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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이 되면 누구나 조금은 숙연해진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뒤돌아보면 언제나 부족함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그 누군가가 조용히 한 발자국씩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감동하게 되고, 또한 그 과정이 궁금해질 것이다. 상대방의 진솔한 이야기는 하나하나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소녀 구정란
 
탁 트인 공간과 다소의 소란스러움이 과거를 떠올리기에는 더 좋다.
▲ 구정란 탁 트인 공간과 다소의 소란스러움이 과거를 떠올리기에는 더 좋다.
ⓒ 민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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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산엔청복지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구정란(54)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산청읍 내리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산청을 떠난 적이 단지 7개월뿐이라고 한다. 먼저 그녀는 자신의 여고 시절을 갈등과 반항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형편 때문에 인문계로 진학해서 교육대나 사범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의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상업계로 가며 좌절되고 말았다.

다행히 방황의 시기에 손을 잡아준 선생님들이 있었다. 한문과 전산을 담당했던 신동철 선생님,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안경까지 맞춰주신 2, 3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김영란선생님, 국어 선생의 꿈을 갖도록 영향을 주신 차봉희선생님(올해 9월 돌아가심)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런 선생님들 덕분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상업계 고등학생들의 경연인 주산, 부기, 타자 등의 경남경진대회에서 상업영어 부문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입상자들에게는 졸업 후 은행 등 금융기관 입사에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막상 졸업 시기가 되자 구정란씨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반항심의 표출로 학교에서 금융기관 추천을 했지만 마산에 있는 일반 기업에 취업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어느 여름날,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김영란 선생님이 농협 입사지원서를 들고 기숙사로 찾아왔다. 이렇게 하여 산청을 떠난 8개월의 반항은 막을 내리고 다시 산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산청의 딸이라는 무한 자부심
 
산청문인협회 야외 시화전 사회를 맡은 구정란 사무국장
▲ 시화전 사회 산청문인협회 야외 시화전 사회를 맡은 구정란 사무국장
ⓒ 민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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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에 입사하고 3년 차인 1990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장에 오신 김영란선생님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남편에게 "나중에 정란이는 꼭 대학에 보내주라"고 부탁까지 했으나 주부와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며 7년 동안 사회활동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후 1997년 사회활동을 재개하며, (사)대한한돈협회 산청지부, 산청문화원 등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흔이 되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지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39살 늦깍이로 마침내 진주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제1회 신입생이 되었다. 당시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으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였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산청의 마을과 강을 훑고 다니며, 어르신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청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에 대한 고민과 '만약'이라는 단어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살아가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 앞으로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공부를 더 하고자는 욕심이 생겨 2011년에 진주 경상국립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등록하고 2014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진주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겸임교수직으로 출강하는 기회를 잡았다. 마침내 소녀 구정란의 꿈이었던 선생이 되어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제1회 졸업생이라는 프리미엄을 받아 강단에 서게 된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그녀의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내 인생 내가 꿈꾸는 대로 그리기, 수필가로 등단
 
2022년 장애인의날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표창 수상
▲ 장애인의날 표창 수상 2022년 장애인의날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표창 수상
ⓒ 민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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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구정란씨는 산청문인협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2019년 종합중앙문예지 월간 <시사문단>(6월호)에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수필가로 등단했다. 자전적 에세이 <나의 신, 나의 은사님>에서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것은 어머니와 스승이라고 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내 육신과 영혼을 함께 거두고 키웠으며 언제나 나의 편, 나의 어머니 - 내 삶에 신이 함께 하신다"라는 구절에서 그 절절함이 느껴진다.

2021년 9월에 발표한 <엄마는 강하고, 딸은 무너지지 않는다>에서는 "구순의 엄마는 생의 끝자락에서 무너져가는 자신을 강하게 붙잡고 있고, 반백의 딸은 엄마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라며 연세 드신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이 더욱 깊어졌다.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 대한 애정,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 바쁜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문학성까지 구정란씨의 매력은 긴 이야기만큼이나 끝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지역신문 산청시대와 다음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산엔청복지관, #구정란, #수필가, #사회복지사,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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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대한민국 힐링1번지 동의보감촌 특리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전히 어슬픈 농부입니다. 자연과 건강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배우고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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