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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김형극씨가 조성한 경기도 안성시의 개인 주택 정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11월 6일 김형극씨가 조성한 경기도 안성시의 개인 주택 정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신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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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목적도 결과도 따지지 않고 무언가에 마냥 순수하게 빠져본 적 있는가? 사회에 발을 내딛고 번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아하는 것을 일상으로 실현하는 삶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삶이지만, 현시대에서 좋아하는 것을 미루지 않고 산다는 건 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여기 26년째 '좋아하는 일'을 누리는 이가 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

"우리 집에 다양한 식물이 있잖아요, 그 아이들이 내 발소리를 알아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저 내 생각뿐이라는 걸 알지만, 그만큼 식물들을 사랑한다는 거죠."  

규모가 크진 않지만, 외갓집 같은 정겨움이 묻어나는 정원을 가꾼 김형극(69)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원의 자랑이라는 100년 넘은 감나무 밑으로 큼지막한 감나무 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지만, 김형극씨는 그것조차 정원의 일부라고 여겨 부러 치우지 않는다.

그는 흔히들 이미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마흔 셋의 나이에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그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잊지 않았다. 결국 1996년 멋들어진 감나무에 이끌려 안성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고, 2012년 퇴직을 하기 전까지 수년간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삶을 병행했다.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진 못했지만, 그의 정원에 담긴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높게 평가받아 2015년 경기정원문화대상 동상, 2021년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 대상이라는 수상의 기쁨까지 얻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학 공부와 일본 견학으로 전문성까지 쌓은 그는 자연스럽게 정원 컨설팅 분야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현재 그는 한국생활정원진흥회와 함께 사람들에게 정원을 개방하는 오픈가든을 진행하고 정기적으로 정원문화대상수장자모임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대상을 받은 이후 스스로 '내 정원이 정말로 대상을 받을만한가'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리 크고 잘해놓은 정원을 가도 우리 집처럼 구석구석 사랑과 정성이 느껴지는 곳은 없다는 평가를 받으니 막 힘이 생기더라고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평가도 받지 못했겠죠."

결실을 보기까지 오래 걸렸음에도 김형극씨는 26년 동안 정원에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은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그에게도 정원 일을 좋지 않게 보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정원이 예쁘다고 말해주지만, 그 외 한두 명은 '이거 힘들어서 어떻게 가꿔요', '나는 이런 거 못 해'라는 둥 사서 고생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식물 키워봐야 고생만 한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에요.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일을 만들어서 하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데… 그런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을 일이라고만 여기고 자기들 기준으로 쉽게 말하죠. 나는 이걸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인터뷰 동안 다른 사람을 쫓아갈 필요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모습은 무언가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서 타인이 하는 게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따라서 일을 시작하는 거예요."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일 찾아야

김형극씨는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일단 그 일을 시작하라고 말했지만, 반대로 기본적인 관심조차 없다면 가볍게 일을 시작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해 타인에게 쉽사리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극씨는 "자기가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 즉, 마음에서 우러나는지의 여부가 앞으로의 길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며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나도 모르게 실천하게 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느낌을 받는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아도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고르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 열정을 쏟을 만한 적성에 맞는 일 또한 찾고 싶다 해서 손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그는 "일단 직장에 들어가서 일해보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충분히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내 적성을 너무 성급하게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가을의 운치가 느껴지는 입구와 정원의 상징목 감나무(10월 촬영)
 가을의 운치가 느껴지는 입구와 정원의 상징목 감나무(10월 촬영)
ⓒ 신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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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은 현실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다. 그러나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원 안에서 삶의 이유와 보람을 느껴 온 김형극씨는 여전히 이상적인 미래를 준비한다.

"정원 일이 힘들다기보다, 오히려 '다음엔 어떻게 더 예쁘게 가꾸어 볼까?' 이런 생각만 자꾸 들어요. 내년에 오픈가든으로 방문할 사람들을 위해 들꽃 선물을 하나하나 준비해놨어요.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이 가꾸는 과정에서 생각나더라고요. 나도 발전하는 거겠죠. 모든 게 처음부터 완성되는 게 아니고 서서히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가는 거든요. 나에게는 항상 올해보다 내년에 더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계속 있어요. 지금 심어놓은 나무들이 5년, 10년 후에는 더 멋진 나무가 될 거란 말이에요."

더불어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을 이루고 싶은 것이 그의 한결같은 꿈이다.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정원 문화를 좀 더 많이 알리는 데 많이 기여하고 싶어요. 자연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공간, 풍요로운 삶이 우리나라에 보편화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저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이제는 쉬려고 해도 답답하고 무료해서 한 두 시간도 못 참고 정원으로 나가게 돼요. 거기서 일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요. 정원이란 내 삶의 공간, 내 놀이 공간, 나의 친구죠."

태그:#행복, #정원, #홈가드닝, #식집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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