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등장하는 노래 '임파서블 드림(The Impossible Dream)은 불가능한 꿈을 쫓는 돈키호테의 진심을 표현한 곡이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도, 그 길이 멀고 험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희망과 도전'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진짜 이유이기 때문이라는 극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한 주제곡이기도 하다.
 
'강철국대'의 피구 국가대표 도전기 역시 불가능을 알고서도 시작한 도전이었다. 전문 스포츠 선수도 아닌 일반인들이 피구에 입문한지 불과 3개월만에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에 나선다는 프로젝트는 누가봐도 비현실적이고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도전의 진정한 가치는 결과로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노력하며 특수부대원에서 어엿한 '피구인'으로 거듭난 강철국대의 불가능한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11월 15일 방송된 채널A 스포츠 예능 <강철볼-피구전쟁> 최종회에서는 혹독한 서바이벌을 통해 대한민국 피구 국가대표로 발탁된 강철국대의 최종목표인 아시안컵 도전과 그 마지막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강철국대는 대회 1일차 풀리그에서 1차전 홍콩, 2차전 일본, 3차전 대만 순으로 경기를 치렀다. 강철국대는 첫 경기 홍콩전에서 세트스코어 1대 1로 팽팽하게 맞서며 선전했으나 3세트에서 막판 경험부족과 체력저하를 드러내며 석패했다.
 
2차전 상대는 아시아 피구 최강국이자 디펜딩챔피언 일본이었다. 강철국대 선수들은 한일전의 중요성을 복기하며 의욕을 다잡았다. 하지만 일본과의 실력차는 너무 컸다. 일본은 다른 팀과 차원이 다른 속공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내야를 흔들었다. 강철국대는 결국 1세트 0-4, 2세트 0-6으로 완패하며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2연패를 기록한 한국은 풀리그 최종전에서 대만과 격돌하게 됐다. 한국이 대만을 잡으면 3연승의 일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팀이 모두 1승2패로 물고물리는 상황이 되어 최대 조 2위까지도 노려볼 수 있었던 상황. 김병지 감독은 대만의 강한 공격력을 경계하면서도 빠른 측면공격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주문했다.
 
양팀은 1세트 초반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하지만 대만은 차단수를 앞세워 인터셉터에 이은 빠른 속공으로 공수전환이 느린 강철국대의 약점을 공략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설상가상 강철국대는 내야의 핵심인 박도헌이 발목 부상을 당하며 박준우와 교체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첫 경기부터 주전 외야수로 전 세트 풀타임을 소화했던 김건은 체력저하로 구속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 막판 2대 3까지 추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회심의 외야 공격이 바운드샷과 대만의 수비에 막혔고 역습으로 이동규와 정해철이 연이어 아웃당하며 결국 석패하고 말았다.

김병지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안배를 위하여 2세트에서는 김건을 내야로 불러들이고 구성회를 외야수로 투입했다. 또한 부상당한 박도현 대신 박준우와 이진봉을 차단수로 투입하며 라인업에 변화를 줬다.
 
1세트의 선전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강철국대는 조급한 플레이를 펼친 대만의 실책을 놓치지않고 김건과 최성현의 콤비플레이가 위력을 발휘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김건의 공격에서 대만의 바운드 캐치 실패로 2명이 동시에 아웃되는 행운이 따랐고, 김승민이 마지막 내야수 창취시안을 아웃시키며 값진 세트 승리를 따냈다. 선수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고 관중석에서 응원했던 강철국대의 가족들도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3세트 대만의 반격은 매서웠다. 침착함을 되찾은 대만은 볼소유권을 최대한 활용하며 한국을 압박했다. 최성현과 오상영이 잇달아 뛰어난 회피력을 선보이며 끈질기게 맞섰지만, 대만의 빠르고 예리한 패스력이 살아나면서 강철국대는 고전을 면치못했다.

한국은 차단수들이 조기에 아웃되어 수비밸런스가 무너지며 대만의 연타에 줄줄이 아웃되었다. 결국 끝까지 별다른 반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구성회의 아웃을 마지막으로 한국은 세트스코어 1대 2의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로써 풀리그 3전 전패를 기록한 한국은 최하위인 4위로 추락했다. 2일차는 플레이오프로 풀리그 성적을 통하여 1위인 일본(3승)이 결승에 직행, 2위는 대만(2승1패), 3위는 홍콩(1승 2패)이 각각 순위별로 3위결정전과 세미파이널을 거쳐 결승진출팀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이튿날 한국은 4위로 3위인 홍콩과 첫 경기인 3위 결정전부터 치르게 됐다. 이제는 지면 탈락하는 외나무다리 승부였다. 최현호 코치는 "이제 다음은 없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가 할수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쏟아내자"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또한 전날에 이어 박준우의 아내 한영과 이모들, 김정우와 김건의 어머니, 강철부대의 동료들 등, 많은 가족과 지인들도 경기장을 찾아 강철국대를 열렬히 응원했다. 
 
강철국대는 초반에 홍콩의 주요 차단수를 아웃시키는 행운이 따랐고, 최성현의 페이크 공격이 적중하며 호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부정확하고 약한 패스와 김승민의 뼈아픈 캐칭미스가 겹치면서 홍콩에 공격권을 내준 것이 흐름을 바꿨다. 기세를 탄 홍콩은 매서운 공세를 이어갔고 한국은 내야의 핵심인 최성현과 김승민 등이 연달아 아웃되면서 순식간에 열세에 놓였다. 초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한국은 마지막 주자 박준우가 아웃되면서 결국 0-5로 1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이제 탈락의 벼랑 끝에 놓인 강철국대는 위축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대만은 1세트에 이어 초반부터 센터 공격수 최성현을 노리고 집중공격을 시도했다. 대만의 공세에 노출된 최성현이 아웃 위기에 놓이자 이동규가 몸으로 공을 대신 가로막고 아웃되는 살신성인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국은 뛰어난 집중력을 선보이며 대만의 공세를 연이어 피해내는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해철의 멋진 캐칭에도 불구하고 박도헌이 라인아웃을 밟는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며 흐름이 깨졌다. 기회를 놓지치 않고 홍콩은 측면 위주의 공격으로 전환하며 3명의 선수가 연달아 아웃당하면서 또다시 역전을 허용했다.

한국은 김건을 내세워 반격했으나 최성현의 성급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체력이 떨어진 내야수들의 스텝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한국은 최후의 주자였던 내야수 최성현이 홍콩의 빠른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아웃되며 결국 두 번째 세트까지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경기를 마친 강철국대는 안타까움과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선수들은 지난 과정들을 복기하며 하나둘씩 아쉬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주장인 정해철은 "고생한 우리를 위하여 박수한번 치자. 속상하더라도 고개숙이지 말고 어깨펴고,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자"며 동생들을 격려했다.
 
김정우는 오상형-황충원 등 형들을 제치고 주전으로 뛰어야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을 털어놓으며 그럼에도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응원해준 선배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오상영은 "다들 말은 안 해도 아프고 힘들었을텐데, 그냥 다같은 마음이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며 얼굴을 감싸쥐고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용하게 경기장을 나서는 강철국대 선수들을 반겨준 것은 가족들이었다. 가족들은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고생한 강철국대를 격려했다. 정해철은 선수단을 대표하여 "결과는 아쉽지만 3개월 동안 최선을 다했다. 저희 모두 진심으로 피구 했으니 '잘했다'는 한마디만 해달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가족들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감동한 몇몇 선수들은 또다시 눈물을 쏟았고 지켜보던 가족들의 눈시울 역시 붉어졌다. 강철국대 멤버들은 하나둘씩 소중한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 따스한 위로를 받으며 미소를 되찾았다.
 
이로써 홍콩이 한국을 잡은 데 이어 세미파이널에서 대만까지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우승은 압도적인 실력를 과시한 일본이 차지했다. 우승팀 일본의 주장인 힛토리 쇼타는 "저희는 피구를 한지 대부분 20년 가까이 된 선수들이었지만, 불과 3개월된 한국팀과 경기해보고 정말 놀랐다"면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룬 한국팀에 경의를 표했다.
 
강철국대의 뜨거웠던 피구 여정도 모두 막을 내렸다. 모든 대회를 마치고 강철국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가 모두 함께 자체 경기를 펼치며 마지막 팀워크를 다졌고, 선수단은 "정말 재밌었다"고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강철볼>은 해당 채널의 전작인 <강철부대> 시리즈의 특수부대 출신 출연진이 피구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작에서는 각 부대의 자존심을 걸고 경쟁했던 대원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원 팀'이 되어가는 모습과, 국내에서는 비인기종목이었던 피구의 역동적인 매력에 빠져드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냈다.
 
현실적으로 피구라는 스포츠에 있어서는 초보였던 강철국대에게 단기간에 국제대회에서 나서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려한대로 강철국대는 아시안컵 4번의 공식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꼴찌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특수부대 출신들답게 멤버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각자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어느새 총 대신 공을 잡는 또다른 국가대표로 거듭났다.

코트 위에서는 강인하고 포기를 모르는 집념을 드러내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유쾌하고 해맑은 모습으로 서로를 챙기는 멤버들의 반전 매력, 거듭된 패배와 힘든 훈련과정에 절대 좌절하지 않는 '열혈 청년'들의 순수한 도전정신이 <강철부대>와는 또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도전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스포츠와 청춘이 가진 공통적인 매력이자 특권인지도 모른다.
강철볼 강철부대 피구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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