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

서울

포토뉴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학처럼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최대한 리드미컬하게, 춤추듯 그렸다. ⓒ 오창환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는 과거 철강과 조선 산업 중심지로 한 때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항구 도시였다. 그런데 철강, 조선업이 몰락하고 환경오염까지 겹쳐 도시의 활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도시 재생에 착수한 빌바오시는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하여, 1997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 탄생한다. 이를 계기로 빌바오시는 쇠락해가는 산업도시에서 관광, 문화도시로 완전하게 변신하였다. 인구 40만 도시에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옛 영광과 명성을 되찾았다. 이후 '한 도시의 세계적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나타내는 말로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 미술관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프랭크 게리(Frank Gehry)다. 그는 1929년에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활동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건축가 중 한 명이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으며, 수직과 수평이 엄격하게 지배하는 건축의 세계에서 기본 원칙을 벗어난듯한 유려한 곡선의 건물로 유명하다.

건축가의 곡선
 
프라하에 있는 댄싱 하우스. 건물 오른쪽이 프레드라면 허리가 잘룩한 왼쪽이 진저일 것이다. ⓒ 오창환

예전에 업무차 체코의 즐린에 간 적이 있다. 즐린은 신발 산업으로 유명한 체코의 작은 도시인데 프라하에서 차로 3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다. 돌아오는 길에 프라하를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게리가 설계한 '댄싱 하우스'에 가봤다.

프라하는 역사가 깊은, 고풍스러운 도시다. 이 건물을 지을 때, 도시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가에 위치한 전위적인 건물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많았는데 당시 체코의 대통령이었던 하벨이 이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지지했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프라하 관광의 명소가 되었으니 이 또한 작은 빌바오 효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랭크 게리는 그 건물을 설계할 때 '프레드와 진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프레드와 진저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인 1930년대에 활동한 최고의 댄싱 듀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를 말한다. 프레드는 올백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한량 이미지이고, 진저는 금발머리의 이웃집 소녀 이미지로 대공황에 지친 미국 관객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콤비로 꼽힌다.

댄싱 하우스를 사진으로 보면 주변 건물과 매우 이질적일 것 같은데 실제로 가서 보면 주변 건물과 나름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찍은 사진이 있다. 요즘 갔으면 스케치를 해 왔겠지만.

대단한 프랭크 게리이지만 빌바오 미술관이 그의 나이 68세에, 댄싱 하우스가 67세에 건축되었고 그 이전에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설계한 난해하고 돈이 많이 드는 건축을 하겠다고 선뜻 나선 건축주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의 전성기는 그 후로 찾아와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가 루이비통 재단의 의뢰를 받아 2014년에 완공한 건물이 루이비통 미술관이다. 파리 외곽 볼로뉴 숲 한가운데 건설된 이 아름다운 건물은 콘크리트 패널과 나무 구조물, 그리고 거대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프랭크 게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깊은 문화적 소명을 상징하는 웅장한 선박을 파리에 설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듯이 그 건물은 거대한 범선을 닮았다. 어찌 보면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설계한 비행체의 날개 같이 보인다. 그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건물이 압구정에 있는 루이비통 메종 서울 건물이다. 2019년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루이비통 판매장이지만, 4층에 에스파스 루이비통(우리말로 '루이비통의 공간')이라는 미술관이 있다. 에스파스 루이비통에서 12월 9일부터 내년 3월 26일까지 미국 화가 알렉스 카츠의 <반향> 전시가 있어서 일찌감치 9일 도슨트 예약을 했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의 전시는 전부 예약제로 운영되며 입장은 무료다.

이것이 럭셔리 라이프! 
 
왼쪽 사진이 루이 비통 메종 전경이고 오른쪽이 4층 에스파스 루이 비통 로비 부분이다. 전시장은 안에 따로 있다. ⓒ 오창환

12시 반에 전시 예약을 했지만 건물을 그리려고 일치감치 집을 나섰다. 12월 같지 않게 따뜻한 날씨다. 이 건물은 길 건너서 봐야지 전체가 보이는데 큰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건물을 가리고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지금이 건물을 그리기에 가장 좋을 때다. 게리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설계할 때 동래 학춤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GQ : 한국의 전통 동래학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들었다. 흰 도포 자락을 너울거리며 학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 춤으로부터. 

프랭크 게리 : 맞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동래학춤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전통 의상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만약에 건축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무용수가 됐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웃음). 내가 춤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조각처럼 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창의성의 시작이다.
(GQ Korea INTERVIEW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의 건물, 2019.12.14)
 
내가 속한 '춤패 연'의 광화문 청계광장 학춤 공연 모습이다. ⓒ 춤패연
 
나도 동래 학춤을 좋아해서 춤 연습도 많이 하고 공연도 하였는데, 건물에 직접 와서 보니 과연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유리 구조물은 정말 동래 학춤의 우아하고 역동적인 동작에서 가져온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건물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나도 최대한 리드미컬하게 춤추듯이 중요한 선부터 그려나갔다. 그 건물의 선을 하나하나 그려가는 것이 마치 그 건물을 만지는 것 같았다.
 
알렉스 카츠의 작품 <검은 개울> ⓒ 오창환
 
스케치를 마치고 예약된 전시를 보러 에스파스 루이비통으로 올라갔다. 루이비통의 공간은 이 건물에서 가장 멋진 부분에 있다. 굵은 파이프가 노출되어 있고, 유리로 된 구조물 안에서 밖을 보게 되어 있다. 알렉스 카츠 전시 첫날에 하는 첫 도슨트였지만 막힘없는 설명이 유익했다. 무엇보다 알렉스 카츠의 작품이 대단했다.

로데오 거리에서 하는 명품 쇼핑도 좋겠지만, 명품 건물에서 명작을 감상하고 게다가 그림까지 그리는 것, 이거야말로 럭셔리 라이프 아닌가!
태그:#프랭크게리, #에스파스루이비통, #알렉스카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