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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있는 B 고등학교 홈페이지 팝업창에 '2023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합격자 현황'이 올려져 있다. 이 학교는 팝업창 뿐 아니라 졸업생 현황에도 10여 년 동안 대학별 합격자 수를 탑재해 놓았다.
▲ 학교 홈페이지 팝업창에 대학 합격 현황 올린 특목고 양구에 있는 B 고등학교 홈페이지 팝업창에 '2023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합격자 현황'이 올려져 있다. 이 학교는 팝업창 뿐 아니라 졸업생 현황에도 10여 년 동안 대학별 합격자 수를 탑재해 놓았다.
ⓒ 양구 B고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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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수학능력시험'인 수능이 끝나고 대학들이 속속 합격자를 발표하고 있다. 모든 수험생이 초조하고 힘든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일부 학교 교사들과 동문은 이른바 이름 있는 학교 합격생이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신이 일하거나 졸업한 학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특정 학교 합격 홍보 자제를 요청했다. '다른 학생에 대한 소외감 조성', '학벌주의 부추김', '차별적 문화 조성'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는 시·도교육감의 예방과 적극적 지도·감독과 학교장의 홍보물 게시 자제도 요구했었다. 강원도교육청도 여러 차례 공문을 학교에 보냈다.

우연히 한 공립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2022학년도 대학별 합격자 수' 현황을 보고 말았다. 강원 지역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강원도교육청 지시를 쉽게 무시하는 대표적인 두 개의 학교가 있다. 자립형 사립고(자사고)인 민족사관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인 강원외고이다.

이들 두 학교에 대해서는 2019년 이미 기사를 쓴 바 있다. (관련 기사 : 학교 홈페이지에 서울대 진학자 수 공개하는 고등학교 http://omn.kr/1ky0p) 민족사관고와 강원외고가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입학 현황을 탑재하는 것은 도 교육청도 막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읽힌다. 12월 2일 기자와 통화한 강원도교육청 교육과정 과장도 "민사고와 강원외고는 공립학교가 아니다 보니 공문이 나가도 공립학교처럼 수용이 잘 안 돼 어려움이 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강원지역 고등학교에서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입학 현황을 탑재한 학교는 모두 몇 개나 될까? 특성화고등학교와 대안학교를 제외하고 일반고 84개와 특수목적고 3개 학교(강원과학고, 강원예술고, 강원외고)를 더해 모두 87개 고등학교의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았다.

홈페이지에 대입 현황 올려둔 고등학교들
  
강원지역 고등학교들 가운데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합격자 관련 정보를 올려놓은 고등학교 현황 표이다.
▲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입학 정보 탑재한 고등학교 강원지역 고등학교들 가운데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합격자 관련 정보를 올려놓은 고등학교 현황 표이다.
ⓒ 김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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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홈페이지에 대학 입학 현황을 올려놓은 학교 현황은 위 표와 같다. 강원 지역 87개 학교 가운데 10.34%에 해당하는 9개 학교가 대학별 합격자 수를 올려놓았다. 18개 시·군 가운데 7개 지역으로 38.89%에 해당한다. 설립 유형으로 보면, 사립학교가 6개로 2/3를 차지했으나, 공립학교도 3개나 있었다. 자사고 1개 학교, 외국어고 1개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7개 학교가 일반고였다.
 
강릉에 있는 A고등학교는 학교 홈페이지 학교 현황 코너에 대학별 합격자 수를 올려놓았다.
▲ 학교 현황 자료에 대학별 입학 자료 올려놓은 공립 고등학교 강릉에 있는 A고등학교는 학교 홈페이지 학교 현황 코너에 대학별 합격자 수를 올려놓았다.
ⓒ 강릉 A고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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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탑재한 위치는 '학교소개'가 4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학교소식', '입학안내', '진로진학' 등 다양했다. 심지어 팝업창에 2023학년도 대학별 합격자 수를 올려놓은 학교도 있었다.

양구에 있는 B고등학교는 2013학년도부터 대학별 합격자 수 자료를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수능 만점자, 서울대 로스쿨, 공인노무사, 행정고시, 외교관 후보자 등의 합격자 실명을 공개하고 있었다.

춘천의 H고등학교는 졸업생 개인별 대학 진학 현황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2021학년도와 2022학년도 자료에는 성만 표기하고 이름을 별표(*) 처리했으나, 2014~2020학년도 자료에는 이름 가운데 한 글자만 별표(*)를 해 놓았다.

H고 홈페이지 '학교연혁'에 나와 있는 졸업생 현황을 보면, 2022학년도 졸업생은 31명, 2021학년도 28명, 2020학년도 21명, 2019학년도 33명, 2018학년도 18명, 2017학년도 25명이었다. 대학 진학 현황 자료에 탑재된 학생 수를 보면, 2022학년도 27명, 2021학년도 28명, 2020학년도 17명, 2019학년도 25명, 2018학년도 15명, 2017학년도 25명이었다. 사실상 학교 구성원이면 어떤 학생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원도교육청 교육과정 과장은 2일 오후 기자와 한 통화에서 '현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느 학교에 (합격자) 몇 명 그렇게는 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을 했다.  

수집한 자료를 설명하고 적극적 조치를 주문하자 "조치 계획이 있다. 9월 1일 발령을 받아서 관련 현황 파악이 되어 있지 않다. 일단 파악부터 해보고 조치를 할 것이다. 인식 제고를 위한 방법도 논의하겠다"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인 조치 계획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공문에 대한 재안내, 도 교육청 장학사나 장학관을 통해 학교에 전화로 안내하는 것 등"을 언급했다.

'학력' 강조하는 강원도 교육감, 학벌주의 경쟁 부추겨 

신경호 교육감은 '학력'을 강조하며, 11월 21일부터 12월 2일까지 '강원 학생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를 60%가 넘는 학교에서 치르게 했다. 또한, 수능시험 성적 자료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서열화'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10%가 넘는 학교들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버젓이 대학별 합격자 현황을 올려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10년 넘는 자료를 탑재해 놓았다. 심지어 개인 실명을 올려놓거나 이름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도 공개되어 있다.

안 그래도 학벌주의와 입시경쟁에 매달려 있는 고등학교들이 '학력'으로 포장한 '시험 성적'을 강조하는 강원도교육청의 신호에 경쟁 강화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다수 도민이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강원도교육청이 말하는 '학력'은 '시험 성적'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OECD나 UNESCO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말하는 '학력'과 너무도 거리가 멀다. 공문을 안내하고, 전화 통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육 철학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태그:#대학별 합격자 현황, #홈페이지, #학벌주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방관하는 강원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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