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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옛그림과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화와 생활,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살구꽃은 봄을 상징하는 연분홍의 꽃이고, 살구는 여름이면 먹을 수 있는 주황빛 열매이다.

예쁜 꽃과 맛있는 열매를 가진 우리에게 친근한 살구나무의 '살구'는 순우리말이다. 하지만 '개를 죽인다(殺狗)'는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그 이유는 씨인 행인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김득신, 비단에 채색, 22.4x27cm, 간송미술관 소장
▲ 긍재전신첩 - 파적 김득신, 비단에 채색, 22.4x27cm, 간송미술관 소장
ⓒ 공유마당(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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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전신첩>에 실린 이 그림은 다양한 제목으로 불린다. 그중 '묘박계추', '야묘도추'는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도망치다'라는 뜻이고, '파적(破寂)'은 '고요함이 깨졌다'는 의미이다.

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잡아 도망치는 데서 시작해, 닭과 나머지 병아리 그리고 사람들까지 한바탕 소동이 난 상황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평화로운 봄날, 아기 병아리를 빼앗긴 어미닭은 침입자 고양이를 쫓고 다른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해서 흩어졌다. 돗자리를 짜고 있던 남자는 탕건(집 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 그 위에 갓을 썼음)까지 벗겨진 채, 긴 담뱃대를 휘두르지만 고양이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아내도 남편을 따라 맨발로 쫓아 나왔지만 넘어지는 남편을 붙잡기에도 이미 늦어 보인다. 그에 반해 도망치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는 고양이는 얄밉게 돌아보고 있다. 풍속화에 뛰어났던 긍재 김득신의 작품들 중에서도 해학과 기지가 잘 드러나 있는 그림이다.

이 집의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살구나무이다. 가지의 끝에는 꽃망울이 움트고 있어 그림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이형록, 19세기, 비단에 채색
▲ 책가도 제1폭 (부분) 이형록, 19세기, 비단에 채색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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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도의 일부이다. 책장과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 도자기·향로·청동기 같은 기물과 화훼 등을 그린 그림이다. 책거리라고도 한다.

살구꽃은 급제화라고 불렸는데, 그만큼 관문에 등용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꽃이다. 이는 과거의 전시(이미 2차에 걸친 과거에서 선발된 사람이 치르던 시험. 합격자를 재시험하여 등급을 결정했다)가 살구꽃이 만발한 매년 음력 2월에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풍악을 울리며 행진하는 유가를 그린 장면에도 항상 살구꽃이 등장했다.
 
신윤복, 19세기, 종이에 옅은 채색, 27.2×15.0㎝
▲ 사시장춘 신윤복, 19세기, 종이에 옅은 채색, 27.2×15.0㎝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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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기둥에 적혀있는 '사시장춘'이 이 그림의 주제이자 제목이다. 이 작품은 신윤복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춘의도(春意圖)류 풍속화로, 춘의도는 남녀 간의 성교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노골적인 장면은 없지만 닫힌 방문과 그 앞에 있는 남녀의 신발, 그리고 들어가도 될지 망설이고 있는 술병을 받쳐 든 소녀가 춘정(春情)을 함축해서 드러내고 있다.

오른쪽에 핀 봄꽃은 '봄의 정취' 혹은 '남녀 간의 정욕'이라는 2가지 뜻을 가지는 춘정에 걸맞은 소재이다. 이 꽃은 일반적으로 살구꽃(그림을 설명하는 자료에 따라, 매화나무의 꽃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하는데, 행화촌(살구꽃 핀 마을)은 술집을 의미한다. 술집 앞에는 살구나무를 심곤 해서, 살구나무가 보이면 술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병풍 186.9x262.8cm, 화면 각 폭 166.5x 52.8cm
▲ 화훼도 병풍 19세기 ~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병풍 186.9x262.8cm, 화면 각 폭 166.5x 52.8cm
ⓒ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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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도 4폭 병풍 중 <살구와 월계화> 그림이다. 각 폭마다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종류의 꽃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연분홍의 살구꽃과 붉은 월계화를 그렸다. 이 꽃을 벚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살구나무와 벚나무 모두 장미과에 속한다. 
 
살구꽃(좌)/벚꽃(우)
 살구꽃(좌)/벚꽃(우)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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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숲(행림)은 옛날에 의사나 병원을 칭송하여 이르는 말로 쓰였다. 이는 동봉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데, 삼국시대 오나라의 의사 동봉은 치료비 대신 환자들에게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이었던 사람은 5그루, 가벼운 질병이었던 사람은 1그루를 심게 했고, 몇 년이 지나자 살구나무가 수십만 그루가 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행인
 행인
ⓒ 윤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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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의 씨를 말린 행인은 현재까지 한의원에서 다용하는 약재이다. 맛은 쓰고 약간 매우며 성질은 따뜻하다. 기침을 멎게 하고 천식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지방유가 있어 대변이 잘 나오게 한다.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도 도움이 된다.

독이 약간 있기 때문에 씨의 껍질과 뾰족한 끝은 버려야 하며, 오래 끓이면 독성이 완화된다. 많은 양을 먹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우며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 두통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urilton7 에도 실립니다.


태그:#행인,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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