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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SPL 제빵공장 사망 사고, 청년-대학생 기자회견 “죽음으로 만들어진 빵 거부한다”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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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PC그룹 계열의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삼표산업에서 사고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고, 삼표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적용' 사업장이 되었다. 2월엔 에어컨 부품 제조회사인 '두성산업' 소속 노동자 16명의 급성 독성 간염 재해가 확인되었다. 두성산업은 직업성질병 중대산업재해로 1호 사업장이 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업주가 기소된 첫 사례가 됐다. 

반면, 두성산업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13명 노동자가 독성간염 판정을 받은 대흥알앤티 사업주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없다는 검찰 처분을 받았다.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에 세척제를 납품했던 업체 대표는 유해화학물질 허위 기재로 구속되었다.

이후 두성산업 사업주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고, 두성산업 사업주는 "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몰랐다"는 취지로 말하며 오히려 세척제를 납품한 업체 대표가 자신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지난 13일, 아예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너무 과하고 모호하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노동자 말 청취 절차만 있으면 체계 갖춘 것인가 
  
2022년 6월 작은사업장 노동자 건강권보장 전국네트워크에서 화학물질 관련 선전물을 배포했다.
▲ 매일쓰는 화학물질 돌아보기 2022년 6월 작은사업장 노동자 건강권보장 전국네트워크에서 화학물질 관련 선전물을 배포했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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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물질로 독성 간염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있지만, 두성산업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었고 대흥알앤티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산업안전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대흥알앤티에 단지 종사자 의견청취 절차가 있엇단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췄다'고 판단했다. 두성산업은 국소배기장치 자체가 없었고 대흥알앤티는 국소배기장치가 있었지만 성능이 나쁜 탓에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결국 두 업체 모두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 특수검진 모두 제대로 이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검찰이 두 업체에 대해 내린 결과는 우려스럽다. 사측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내용이 아니라 그저 형식적인 틀 정도만 갖춰도 그 체계를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두 사례를 우리 일상에 대입해보면 이런 상황인 것이다. 통상 고기나 생선을 굽는 식당에서는 식탁 위에 연기를 흡입하는 닥트(환기시설)가 있거나 또는 거대한 환풍 장치를 배치하거나, 여러 다른 방식으로 연기 배출을 위한 장치를 한다. 만약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점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연기가 가득하다고 상상해보자. 흡입 닥트가 아예 없는 식당이 있고, 흡입 닥트는 있지만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식당이 있다. 어디가 더 나쁘고 덜 나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국소배기장치가 있고 없고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두성산업 경영책임자의 주장대로 세척제를 납품한 제조사가 속였다해도 평상시 안전을 위한 조치가 되었다면 급성 간 중독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안전보건관리를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무시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소배기장치가 없거나, 있어도 제 기능을 못하는데도 사측은 평상시 전혀 이를 관리하지 않았고 개선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유해화학물질 흡입을 막을 수 있는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무조건 일을 하라고 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문제가 있는지 체크하지도 않았다.

일단은 현장의 안전설비나 안전보건장구가 가장 큰 문제지만, 그보다도 사측의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지급과 정기적 건강검진, 이런 수준 정도만 갖췄어도 노동자들의 집단적 급성 간 중독 재해는 없었을 것이다. 대단히 큰 시설과 개선이 필요한 것도 아닌 셈이다.

김용균씨 사망 뒤... 계속되는 재판서 '이 정도일줄 몰랐다'는 증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박석운 공동대표와 이용우 공동집행위원장, 권두섭 정책법률팀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법안이라며 경총과 사용자 단체, 국민의힘에게 법 개정을 위해 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박석운 공동대표와 이용우 공동집행위원장, 권두섭 정책법률팀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법안이라며 경총과 사용자 단체, 국민의힘에게 법 개정을 위해 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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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4일, 김용균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항소심 세 번째 재판에서 피고인과 피고 측 증인 신문이 있었다. 당일 검찰은, 사망사고가 난 상황에서 작업을 위한 '스탠바이(대기)'를 혼자 판단해서 지시했냐고 물었는데, 여기에 사측 증인은 일상적인 상황으로 인식하였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대답했다.

판사 또한 증인에게 상부 지시를 받지 않고 라인을 돌렸는지, 나아가 바로 옆 벨트에서 이미 사망사고가 있었는데 (업무를) 멈춰야 한다는 걸 몰랐느냐고 물었다. 증인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혼자 판단했으며, 그 당시 어떤 부분이 작업중지 중인지도 몰랐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이 말은 결국 산재 사망사고가 일터에서 여전히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사고 이후에도 옆 라인을 다시 가동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말이다.

답변을 한 사람이 '인간미가 없는 악인'이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산재사고 상황에서도 그렇게 일단 일을 하도록, 해야만 하게 되어있는 조직문화라는 것, 나아가 그게 기업의 운영방침임을 보여주는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권한을 가진 사람, 바로 '책임자'

다시 위헌심판 제청 이야기로 돌아가서, 두성산업 대표는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내용이 모호하고 불명확하여 명확성 원칙을 위배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위헌심판 제청은 결국,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과하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경영책임자냐 안전책임자냐 직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인원을 충원하고, 마스크를 사업장에 두게 하고, 국소배기장치를 마련하고 평상시 관리하도록 지시하고 기업문화로 안전을 우선에 두는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바로 '책임자'다.

정부는 경영책임자들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일부 유예했지만, 그 기간 동안 어떤 개선과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냥 시간만 보낸 채 사안이 발생하면 법이 문제라고 제기할 뿐이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 사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중독사고가 반복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 게 맞다.

지금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지금도 중대재해처벌법에 근거하여 기소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꺼리는 분위기에서, 누가 위헌이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법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책임을 물으려 하겠는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인해 해당 재판이 중지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중대재해에 대한 조사와 책임묻기와 재발방지책 마련이 중지될 상황이다. 아직 한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고 수사하고, 나아가 법률에 따른 처분을 내려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화성 화일약품 노동자의 사망사고, SPC그룹 평택SPL제빵공장에서 있었던 노동자 사망사고는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자신이 책임지기 싫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며 던진 경영계의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 문제를 대하는 재판부도 노동부도 정부도, 자신들이 지닌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미정씨는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입니다.


태그:#위헌법률심판 제청, #중대재해처벌법, #김용균재단, #권미정, #법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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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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