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혁신의 노예]
낮은 휴업 수당으로 다쳐도 쉬지 못하고 휴게 장소도 없어

"다친 배를 움켜쥐고 다시 배달"...
법외인간 배달 노동자

7.

대한민국

글.신상호

사진.이희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한국의 배달노동자들은 법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자영업자 신분으로 일하는 이들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아르바이트에게도 적용되는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법 개정으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적용 대상이지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은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극한으로 내몰고 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과노동은 흔한 일이다.

5년째 배달 노동을 하고 있는 김정훈(40)씨는 지난 2019년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오른쪽 신장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소변에서 피가 나오고, 걷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10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은 그는 퇴원을 하자마자 또다시 오토바이에 올라야 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도 소용없었다.

"당시 산재보험으로 지급되는 휴업 수당이 하루 6만 원 정도였어요. 최저시급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도저히 생활이 안되는 정도였어요.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고, 빚이 쌓이는데, 의사 권유대로 쉴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쉬어야 하는데 골병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일했어요."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일을 했던 후유증은 지금도 그를 괴롭히고 있다. 다쳤던 신장 쪽에 불쾌한 통증들을 지속되고 있는 것. 김씨는 "다치기 전에는 없던 신장 통증들이 계속 나타난다"면서 "병원을 가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낮은 휴업수당으로 인해 쉬지 못하고 라이더들이 일터에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배달 라이더 급히 달려가는 사진

낮은 휴업수당... "현실화 필요"

실제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라이더에 대한 산재 휴업수당은 최저임금과 같다. 고용부가 고시한 배달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하루 5만 3313원. 산재 보험의 휴업 수당은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한다. 그런데 이 금액이 최저임금보다 낮을 경우,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이에 따라 배달노동자들의 휴업수당은 최저 임금에 준해, 하루 7만 3280원이 지급된다. 이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되는 사고는 산재 보장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작업의 특성상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돼 있는 라이더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홍창의 민주노총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현재 산업재해로 인한 휴업 수당의 경우, 배달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벌어들이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면서 "배달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 등을 반영하고, 휴업수당을 현실화해서 산재 보장성을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휴게 시간과 함께 쉴 장소를 적절하게 보장되지 않는 점도 배달노동자들의 고민거리다.

지난 2021년 12월 민주노총이 배달 라이더 172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전업 배달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47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노동자(하루 8시간, 주 40시간 기준)들보다 2시간 이상 일을 하는 과노동 상태인 셈이다. 배달 노동자들은 배달이 몰리는 시간에는 숨돌릴 틈도 없다고 말한다. 시야가 흐릿해지거나 졸음 운전을 하는 등 '과로노동'을 했던 배달 노동자들의 경험담은 흔하다.

비오는 밤에 오토바이로 배달 중인 라이더

"나도 모르게 과로, 큰일 날 뻔"

올해 1월 이아무개씨도 배달을 하다가 시야가 흐릿해지는 번아웃 증상을 겪었다. 이씨는 "당시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던 때였는데, 어느 순간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면서 "시야가 흐릿해져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늘을 봤는데, 갑자가 눈물이 쏟아지더라"라고 말했다.

신아무개씨도 의지와 상관 없이 졸음 운전을 했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그는 "저녁에 쉴새없이 배달할 때였는데,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몸에 피로가 굉장히 쌓여있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오토바이를 타면서 바람을 맞으면서 가는데도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아 부랴부랴 근처 쉴 곳을 찾아 쉬었다"고 했다.

휴게 공간도 마땅치 않다. 노동자에게는 회사 측이 휴게 공간을 설치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무화 돼 있지만, 자영업자인 배달노동자들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요 배달앱들에게 휴게 공간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물류 창고 내에 있는 화장실을 쓰게 해주는 것 정도가 전부다.

서울시의 경우,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배달 노동자 전용 쉼터가 있기는 하지만, 서초동과 북창동, 합정동 등 3곳에 불과하다. 주변에 쉼터가 없는 배달 노동자들은 대부분 길거리나 공원 등에 오토바이를 대놓고 휴식을 취하는 형편이다. 배달 복장을 하고 카페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배달노동자 이진혁씨는 "핼멧과 조끼 등 복장으로 인해 카페에 들어가면 일단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게 된다"면서 "어느 날은 카페에서 앉아서 쉬는데, '배달원들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웬만해선 카페에서 쉬지 못하고 야외에서 잠깐 쉰다"고 했다.

배민라이더스 김문성씨도 "가을이나 봄 같은 경우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쉴 수 있지만 문제는 날씨가 더운 여름, 날씨가 추운 겨울"이라면서 "라이더들도 쉴 권리가 있고 쉬어야 하는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토로했다.

이성종 서울노동권익센터 쉼터운영위원장은 "배달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기 때문에, 쉼터가 곳곳에 있어야 하는데, 현재 쉼터 확장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바깥에서 일하는 분들의 경우 추위와 더위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는 만큼, 쉼터 확장에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더 단체 행동하는 사진

지지부진한 사회적 논의

배달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올해 1월부터 배달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는 등 노동환경이 일부 개선되기도 했지만, 노동권 전반을 보장하는 사회적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3월 발의된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의 경우 정부와 여당(당시 민주당) 차원에서 적극적인 입법 추진을 진행했지만, 노동시민사회의 거센 반발 속에 논의가 중단됐다.

이 법에는 플랫폼 운영자에게 서비스 내용과 이용 수수료 부과 기준, 계약 기간과 해지 사유 등이 담긴 서면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하고, 일감 배정이나 보수 등을 정하는 알고리즘 정보 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등 노동계 요구를 일부 수용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라이더노조 등은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인정받는 게 중요한데, 배달노동자가 '플랫폼법'의 적용을 받을 경우 보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홍창의 민주노총 플랫폼노조위원장은 "법적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배달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따로 법을 만들기보다는 배달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노동계 입장에선 당연한 주장인데, 한국 사회 현실에 비춰볼 때 이를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2021년 논의됐던 플랫폼노동자법은 배달노동자들을 사실상 '제3영역의 자영업자'로 만드는 형태였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쟁취했던 권리도 후퇴시켰던 법안"이라면서 "배달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강화를 위해선 우선 근로기준법상 보장되는 권리를 배달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확대되는 형태의 제도 개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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