협력하여 함께 내는 화음이 훨씬 아름답다. 그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한참 머리가 복잡해진다. 혼자 하려니 고독하고 여럿이 하자니 사람 냄새가 너무 많이 나고.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의 음악이 자신의 인격을 만든다고. 하지만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현실로 돌아와 보면 어떤 문제에 부딪혀 다시 뒷전으로 숨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악기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서로 도와주고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부드럽게 치유해 줘야 한다. 스스로 양면의 검이 되어 작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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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상하이 한복판에서 애국가를 목청껏 불렀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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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가로서 평소 습관이 있다면 무엇일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따뜻한 물 마셔주고, 시끄럽고 먼지 많은 곳 피한다. 무거운 것 들지 않고 몸 쓰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찬 공기로부터 호흡기와 목을 보호하기 위해 성대에 좋은 음식과 도라지·오미자차를 마신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적이다. 내 성격을 비춰볼 때 걱정거리들을 잘 풀어내지 못하고 그냥 끌어안는 스타일이었다. 어느 순간 인간관계 개선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관계가 편해져야 내 마음이 편하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터득했다.

명예욕도 버렸다. 밑바닥을 경험하고 난 후였다. 그것이 가득 차 있을 때의 노래는 절대 행복하지 않았다.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여 좌절했고 낙심한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신앙이 견고한 힘이 되어 나를 바로 세워줬다.

뭘 하려고 해도 안 되던 것들이 하나님께 다 내려놓으니 백지처럼 비워지더라. 이제는 이렇게 기도한다. '신께서 아직도 나를 쓰실 목표가 남아 있다면 저를 좀 아름답게 써주세요'라는 기도를 한다.

25년간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안 되던 일들이 막 풀려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40~50명 되는 합창단을 보내주셨다. 강의를 하는데 사람들이 열광한다. 나로서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무대 공포증이 있던 내가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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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관 어르신 성악반 수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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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강단에 서서 음악을 지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

"호흡을 가르친다. 결론은 바로 생명이다. 강의를 시작하고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 주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곧 겸손이 절로 나온다.

한때 마음의 우울함이 바닥 저쪽까지 갔었다. 열심히 활기차게 삶을 영위해나가야지 그런 마음이 절대 없었다.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니 치유가 됐다. '생명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를 깨닫게 됐다. 호흡과 생명, 그리고 겸손은 서로 기대야 하는 단어들이었다.

사람들이 굉장히 깊이 공감해 주고 있다. 듣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니까 어찌나 쫄깃쫄깃한지 모르겠다. 다음에는 어떤 단어들이 연결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요즘 같은 삶이면 사계가 언제 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 많은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늘 건강하고 풍요롭기를 이 자리를 빌려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소프라노_이완식, #행복을노래한다, #나의노래나의인생, #서산시종합사회복지관, #성악은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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