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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스 바자르에서 보이는 미얀마 라카인주. 강 하나만 건너면 라카인주로 갈 수 있다. ⓒ 사단법인 아디
 콕스 바자르에서 보이는 미얀마 라카인주. 강 하나만 건너면 라카인주로 갈 수 있다. ⓒ 사단법인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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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서부에 거주하는 민족인 로힝야. 차별과 무력 분쟁이 계속되는 위험한 고향 미얀마 라카인주도, 열린 감옥이라고 불릴 만큼 고달픈 방글라데시 캠프도 로힝야에게는 지금 해답이 아니다.

로힝야 집단학살 5주기를 맞이한 지난 8월 25일 이미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현재 미얀마 상황을 고려할 때 송환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자국 내 로힝야 정착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바산 차르 섬 이주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안전을 찾아 고국을 떠나왔지만, 폭력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 로힝야는 이런 자신들의 처지를 '로힝야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로힝야는 학살의 기억에서도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두 눈으로 직접 자녀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부모는 뇌리에서 그 장면이 떠나지 않아 여전히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캠프 생활은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고국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경찰의 불법체포와 구타, 뇌물 요구와 금품 갈취, 로힝야 강경파 무장단체의 폭력과 위협이 그것이다. 

로힝야 난민들에게 교육이 중요한 이유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레다 캠프 내 러닝센터 교실 내부 ⓒ 사단법인 아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레다 캠프 내 러닝센터 교실 내부 ⓒ 사단법인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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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내 부모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로 잠 못 이루면서도 꿈꾸는 게 있다면,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만은 자신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로힝야족 상당수는 군부의 체계적인 차별로 인해 고국에서 학교 문턱을 넘기조차 어려웠고, 때문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이가 드물 정도로 교육 수준이 낮은 편이다. 

로힝야의 미래를 위해서도 교육은 중요하다. 러닝센터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아메드(가명, 45)는 "로힝야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그래서 캠프 생활에서 교육은 우리 민족과 미래 세대를 위해 중요한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미얀마에서는 교육을 받더라도 차별과 박해로 사는 처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아 무관심했다"면서 "난민 캠프에 와서 비로소 민족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애타는 로힝야 난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캠프 내 교육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캠프 도착 직후에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의 자국 교육과정 편입을 거부해 1년 넘게 교육 공백기를 보내며 잃어버린 세대가 될 위기를 겪었다. 이후 국제사회가 임시로 캠프용 교육과정을 만들어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교육 다운 교육이라고 보기에는 불충분했다. 그리고 이마저도 코로나 19 방역으로 또다시 상당 기간 제공이 중단됐다.

28세 로힝야 교사 "교육과정, 도입 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무의미"

지난 7월 드디어 약 5년 만에 로힝야의 바람대로 미얀마 교육과정 도입됐으나, 이행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진척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약 4개월이 흐른 지금에도 교과서 배포를 마치지 않은 러닝센터가 존재할 정도다. 

로힝야 교사들은 "자국의 언어와 교과서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대로라면 이전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로 교사 경력 8년인 아윱(가명, 28)은 "미얀마 교육과정이 도입됐지만, 수업은 여전히 그리기, 알파벳 수업, 놀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육 증명서(certificate)를 받을 수 있을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으면 캠프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등 교육과 일자리 등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들은 아이들의 미래 걱정으로 노심초사다.  

캠프 교육으로 배움이 향상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로힝야 교사들은 "아이들이 러닝센터에서 수업을 받지만, 글을 읽지 못할 정도로 교육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현재 캠프 러닝센터에는 대개 로힝야 교사 1명, 현지 교사 1명 총 2명이 배정되는데 현지 교사는 영어 한 과목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모두 로힝야 교사가 담당하는 식이다. 로힝야 교사들은 "현재 교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교사 1명이 5과목 이상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업의 질이 좋을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채용하는 현지 교사의 자질도 의문이다. 캠프에서 만난 로힝야 교사들은 "현지 교사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 영어 구사가 어렵고, 영어와 버마어로 쓰여진 미얀마 교과서 지침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캠프 교육은 그냥 비즈니스일 뿐 로힝야 교육의 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방글라 정부에게 교육은 비즈니스일 뿐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사교육 센터 폐쇄 명령 이후에도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리에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로힝야 난민들이 요청하는 캠프 교육 대안은 크게 4가지이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양국 정부 간 상호협정을 통한 교육과정과 학력 인증 문제 해결,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역량 있는 교사 확충, 성별 분리 학습 공간 마련과 여교사 확충을 통한 여아의 교육 접근성 제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재정 지원 확대 등이다.    

사단법인 아디(ADI: 'Asian Dignity Initiative'의 준말)는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로힝야 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현지 인권 기록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9월 21일 교육권 청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공식 홈페이지(https://bit.ly/3R0xyvv)를 통해 로힝야 난민 캠프 교육 개선 청원에 동참할 수 있다.  

이들은 오는 12월 9일 캠페인 종료 후에는 시민 지지 서명을 기반으로 방글라데시 정부와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of Myanmar), 공여국 정부 대상으로 즉각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서신을 전달할 예정이다. 더불어 국제사회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와 해결 촉구를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절차 참여, 유엔 교육권 특보 및 미얀마 특사 대상 진정서 제출하는 활동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아디는 아시아 분쟁 지역의 취약한 피해 생존자의 인권 향상과 파괴된 커뮤니티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글쓴이 이지영씨는 아디 소속 활동가입니다.


태그:#난민, #로힝야, #아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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