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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굳은 얼굴로 발언을 듣고 있다.
▲ SPC 본사 앞 추모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굳은 얼굴로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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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쩍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SPC그룹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에 대해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이 새삼 끔찍한 탓이다. 일터에서 야간에 10시간째 일하던 청년이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회사는 노동자를 사망케 한 기계를 흰 천으로 덮어놓고, 다음 날에도 동료들에게 일을 시켰다고 한다. 고인의 잔혹한 죽음도, 내게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서 일해야 했을 동료 노동자의 삶도 너무나 서글펐다.

서글픔을 넘어 분노케 하는 새로운 사실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회사는 사고를 확인하고도 119 신고까지 10분이 걸렸다고 하며, 사고부터 사망까지의 과정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SPC그룹이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 빈소에, 공장에서 납품하던 파리바게뜨 빵을 빈소에 놓고 갔다는 보도도 나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도 보인다. 분노한 시민들은 '피로 만든 빵'을 만들어온 SPC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다.

'피로 만든 빵'... 어떻게 만들어졌나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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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국정감사를 통해 새롭게 알려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SPL 평택공장에 산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보여준다. 노동자 측은 앞서 최소 3인 1조가 돼야 위험한 상황에 기계를 멈추는 등 대비할 수 있다고 요구했었으나, 사측은 회사 매뉴얼에 있는 소스 혼합공정 2인 1조 규정이 실질적으로 지켜지도록 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난 공장은 지난 5년 동안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6차례 받으며 8건의 위반사항을 지적받았음에도, 지난 7년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경영인증을 받았다. 사망사고 1주 전에도 끼임사고가 발생했지만, 사측은 즉각적인 의료지원 대신 사고 라인 모든 노동자를 불러 30분 동안 질책했다.

사측은 노동자 안전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 안전 조건을 검증해야 할 기관의 부실 검증은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는 사측의 행태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으로 노동 안전 방치가 일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SPL 평택공장 사망사고에 대해 파악하라고 했던 구조적인 문제가 곳곳에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구조적 문제 파악' 요구한 윤 대통령 vs. 중대재해법 '완화'에 방점 찍은 정부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절절한 구호는 대한민국에서 낯설지 않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828명,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조적 문제 파악을 지시한 이유도 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지시와는 반대로, 정부는 산재 예방의 구조적 책임을 제도화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표리부동'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기재부가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처벌법 및 시행령 완화 내용을 담은 개정방안을 제안했다. 기재부 개정방안에는, 중대재해법 중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을 아예 삭제하거나 중대산재를 징벌적 손해배상에서 제외하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고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중대재해법 제정의 의의 중 하나는 경영책임자 처벌 등 안전확보의무 규정으로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 보호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대재해법에서 경영책임자 처벌을 완화하자는 것은, 곧 법의 핵심을 쏙 빼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시행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자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와 중대재해법의 무력화 시도는 이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법 시행 후 처음으로 기소된 두성산업 측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것이다. 신청 시점은 지난 13일, 이번 SPL 끼임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이틀 전이었다(관련 기사: 직원 16명 독성간염... 그런데도 중대재해법 탓하는 사업주 http://omn.kr/217bm ).

지난 6월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도 기업 활동의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언급했고, 기재부는 기업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담은 개정방안을 고용노동부에 제안했다고 한다. 윤 정부의 지속적인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행보가 위헌법률심판 신청에 기름을 부은 셈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윤 정부의 행보로 볼 때, 윤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산재, '개인적 배려' 아닌 '구조적 예방' 돼야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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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구조적 문제 파악 지시와 함께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일어난 사고에 대해 한 번씩 더 들여다보고 살피라'는 지시도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소년소녀 가장' 언급은, 노동자의 산업재해라는 구조적 재난은 놔두고 개인적 상황에만 시선을 돌리게 하는 문제가 있다(유가족이 '소년소녀 가장' 표현에 난색을 보였다는 얘기가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은 누구든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음에도, 노동자의 상황에 따라 사고의 책임 여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재로 인한 죽음에도 '선별'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닌가.

지난 20일 발언에도 윤 대통령의 산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동료가 사망한 장소에서 일하게 한 SPL의 대처에 국민의 분노가 커지자 "서로 인간적으로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사회가 굴러가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산재 예방책임을, 마치 인간적 도리 차원, 윤 대통령이 즉 '배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노동안전 확보 의무를 기업의 선의에만 맡겼을 때 생기는 꼬리표는 뭘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 듣고 있는, '전 세계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이 그것이다.

만약 이 오명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그저 배려 차원이 아닌 '구조적 예방'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정부여당의 역할이겠다. 부동산 등 국민의 재산은 소중하게 지키겠다고 외치면서, 제 몸뚱아리 하나가 큰 재산일 수 있을 숱한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중대재해처벌법 완화가 아닌 강화를 직접 약속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신지혜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입니다.


태그:#SPC, #끼임사망, #산업재해, #중대재해처벌법, #피로만든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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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당의 새 이름, 새진보연합 대변인입니다. 2022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였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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