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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말]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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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23년 7월 14일 오전 10시 15분]

제 글이 누군가에게 치유가 된다니요

상담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는 내일 만나는 날이지만, 그냥 오늘도 선생님께 편지를 써요.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 진실이(가명)와 연락이 닿았어요. 

'우리 OO이, 나는 정말 이제 괜찮아졌어'.

이렇게 메시지가 왔거든요.
또 한번 휴대전화를 잡고 방방 뛰었어요, 반가워서.

그날 이태원에서 '녹색어머니회' 분장을 했던,
제가 그리워한 그 친구들도 모두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SNS로 접했어요.
그때도 반가워서 방방 뛰었습니다(관련 기사 :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녹색어머니회 친구들과 연락이 닿게 된 건,
제 글이 삽시간에 온라인상으로 퍼지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댓글로 저와 연결되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 사실 지난 시간 동안, 저는 상담치료기를 온라인상 많은 분들에게 공유했고 그분들께 넘치는 위로와 사랑 그리고 연대감을 받았습니다.
조회수로 따지면 50만 회가 훌쩍 넘어가고 댓글로는 수천 개가 되는 것 같아요. 

악플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는 단 한 개의 악플 없이 사랑만 가득한 댓글을 받고
빠르게 마음의 힘듦이 치유되었어요.

그중에 한 분이 제가 녹색어머니회 친구들을 그리워한다는 말에
SNS로 녹색어머니회 친구들을 찾아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연결성이 순기능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어요.

친구들은 그날 밥을 늦게 먹고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목격해서,
모두 CPR에 참여했고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마음이 많이 힘들다고 해요. 

제가 쓰고 있는 글로 위로를 많이 받고 있다고 
오래도록 글을 연재해주세요- 하더라고요
제 글이 누군가에게 치유가 된다니요, 
정말 눈물 나는 마음을 받으며 다시금 제가 치유 받았어요.

매몰된 봉화 광산에서 무사히 구조된 분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반가워서 방방 뛰었고요. 반가움을 넘어서 위로와 위안, 희망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존 자체가 내 삶의 희망이라니요.

'나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연락이 이렇게 소중한 거구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그래서 옛날 옛적 어른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인사하라고 그렇게 가르쳤구나 싶어요.

'다시 같이 잘살아 보자'라는 마음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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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와 저는 사실 같이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 관련해서 어떤 계정의 비밀번호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데,
진실이가 슬슬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동 거는지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난다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쇼미더머니XXXX'라고 알려주었거든요.
그랬더니 진실이가 '비밀번호가 쇼미더머니야? 너 되게 귀엽다'라길래,
'뭐라는 거야 네가 올해 우리 돈 많이 벌어보자며 직접 설정한 비밀번호잖아'라고 했어요. 

정말 짧은 순간, 둘 다 '빵' 터졌고
우리는 그렇게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진실이는 참사 이후 처음 웃어본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웃는 진실이를 보며 기뻤습니다.
그 이후 진실이는 비밀 번호를 또 까먹어서 '쇼미더머니XXXX'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한바탕 웃었어요. '우리 진짜 내년에는 돈 많이 벌어보는 거다!!" 하면서요

웃음이 진짜 중요한 거더라고요.
웃음은, 정말 중요해요. 무언의 메시지였지만, 우리는 '다시 같이 잘살아 보자'라고
마음을 주고받은 것 같아요.

지난 주말은 친한 친구가 이틀 내내 함께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신 대로, 무한도전을 보며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 웃었어요.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씨가, "야 경호야(매니저), 커피 좀 사 와라, 네 거 빼고"

이러는데, 진짜 어이없게 웃음 팍 터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거의 배를 잡고 울면서 봤어요.
웃음은 전염되나봐요. 제가 웃으니까 친구도 같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어요.
같이 웃어준 친구에게도, 나를 웃겨준 개그맨에게도 고마웠습니다.

더 오래도록 웃고 싶었어요.
그런데 많은 예능이, 많은 유튜브 프로그램이 결방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더 볼 게 없었습니다.

웃음을 책임지는 개그맨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어요.

선생님, 어쩌면 위대한 위인은 개그맨들인지도 몰라요.
다음번엔 유재석씨가 조세호씨 놀리는 레전드 짤만 모아놓은 걸 봐야겠어요.

태그:#이태원,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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