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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강사가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태성 강사가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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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이 김병로 선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이승만 정권이 출범했을 때 사법부만큼은 김병로 선생이 법과 원칙을 지키셨어요. 현재까지도 행정부(정부)와 입법부(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큰데 그나마 사법부에 기대를 거는 건 김병로 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으로 기틀을 세우셨기 때문이에요."

최태성 한국사 강사가 지난 11월 25일 오후 2시 전북 순창군 순창읍향토회관에서 '역사에서 행복을 찾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면서 "김병로 선생을 배출한 순창군민들께서는 자부심을 가지셔야 한다"고 말했다.

가인 김병로(1887~1964) 선생은 순창군 복흥면 출신이다. 김병로 선생은 1948년 초대 대법원장과 1953년 제2대 대법원장으로 1957년 70세에 정년퇴임하기까지 대법원장 재임 9년 3개월 동안 사법부에 가해지는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현재 복흥면에는 김병로기념관과 법조인 연수기관인 가인연수관이 각각 세워져 있다.

최 강사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전제한 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며 특강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판사, 의사, 교사, 공무원이라고 '명사', 직업명으로 답을 해요. 꿈이 '명사'인 사람과 '동사'인 사람은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이 달라져요. '무엇이 되느냐'(명사)보다 '어떻게 사느냐'(동사)가 중요하거든요."

'동사'의 꿈, 김병로·박상진 판사의 선택

최 강사는 곧바로 '을사오적'을 예로 들었다.

"을사오적 이완용·이지용·이근택·권중현·박제순의 공통점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사실 이외에 오늘날로 말하면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외교부, 농축산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모두 판사 출신이에요. 지금의 대법원장이나 그와 비슷한 지위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완용에게 국비로 미국 유학을 시켜준 대가가 매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는 이어 "꿈을 명사로 꾸면 직업 자체가 꿈이 되지만, 꿈을 동사로 꾸면 직업이 아닌 꿈에 따라 삶의 선택 기준이 달라진다"며 '김병로 선생'의 삶을 들려줬다.

"김병로 선생도 일제강점기 때 판사를 하셨어요. 하지만 정확하게 1년 만에 사직하고 변호사를 하셨어요. 당시 변호사는 법조 경력 1년 이상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김병로 선생은 '법 조항 하나를 제대로 적용하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판사를 수단으로 삼아 변호사가 되신 거예요."

최 강사는 이어 "김병로 선생은 항상 독립운동가 편에서 무료 변론을 하셨고, 초대 대법원장이 되신 후에는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이승만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며 "오죽했으면 이승만 대통령에게 측근들이 '사법부를 어떻게 좀 해 달라'고 건의하자 '저기 법전(김병로)한테 가서 물어 보라'고 했을 정도로 김병로 선생은 법과 원칙에 철저했다"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최 강사는 독립운동가 박상진 판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박상진은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 법원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사표를 던졌어요.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했거든요. 일제강점기에 누가 죄인으로 끌려올까요? 판사가 되면 독립운동가에게 징역과 사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박상진은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자리가 아니라 판사의 맞은편, 바로 피고인석'이라고 말하며 사표를 던진 거예요."

그는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박상진의 꿈은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이라고 설명을 이었다.

"박상진은 독립운동을 하며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으로 의열 투쟁에 앞장섰어요. 그러나 결국 체포돼 그가 예언한 대로 피고인석에 앉아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박상진은 떠났지만 대한광복회는 의열 투쟁의 본보기로 큰 자극이 돼 수많은 청년이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정말 중요하다"
 
최태성 강사는 인문학 특강에서 "'무엇이 되느냐'(명사)보다 '어떻게 사느냐'(동사)가 더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태성 강사는 인문학 특강에서 "'무엇이 되느냐'(명사)보다 '어떻게 사느냐'(동사)가 더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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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강사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역사 강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2017년 교단을 떠난 뒤 무료 온라인 강의 사이트 '모두의 별★별 한국사'와 유튜브 인터넷강의 채널 '최태성 1TV'와 공식교양 채널 '최태성 2TV'를 각각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최 강사는 특강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그의 역사 강의가 유명세를 타면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유명 사교육업체에서 찾아와 깜짝 놀랄 만한 계약금이 적힌 계약서를 내놓는 거예요. 계약서를 보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동사의 꿈이 진짜 10초 만에 무너지더라고요(웃음). 1주일 간 고민하다 계약서를 찢어버렸어요. 그때 아내한테 엄청 혼났죠. 하하하."

최 강사는 웃으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올해 수능응시자가 50만 명가량 되는데, 입시생을 상대로 하는 사교육업체가 정말 많이 있죠. 그런데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상자는 60만 명이 넘어요. 수능 시장보다 더 크지만, 제가 무료로 인터넷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업체가 이 시장에는 들어오지 못해요."

관객석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최 강사는 특유의 친근한 화법으로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1시간가량 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넘쳐났다. 한 고3 남학생이 "좋은 역사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최 강사는 자신의 역사교사 경험을 빗대 답했다.

"역사와 교사 중에서 방점은 교사에 있다고 봐요. 역사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을 넉넉하게 품고 소통할 수 있는 품성이 더 중요해요. 가슴이 따뜻한 교사가 되기 위한 소양을 먼저 갖춘 후 역사를 전달하는 게 역사교사로서 꿈을 이루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오늘부터 역사를 좋아하기로 했어요"

질의응답이 끝난 후 최 강사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관객 대다수가 줄을 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전남 광주에서 왔다는 살레시오고 3학년 남학생은 "강사님의 책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며 "직접 강의를 들으니 인터넷 방송으로 보는 것보다 더한 감동과 여운이 남았다"고 말했다.

순창여중 1학년 황채연, 김은송, 제태경, 송유진, 권은미, 박하늘 학생은 열렬한 함성과 환호로 최 강사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을 듣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며 "그동안 지루하기만 해서 역사를 안 좋아했는데 오늘부터 좋아하기로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 순창군민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편파수사와 압수수색을 남발하고 있는 모습을 김병로 선생이 보셨다면 정말 대노하며 '대통령부터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꾸짖으셨을 것"이라며 "김병로 선생을 아직 모르는 어린 학생과 국민에게 김병로 선생의 삶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순창군 순창여자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최태성 강사의 강의를 듣고 역사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전북 순창군 순창여자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최태성 강사의 강의를 듣고 역사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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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1월 30일자에 실린 기사를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최태성, #김병로, #박상진, #을사오적,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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