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4 05:09최종 업데이트 22.10.24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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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가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꽃잎을 뿌리며 성소수자를 축복하고 있다. ⓒ 주피터


2019년 8월 31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역 북광장에서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인 무지개예수가 성소수자 축복식을 열었다. 바로 전해에 열린 1회 행사가 보수 개신교계 혐오집단의 폭력과 방해로 진통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동환 목사는 이 축복식에 집례자로 함께했다. 이 목사는 다른 두 집례자와 함께 꽃잎을 뿌리며 성소수자들을 축복하고 환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당시 현장에서 직접 그 모습을 보았다. 행사는 전해보다 안정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광장 주변을 둘러싼 반대 집회에서는 혐오 발언이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왔다. 하지만 꽃이 뿌려지는 순간만큼은 그 소음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쩌면 눈부시게 인상적인 한순간으로 기억에 남고 지나갈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후 이동환 목사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 목회자들이 이 목사가 동성애자를 축복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기감 충청연회·중부연회 목회자들이 경기연회에 청원서를 냈고 이동환 목사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이동환 목사의 행위가 교리와 장정(기감의 역사와 교리, 법을 담은 문서) 중 범과의 종류를 규정한 재판법 제3조 8항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축복'에 내려진 처벌
 

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올렸다가 정직 처분을 받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6일 오후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광화문 감리회 본부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목회자의 자격과 품성 문제를 다루는 기감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사실관계 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동성애를 찬성하나 반대하나'라는 시대착오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약자들을 위해 사역을 하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위원회는 이 목사를 재판에 회부했다. 그리고 축복식이 열린 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른 2020년 10월 15일, 이동환 목사는 정직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는다.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 지지'를 이유로 목회자가 처벌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동환 목사는 항소를 결정했고 공은 기감 총회 재판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2년의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지난 20일 최종 재판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항소 기각, 기감이 스스로 만든 오점을 바로잡을 기회를 날려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며칠 전인 지난 15일에는 제5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의미심장하게도 이동환 목사에게 내려진 2년간의 정직이 끝나는 바로 그날이었다. 그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지 못했던 축제가 다시금 광장으로 돌아오자 이를 환대하듯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행사 현장을 찾았다.

비록 부스 운영을 위해 일하러 참석한 행사지만 나도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다만 이걸 깨달은 건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떠난 이후였는데, 도무지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행사장을 나설 때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공간을 벗어나 이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혐오집회' 바라보던 시민들
   
아니나 다를까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나는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를 위해 길게 늘어선 혐오집단을 지나쳐(나는 매고 있던 무지개 목걸이를 잽싸게 옷 속으로 넣었다) 잠시 숨도 돌릴 겸 근처 백화점 앞 벤치에 앉았다. 그런 내 옆으로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앉았는데, 한 명이 길게 늘어선 반대 집회 행렬을 보며 무엇이냐고 일행에게 물었다.

퀴어문화축제 얘기가 결국 나오겠고 그럼 좋은 소리는 못 듣겠구나 싶어서 황급히 이어폰을 끼려다 멈췄다. 그래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싶었다. 아래에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근처에서 퀴어축제 한다는데 그거 반대하려고 저렇게 집회하나 봐."
"아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재미있게 놀겠다는데 왜 저러는 거야?"
"저거 다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잖아, 동성애 하면 지옥 간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고 곧바로 교회 사람들은 저러고 다니다가 정치하겠다고 나오느냐며 화제를 옮겼다. 우려했던 이야기는 아니라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두 분의 유쾌한 대화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우리도 좀 재미있게 살아보겠다는데 왜 저래?"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회
 

15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중앙공원 입구에서 제5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가끔 한국 교회가 왜 그렇게 동성애에 집착할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짐작이 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닌데 심정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금 교리와 장정 재판법 제3조 8항을 떠올려보자.

마약은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 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거나 적어도 의학적 조치를 넘어서 함부로 남용되어선 안 된다. 도박은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 적당히 하면 모르겠는데 그게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런데 동성애는? 동성애자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나? 그렇지 않다. 지금과 똑같은, 단지 동성애자가 사라진 세상일 뿐이다. 그리고 일단 그런 일이 벌어질 리도 없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모여 국가의 전복을 꾀하거나 범죄를 모의하는 그런 행사가 아니다. 그저 차별받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자유롭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축제일뿐이다. 이런 자리에 종교인이 참석해 자신의 신앙으로 존재의 긍정과 자유로움을 축복한다? 이걸 처벌할 일로 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한국은 종교가 있는 사람만큼 없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같은 종교 신자들 사이의 입장도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괴리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특히 교회의 경우 더 그렇다. 지난 4월 <국민일보>가 발표한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조사 대상 중 18.1%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동환 목사를 향한 처벌에 공감할까. 아니면 어이없어하며 역시 교회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할까. 기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교회가 얼마나 차별을 조장하고 혐오로 가득한 집단인지를 세상에 크게 알린 꼴로만 보인다.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이동환 목사는 축복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으로 입장을 밝혀왔다. 만일 사람들에게 축복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런 답이 돌아오리라 예상한다.

"그럼요, 저주를 한 것도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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