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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선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거리, 시설, 쪽방과 고시원 등지에서 살아가는 홈리스의 삶과 닮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회 단체들로 구성되는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은 그해에 돌아가신 홈리스분들을 추모하고, 사망으로 드러나는 홈리스 인권, 복지의 현실을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들을 진행해 왔습니다. 올해 역시 기획단 내 여성팀, 인권팀, 주거팀, 추모팀을 꾸려 각 의제별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각 팀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기사로 전합니다.[기자말]
지난 7일,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복장’을 이유로 홈리스 당사자의 국회의원회관 출입을 제지한 국회사무처를 규탄하고,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홈리스 차별 진정 기자회견 지난 7일,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복장’을 이유로 홈리스 당사자의 국회의원회관 출입을 제지한 국회사무처를 규탄하고,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한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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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는 것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민간시설에서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장소나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기관에서도 차별행위는 예외 없이 발생한다.

지난 11월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차별 없는 의료실현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장애인, 홈리스, 이주민, 난민, HIV/AIDS 감염인과 같은 의료취약계층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을 드러내고 관련 사례를 공유하여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의료차별의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공청회가 시작할 즈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공청회에 참석하려고 의원회관을 방문한 한 홈리스 당사자가 의원회관 출입구에서 안내실 관계자로부터 출입 제지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관계자는 출입하려면 공청회 주최 측의 확인이 필요하다며 다른 사람들은 거치지 않는 별도의 출입절차를 요구하였다.

공청회 참석 중이던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나와 항의하자, "이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켜 왔기에 확인이 필요했다"며 비로소 홈리스 당사자의 출입을 허가했다. 홈리스를 비롯한 취약계층이 의료 이용 시 겪는 차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자리에서조차 홈리스는 차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홈리스 당사자 현실 외면한 행정 편의주의

홈리스에게는 차별받는 것이 일상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공역사 대합실에 앉아 있어도 유독 홈리스만 검표를 당하고, 표가 없으면 퇴거를 요구받는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겉옷 한두 벌과 칫솔과 같은 일상용품을 들고 다녀도 유독 홈리스의 물품만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강제로 폐기 처리된다. 다른 집단에게는 용인될 수 없는 폭력적인 행위들이 특정 집단에게만 쉽게 가해지는 것을 차별이라고 한다면, 홈리스는 말 그대로 차별받는 존재이다.

홈리스에게는 차별마저 제도화되어 있다. 홈리스 복지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주무부서들은 홈리스 당사자의 현실은 외면한 채 행정의 편의만을 따르는 정책을 양산해내기 바쁘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대유행을 관통하며 맞닥뜨린 정책들은 홈리스가 처한 현실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원기관을 이용하고자 하는 홈리스에게 주 1회 이상 PCR(유전자증폭)검사에 따른 코로나19 음성 결과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매주 '코를 찌르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민간급식시설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공공이 만든 유례없는 조건으로 홈리스는 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열악한 곳으로 밀려났다.
  
울특별시립 쪽방상담소가 작성한 <동행식당 운영 주민 안내문>의 일부
▲ 동행식당 주민 안내문 중 울특별시립 쪽방상담소가 작성한 <동행식당 운영 주민 안내문>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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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업으로 주목받는 '동행식당'도 마찬가지이다. '동행식당'의 이용방법을 소개하는 안내문에는 "2인 이상 식당을 이용해" 달라거나, "타인을 배려하여 개인 청결에 신경"을 쓰라고 되어 있다. 이는 쪽방 주민에 대한 낙인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지자체의 인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낙인이 제도 이용의 조건으로 탈바꿈한 홈리스 복지의 현실을 보여준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이 <약자와의동행위원회 봉사활동>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역 인근의 한 노숙인 급식시설을 방문하였다. 활동가들은 사회적 약자를 봉사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국민의힘을 규탄하고,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피켓시위를 벌였다.
▲ 약자와의동행위원회 봉사활동 규탄 피켓 시위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이 <약자와의동행위원회 봉사활동>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역 인근의 한 노숙인 급식시설을 방문하였다. 활동가들은 사회적 약자를 봉사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국민의힘을 규탄하고,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피켓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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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절차를 밟아야만 일상생활이 허락되는 차별의 현장들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지가 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받는 '주체'가 아닌 시혜와 봉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다'면서 그들이 단순히 일상을 보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차별적 조건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다. 빈곤 당사자를 정말 '위한다'면, 당사자가 빈곤을 겪으며 쌓아온 경험(전문성)과 누구에게도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이유로 통제당하거나 차별받지 않을 주체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기초한 정책을 시행해야만 현행 홈리스 정책 내 만연한 홈리스에 대한 차별을 비로소 철폐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과 배제 위에 행해지는 봉사로는 그들 스스로 빛날 뿐, 약자의 복지를 단 한 뼘도 개선할 수 없음을 정부와 여당은 바로 알아야 한다. 
 
 2022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22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 2022 홈리스추모제 포스터  2022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22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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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입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차별, #홈리스, #노숙, #거리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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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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