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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시골 가서 살면 마당 한쪽에 감나무랑 무화과나무 하나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거기에 한술 더 떠 "담장 밑에는 당귀랑 머위도 심고, 엄마한테 필요한 어성초도 심을까? 집 뒷산에는 밤나무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감은 따서 곶감 만들고, 무화과는 대문을 나설 때마다 하나씩 툭 따서 베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마당에서 구운 고기는 당귀잎으로 쌈 싸 먹고, 간장에 담근 머위장아찌는 물에 만 밥 위에 척 올려 먹고, 어성초 삶은 물은 머리에 바르면 좋겠지?

밤은 송편도 만들고 조림도 해 먹으면 <리틀 포레스트>(삶에 지쳐 시골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직접 농사 지은 식재료로 요리해 먹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일본 영화,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됨) 주인공이 부럽지 않을 텐데.

곶감 말리고 밤 송편 만들고
 
가을에 만들어 두면 좋은 겨울철 간식. 곶감 가운데를 잘라 펼치고 씨를 뺀 다음 호두를 넣고 말아도 맛있다. 사진은 첫 해에 찍어 놓은 사진.
▲ 아파트 베란다에서 곶감만들기 가을에 만들어 두면 좋은 겨울철 간식. 곶감 가운데를 잘라 펼치고 씨를 뺀 다음 호두를 넣고 말아도 맛있다. 사진은 첫 해에 찍어 놓은 사진.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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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는커녕 아직 시골로 발 한쪽도 못 내밀었지만, 곶감 만들고 밤으로 송편 만드는 것은 지금도 할 수 있으니 대도시 아파트에서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기로 했다.

올해도 내가 긴 장대로 감을 따면 엄마는 떨어지는 감을 받았다. 2인조 감 따는 모녀는 그렇게 감을 따고, 닦고, 깎아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렸다. 첫해에는 뭣 모르고 실로 감을 매달아 말렸지만, 지금은 곶감걸이도 사고 감 따는 기구도 사자고 했다.
         
거기다가 올해는 밤으로 송편도 만들었다. 송편은 추석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지만 올 추석은 너무 일러 밤 송편은커녕 그냥 송편도 먹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는 떡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밤 송편을 만들어 보자는 내 말에 은근히 좋아하셨다. 

우리의 목표는 망개잎 밤 송편! 만들기 전날, 쌀을 불려놓고 밤부터 삶았다. 엄마는 막상 만들려니 엄두가 안 나는지 밤 대신 꿀이나 설탕을 넣자고 했지만, 놉! 그럴 순 없다. 옛날에 엄마가 딱 한 번 만들어준, 달지 않은 밤 송편이 나는 먹고 싶었다.

밤 속을 숟가락으로 파내고 꿀을 조금 넣어 단맛이 나랑 말랑, 촉촉하게 소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불린 쌀은 다음날 떡집에 맡겼다. 쌀가루가 되길 기다리는 동안 망개잎을 따러 가면 된다.

찾아온 쌀가루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반죽해서 네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것을 한 줌 떼서 가래떡같이 길쭉하게 만든 다음 송편 하나 만들 만큼 다시 떼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편편하게 만들었다.
   
익힌 밤 속을 파내서 꿀을 조금 넣고 소를 만든다.
▲ 밤송편 만들기 익힌 밤 속을 파내서 꿀을 조금 넣고 소를 만든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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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밤을 떠 넣고 윗부분에 손가락 모양이 나도록 주먹을 쥐기도 하고, 반죽의 양쪽 끄트머리를 집게와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붙여가며 만두처럼 만들기도 했다. 그런 다음 망개잎으로 송편을 둘러줬다. 초록색 망개잎이 하얀색 떡을 감싸고 쟁반 위에 곱게 놓여있다. 찌고 나면 망개잎은 성숙한 가을 색이 되고 은은한 향은 입안에 맴돌겠지?
 
망개잎 향이 은은하게 나서 색다른 맛이다.
▲ 망개잎 밤 송편 망개잎 향이 은은하게 나서 색다른 맛이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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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먹을 송편은 잘 익도록 찌고, 나머지는 살짝 쪄서 냉동실에 넣기로 했다. 엄마는 떡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냉동실에 넣었다가 나중에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망개잎에 참기름을 조금 묻혀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익혔을 때 이파리와 떡이 들러붙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지니까.

떡을 다 만들고 손에 묻어 바스락거리는 쌀가루를 씻고 있는데 엄마가 방금 솥에서 꺼낸 뜨거운 송편을 반으로 갈라 내 입에 넣어줬다. 이 향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일부러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자연에서만 맡을 수 있는 은은한 냄새가 코를 스친다. 곧바로 뒤를 이어 고소한 밤과 쫄깃한 떡이 입안에서 적절하게 섞이다가 얼마 씹지도 않았는데 꿀떡 넘어갔다.  

"와, 맛있네. 밤 속 파내고, 쌀가루 반죽하고, 모양 만드는 게 힘은 들지만 담백하고 정말 맛있다, 맞제?"
"그러게, 밤 송편 진짜 오래간만에 만들어 먹네, 우짜지, 큰일 났다. 내가 다 묵게 생겼다."


떡순이인 엄마는 밥은 안 먹고 송편만 먹게 될 것 같다고 하셨다. 파는 떡도 잘 먹지만, 이렇게 '내손내떡(내 손으로 만든 내 떡)' 해 보니 우리 식구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어 힘든 줄도 모르고 만들게 된다. 

며칠 전 마트에 가니 아주 실한 밤을 팔길래 사 와서 또 만들었다. 이번에는 망개잎 없이 하얗게 송편만 만들어 살짝 찐 다음 식혀서 냉동실에 쟁여놨다. 쪄서 먹어도 좋지만,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바싹하게 구워 먹어도 정말 맛있으니 추천!

내손내떡 밤 송편 만들기

재료 : 쌀가루(쌀 불리기 전 1.6kg, 간 맞추는 소금은 떡집에서 알아서 넣어주신다), 밤(포장지에 1.8kg라고 되어 있다), 꿀 2~3스푼. 

1. 전날 푹 익혀 속을 파낸 밤은 분량의 꿀을 넣어 잘 섞어둔다. 
쌀은 불려 떡집에 가져가서 쌀가루로 만든다. (번거로우면 파는 쌀가루로 만들어도 된다)

2.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뭉치도록 반죽한다. 한 덩어리가 되면 비닐에 넣어 30분 정도 둔다.

3. 반죽을 주먹 정도 크기로 떼고 나머지는 비닐 안에 넣어 마르지 않도록 한다. (쌀가루 반죽은 마르면 툭툭 갈라진다) 떼 낸 반죽은 가래떡처럼 만들고 골프공 크기로 뗀 다음 편편하게 한다.

4. 3번에 밤 소를 넣는다.

5. 찜솥에서 김이 나면 떡을 넣고 찐다. 밤을 삶아서 넣었기 때문에 오래 찌지 않아도 된다. (10분 정도)

6. 두고 먹을 것은 식힌 다음 하나씩 떨어뜨려 냉동실에서 얼린다. 하루 지난 뒤 떼서 통에 담으면 기름을 바르지 않아도 떡끼리 붙지 않아 나중에 먹기 좋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곶감, #망개잎 밤 송편, #그냥 밤 송편도 맛이어요,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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