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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 소설, 그림, 조각, 음악. 그 무엇이건 간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이 고안해낸 그 어떤 장벽도 초월한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썼다. 독자들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p.6)

이미 고인이 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저자 '메리 앤 섀퍼'. 지금 그녀는 없지만 이야기는 살아남아 작가의 희망대로 그 믿음은 전해지고 있다. 끔찍했던 전쟁 시기에 책을 읽으며 우정을 지키고 인간애를 이어갔던 영국의 건지 섬 사람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예술과 우정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메리 앤 섀퍼 지음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메리 앤 섀퍼 지음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 이덴슬리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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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줄리엣'은 전쟁 시기에 썼던 글이 큰 인기를 얻었고 다음 책을 쓰려고 구상 중이었다. 그러다 건지 섬 문학회 모임의 회원인 '도시'에게 편지를 받게 된다. 줄리엣은 다른 회원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들의 이야기에게 매료된다.

그녀는 건지 섬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독일 점령기 시절 건지 섬과 책모임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특히 북클럽을 처음 만들었던 엘리자베스의 헌신과 용기에 깊은 감동을 받은 줄리엣은 세속적인 성공 대신에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고민하며 삶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책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억압과 고통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준다. 어떻게 저 멀리 떨어져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 줄리엣과 도시가 '찰스 램'의 책을 통하여 서로를 믿고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이는 아마도 책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책으로 엮인 우정의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문학회 모임 회원들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건지 섬 우체국장인 '에번 램지'는 가능하다면 당시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는 책과 친구에게 매달렸습니다. 책과 친구는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으니까요."(p.102)라며 북클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5년 동안 <세네카 서간집>을 읽고는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어부 '존 부커'는 "저는 문학회 모임을 무척 아낍니다. 점령기 시절을 견딜 힘을 그곳에서 얻었으니까요."(p.144)라고 고백한다. 

이 문학회를 처음 만들었던 엘리자베스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행동은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더듬이 돼지치기, 마녀 짓 하는 여자, 알코올중독 정신과 의사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간 그녀는 북클럽을 통하여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며 보듬어준다.

그러다 유대인 아이를 숨겨서 치료했다는 이유로 독일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줄리엣은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없었지만 건지 섬 곳곳에서 그녀가 한 선행의 흔적을 발견하며 영향을 받는다. 

엘리자베스는 죽고 없지만 그녀의 인간미 넘치는 삶의 이야기는 남아 있다. 수용소에서 그녀와 한 방을 썼던 프랑스인 '레미'는 엘리자베스가 건지 섬에서 문학회 모임을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다. 곧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구조하러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엘리자베스가 폭행당하는 소녀를 구하려다가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엘리자베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인간애와 용기를 지켜냈는지 여러분에게 전해야 합니다. 저는 그녀의 딸도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p.276)

고통스런 기억과 과거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나누는 데서 치유가 일어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피해자를 위로하는 최선의 태도이며 동일한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는 "그런 일은 빨리 잊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법"(p.384)이라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이는 잊으려고 해도 계속 기억이 떠오르는 피해자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들의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독특한 제목만큼 우리가 몰랐지만 꼭 알아야 했던 삶의 이야기가 있다. 문학회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책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현실을 견디며 인간애를 실천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여러 참사 피해자의 이야기에 얼마큼 집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편, 소설이 전쟁 전후의 배경이지만 분위기가 결코 무겁지만 않다. 영국식 유머와 로맨스가 책의 흥미와 재미를 더해준다. 책의 의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모든 독서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지은이), 신선해 (옮긴이), 이덴슬리벨(2018)


태그:#북클럽, #우정,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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