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4 11:59최종 업데이트 22.11.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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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연속 기획]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철도, 전기, 의료 등의 공공기관을 영리화하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환율 급등 등으로 서민의 경제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영리화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방향은 타당한 것인지 짚어보고, 국민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연재 주제와 순서는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①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공격하는 이유
② 공공기관 방만경영? 부채비율 오히려 낮아졌다
③ 공공기관 경영평가 부작용 막으려면
④ 공공기관 개혁은 민영화 꼼수?
⑤ 전력 공기업 재편, 멀리 내다보자

 

지난 6월 20일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근호 감사 평가단장, 김완희 준정부기관 평가단장, 최상대 2차관, 박춘섭 공기업 평가단장, 홍두선 기재부 공공정책국장. ⓒ 연합뉴스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간단히 표현하면 줄 세우기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많은 수의 공공기관을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는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성적에 의해 줄 세우기를 당해 익숙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가 이 시대에 적절한 제도인가 고려해 볼 시간이 왔다.

2022년 중앙정부 산하에 350개의 공공기관이 있고, 임직원 수는 44만 명이다. 자산 규모는 정부 총자산의 78%에 달하는 969조 원 수준이며, 예산 규모는 751조 원으로 정부 예산의 1.24배에 달한다(2021년).


공공기관은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이 언론을 통해 간혹 듣는 공공기관 소식은 '방만 경영', '낙하산 인사' 등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이러한 오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공기관이 하는 일과 성과가 국민에게 투명하고 적절하게 전달되지 않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줄 세우기가 중심이 되는 공공기관 평가제도는 지난 40년간의 공(功)에도 불구하고 과(過)와 한계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관료 중심의 폐쇄적 관리체계'와 '단기 실적 중심의 획일적 경영평가 체계'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줄 세우기, 통제와 위협 수단 전락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경영평가(경평)는 1984년 '정부 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을 근거로 24개 경영평가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2007년 제정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통해 공공기관의 운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경평은 공운법 제48조 및 시행령 제27조에 따라 경영 실적을 평가·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매년 120여 명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을 구성해서 30억 원 가량의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영관리와 주요 사업 범주를 계량, 비계량 지표로 평가하여 S~E의 6개 등급으로 평가한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공공기관 관리제도 및 경평제도는 점차 줄 세우기라는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운법은 지난 15년 동안 변질하여 통제와 위협의 수단이 되었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44만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관료제에 길들이는 도구가 되었다. 경평 등급에 따른 성과급이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최저 등급을 받은 기관장을 해임하는 등 위협적인 절차가 강화되기도 했다.

공공기관들은 기재부가 제시하는 지표들과 편람이라는 시험문제를 잘 풀기 위해 억대의 컨설팅비를 들여서 등급을 올리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즉, 경평제도 때문에 공공기관은 국민보다는 기재부를 바라보게 됐다.

게다가 경평 결과와 정부 업무 및 국정과제 평가 결과 사이에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효율성과 수익성 중심 평가로 인해서 공공성에 대한 책무와 공익을 추구하는 정부 정책의 효과가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평이 공공기관의 자율성, 창의성,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안전사고를 냈거나 부정비리가 드러났거나, 성과를 조작한 기관들이 좋은 등급을 받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또한 열심히 일해도 경평 잣대로는 나쁜 등급을 피할 수 없는 작은 기관들의 불이익 또한 심화했다. 경평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련의 문제 제기들을 계기로 평가를 책임지는 부처인 기재부는 지난해 8월 31일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기재부가 제시한 제도개편 내용은 37년 만의 대폭 개편이라는 발표와 달리 오히려 기존의 폐쇄적인 경영평가 제도를 몇 배로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냈다.

지나친 평가로 인해 공공기관의 많은 직원들이 본연의 대국민 서비스보다 경평 준비에 내몰리고 있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 개선이 아니라 경평 잘 받기, 즉 줄서기 대열에 너무 큰 노력을 기울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만 부작용을 피할 수 없는 현재의 공공기관 경평제도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 중심 시스템으로 혁신해야 한다. 과거를 답습하거나 불필요한 절차에 집착하지 말고, 국민 삶의 질에 더욱 집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공공기관 임원 인사,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등 거버넌스 관점에서도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란 지적에 귀기울여야 한다.

새 정부 기조는 '축소'와 '삭감'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기재부가 지난 7월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새 정부의 기조와는 다르게 상식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기재부는 이 가이드라인에서 공공부문 생산성 제고,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 민간-공공기관 협력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 혁신 방향을 제시하고, 공공기관 기능 축소, 정원 감축, 예산 삭감, 직무 성과급제 도입, 자산 매각, 복리후생 축소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새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정책은 축소, 감축, 삭감, 매각을 골자로 하는 듯하다. 이러한 논리는 2010년 이후 퇴조한 신자유주의를 다시 끄집어낸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가이드라인은 자율적"이란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지난 10월 발표된 2022년 경영평가 최종본에 따르면 가이드라인 이행에 가점 5점이 추가됐다. 즉,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으면 경평에 심대한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일방적인 기능 축소 및 민간이양은 시장의 기능을 역행하는 방식이다.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연구결과를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된다. 공공기능 중 축소가 필요한 영역도 있지만 반대로 확대해야 하는 영역도 있다는 것이 대부분 연구의 결과이다. 모든 기관에 일괄적으로 축소, 감축, 삭감, 매각을 요구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방식이다.

자산매각은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다. 국가 자산을 헐값으로 매각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공공기관 자산을 한정된 시기에 한꺼번에 매각하려고 할 경우 자산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꼭 매각해야 한다면 일단 재정문제가 발생한 일부 공기업만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국민과 국회 앞에 투명하게 공개된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일괄적인 자산매각 정책은 국민의 시각에서 공정하지 않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퇴조한 신자유주의를 우리는 수십 년이 지난 2022년 아직도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다른 선진국의 제도는 사회적 가치, 공동체, 그리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경영평가 제도를 혁신하려면 우선 공공기관 유형을 다시 분류해야 한다. 공운법 개정을 통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 현 공공기관의 유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유형에 따라 유형별로 차별화된 관리 및 평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편의상 기존의 유형에 따라 개선안을 제안하자면 지금과 같은 경영평가는 공기업(40개 내외) 위주로 한정하고, 나머지 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은 부처별 평가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평가권과 함께 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의 예산 및 조직 편성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도 각 부처로 이관한다. 해당 부처는 산하기관의 성과 및 과오 일체에 대해 장관 및 담당 관료가 기관장과 함께 책임지게 된다.

공공기관 역할은 공공성

또한 평가 주기는 공기업 위주 40개 내외 기관은 현재처럼 매년 평가하고 준정부와 기타공공기관은 2~3년 주기로 평가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평가의 70% 비중은 자체 평가 및 외부기관들에 의한 다면평가로 대체하고, 30%만 경영평가단 등이 자체 평가의 적절성과 기관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공운위 운영 및 경영평가 권한 등을 기재부에서 국무조정실로 이관하고, 기재부의 공공정책국은 국무조정실과 정부 부처의 공공기관 관리 및 평가를 돕는 '부처 간' 업무로 한정시키는 것도 개편안에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에게 투명한 제도로 혁신해야 한다. 국민참여는 형식적인 것으로 그치면 안 되며, 국민참여의 폭과 깊이를 실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역할을 '국민의 유익', 즉 '공익성'의 관점으로 바꾸려는 제도적 노력의 핵심 과제이다. 공운위 구성과 평가과정 전반에 국민의 참여와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공운법 전면 개정안은 법률 개정 이후 시행령 및 규칙 개정의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법의 의도를 적절히 실현할 수 있다. 고도성장기를 주도했던 공공부문의 역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시대 변화 속에서 공공부문 역할을 전면적으로 재정립하고 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민은 공공기관 운영과 성과가 우리의 일상과 국가의 미래에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공공기관 운영체제를 폐쇄적인 관료 중심에서 '국민 중심'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획일적인 기관 평가로 인해 과도한 실적 경쟁이 유발되고 국민 편익 관점에서 공공성과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 공공기관에 대한 제도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최현선 /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 최현선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최현선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노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현재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외국인 친구들은 최 교수를 Handsome(현선)이라고 부릅니다. 연구영역은 도시 및 정책학 분야, 성과 평가, 문화와 공동체 분야입니다. 한국국정관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조정실의 정부업무평가 전문위원, 행정안전부 정부혁신 평가단, 기획재정부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장 등의 활동도 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행정기획론: 대전환 시대의 공공부문>, <성공하는 정부를 위한 제언>, <행정기획론: 공공부문의 전략기획과 성과관리>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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