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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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가난한 세 자매에게 엄청난 돈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7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얻게 된 세 자매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정서경 작가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돈의 의미가 계속해서 바뀐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이었다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띄었다가, 자기 목숨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의미로도 변한다"고 설명했다. 

"결말에는 (세 자매에게) 다시 큰 돈이 주어지는데 가난한 세 자매가 이 돈을 얻어가게 되는 결말이라면,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처음부터 짚어서 보여주자라는 마음이었다. 처음 자매가 돈을 받았을 때는 이 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마지막에 끝났을 때는 그것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다 알고 있었겠지. 결말에서 자매들이 돈을 받았을 때는 인주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살 수 있고 많은 부를 얻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돈이 주어진 게 어떤 기회라든지 변화의 의미로 생각하면서 썼다."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인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돈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부동산 광풍, 재개발 등 묵직한 사회 문제들을 담아내며 최고 시청률 11.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을 기록했다. 

17일 오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정서경 작가를 만났다. 정 작가는 "정신 없이 드라마를 쓰고 또 정신 없이 방송을 보느라 잘 마무리 됐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한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청자분들이 드라마를 봐주시고 좋아해주셔서 행복하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작은 아씨들>을 통해 정서경 작가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속도감 있는 전개'였다고. 그는 "12회를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날아가는 것처럼 써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차를 탈 때 급발진 하면 목이 뒤로 꺾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달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중간중간 개연성이 희생될 때도 있고 시청자들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없는 순간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늘 함께 속도에 맞춰 달려주신 시청자분들이 있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부터 <독전> <친절한 금자씨> <비밀은 없다> <박쥐> 등 주로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정서경 작가는 2018년 방송된 tvN <마더> 이후 4년 만에 긴 호흡의 12부작 드라마로 돌아왔다. 정 작가는 '12부 대본을 머릿속에 한꺼번에 담고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작품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12개짜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처음, 중간, 끝을 다 가지고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1부를 먼저 썼는데 재미있더라. 1부에서부터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면서 썼고 전체적인 윤곽은 5부, 6부 사이에서 잡은 것 같다. 그조차 희미해서 제작진들이 늘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다른 점은 이야기의 길이에 있는 것 같다. 2시간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와 12시간짜리 이야기가 얼마나 다를까. 크기뿐만 아니라 깊이감도 다르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썼다."

늘 러닝타임 2시간에 익숙했다보니 12시간 분량의 이야기로 풀어내기 어려웠던 순간들도 많았단다. 정서경 작가는 "매 회 안 풀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3회였다. 2회까지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힘으로 끌고 왔고 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서 2시간까지는 풀게 되거든. 그런데 3회에 오니까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디로 뻗어나가야 하는지 동력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난관에 부딪혔던 많은 순간 정 작가가 찾아낸 해법은 등장인물들의 깊은 내면이었다. 그는 "인물의 가장 깊은 내면에 들어가서 거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주가 자기 마음 속 깊이 감춰져 있던 죽은 동생을 찾아내고 그 가난에 대한 공포를 동력으로 돈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었다. 이야기가 안 풀릴 때마다 인물의 깊은 곳에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릭터 결함으로 이야기 시작"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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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좇는 인간 군상들을 그리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민낯을 보여주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정서경 작가는 이 때문에 주변 지인들에게 '너는 왜 캐릭터를 호감 가게 그리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단다.

"사람들은 주인공이니까, 그 캐릭터를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을텐데 왜 꼭 싫은 지점들을 집어넣어서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걸 방해하는 거야?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이제까지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청자들이나 관객이 좋아할만한 특성을 한 번도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저는 캐릭터를 만들 때 일단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장면들, 이 캐릭터의 결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결함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등 정서경 작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 박찬욱 감독 역시 <작은 아씨들>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정 작가는 "(박찬욱) 감독님과 저는 원래 서로 대본을 보여주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 현장에서 굳이 대본을 보내달라고 하시더니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만났는데 드라마를 매번 공개 당일 혹은 다음날에 챙겨보고 계신다고 했다. 몹시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작은 아씨들>은 국내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그런 한편, 베트남 전쟁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현지 넷플릭스 방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극 중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 원기선 장군(이도엽 분)이 "한국 군인은 베트남 병사 20명을 죽일 수 있다", "어떤 군인은 100명까지 죽였다", "한국 군인은 베트남 전쟁 영웅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방영 중단 이전까지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1위를 달렸기에 더욱 아쉬운 대목이었다.

정서경 작가는 이에 대해 "(700억 원) 돈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그 시작으로 베트남전을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이 어떤 의미에서 경제부흥을 시작한 시점이기도 해서였다. 그런 맥락에서 (베트남전을) 다루다 보니까 현지 관점에 대해 (공부하는 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전의 사실관계를 정의하려고 했던 건 아니어서 베트남의 현지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현지의 비판을) 듣고 나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글로벌한 시장에서 작품을 집필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평소에도 댓글을 자주 찾아본다는 정서경 작가는 <작은 아씨들>을 향한 수많은 팬들의 반응을 다 확인했다며 그중에서 "미친 드라마"라는 댓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제가 정상적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이 좀 없는 편이다.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 사람들은 대중적인 드라마를 제작해왔으니까 정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을 믿으면 되겠지, 저들이 괜찮다고 하면 정상이겠지 생각했는데 작업을 함께하다보니 저들도 조금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래서 대본 중간중간 자신이 없었는데 하다 보니 봐주시는 시청자들도 미친 것 같더라(웃음). 그래도 시청자 분들이 즐기면서 함께 따라와주셔서 행복했고 특히 '미친 드라마'라는 댓글이 감사하고 기뻤다."

끝으로 정 작가는 앞으로도 명확하게 요약할 수 없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는 항상 메시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쓰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에) 메시지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본 다음에 어떤 이미지나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절실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언어로 요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드라마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명확하게 답을 요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답을 (드라마가) 안 했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저는 이런 상태를 지향하는 것 같다. 이번 작품으로 아쉬웠던 부분들을 모아서 다음 작품을 할 때는 좀 더 불편하지 않게, 매끄럽게 담고 싶다."
작은아씨들 정서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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