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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물이 많은 곳입니다. 지명부터가 한자어로 하내(河內), 강안에 든 곳이란 뜻이죠. 굽이쳐 흐르는 홍강(Song Hong)과 또릭(To Lich)강 사이에 자리한 이 도시는 강이 모습을 바꾸며 호수를 남기고 그 위로 개발이 진행돼 유명한 호수 또한 품게 되었습니다. 여러 전설을 가진 호안끼엠 호수가 대표적이지요.

호안끼엠 호수는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수변도시인 하노이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데다 무더운 날씨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죠. 때문에 물가에는 뛰노는 아이들부터 손잡고 걷는 연인들, 이들에게 무어라도 팔려는 행상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호안끼엠 호수엔 다른 호수에선 찾기 어려운 특징도 하나 있습니다. 한복판에 있는 작은 섬에 사당을 세워 다리로 육지와 연결해 둔 것입니다. 이 곳의 이름은 응옥썬 사당(Ngoc Son Temple),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가 높은 명소입니다.

응옥썬 사당은 현지인과 외지인에게 서로 다른 이유로 인기가 있습니다. 외지인은 이곳을 여행지로 찾습니다. 첫째로 호수 안에 있는 사당이 특색이 있다는 점에서, 둘째로는 현지인들이 자주 찾아 그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는 이곳이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인을 기리고 있다는 점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 위인이 누구일까요. 한국에선 베트남의 이순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쩐흥다오 장군입니다.
 
응옥썬 사당에 들어서는 문.
▲ 베트남 응옥썬 사당에 들어서는 문.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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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베트남의 영웅, 쩐흥다오

쩐흥다오는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대월국의 두 번째 왕조인 쩐 왕조의 명장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공적인 쿠빌라이칸 시대 몽골제국의 침공을 세 차례 막아낸 것이죠. 1284년 있었던 두 번째 침공 때는 무려 50만 대군이 처들어오는데, 쩐흥다오는 수도를 잃고 항복하려는 황제를 설득해 응전에 나섭니다.

이때 그는 격장사라는 명문을 써 25만에 이르는 대병을 모집하고 이후 베트남 병법의 상징이 된 게릴라 전법으로 적을 괴롭힙니다. 그가 남긴 병법서 <병서요략>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베트민 장교들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쩐흥다오가 활약하던 시기,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30여 년 간 산발적으로 항전하긴 했으나 강화도 무신정권마저 개경으로 환도하며 1270년대부터는 완전히 몽골제국에 복속된 상태였습니다.

몽골은 한반도를 기반으로 두 차례 일본 원정을 준비했지만 태풍으로 좌절되며 눈을 인도차이나 반도 쪽으로 돌린 상태였지요. 세계만방으로 팽창하려는 몽골제국에게 인도차이나 반도의 곡창지대를 얻게 되면 군량걱정이 사라질 테니 대월국 침공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제국의 세 차례 침공은 모두 좌절됩니다. 대월엔 쩐흥다오가 있었고 그는 성과 육지, 바다에서 모두 적을 크게 물리칩니다. 이후 쿠빌라이칸이 사망하며 베트남은 당대 몽골제국의 대군을 격퇴하고 국토를 보전한 희귀한 나라로 기록됐습니다. 베트남은 몽골 뿐 아니라 당과 송, 원, 명, 청, 중화인민공화국을 상대로도 전쟁을 벌여 승전한 바 있으니 이들의 자부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쩐흥다오는 베트남인들은 물론 해외 여행객들에게도 지명도가 높습니다. 조상신을 섬기는 많은 베트남인들이 쩐흥다오를 신으로 추앙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응옥썬 사당엔 쩐흥다오 외에도 다른 신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것도 참 재미있는 대목인데, 유불선 삼교를 제 식으로 받아들이는 베트남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중앙 제단 위에 모셔진 신 중 제가 알아본 것은 크게 셋입니다. 하나는 쩐흥다오이고, 다른 하나는 문창제군, 마지막은 관우지요.
 
하노이 응옥썬 사당은 내부 촬영이 금지돼 있어 건물 외관만 촬영할 수 있다.
▲ 베트남 하노이 응옥썬 사당은 내부 촬영이 금지돼 있어 건물 외관만 촬영할 수 있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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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잘 치르길 비는 마음은 베트남도 마찬가지

문창제군은 중국 도교가 섬기는 신으로, 학문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학과 공부를 달성하려는 이들이 문창제군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과거시험이나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중요한 신이었죠.

붉은 얼굴에 검은 수염을 늘어뜨리고 녹색 옷을 입은 형상은 영락없이 관우입니다. 그 곁에 청룡언월도를 든 무장은 그의 부장인 주창이지요. 문창제군과 관우는 베트남의 사당이 중국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입니다. 여기에 쩐흥다오를 가운데 모셨으니 베트남식 사당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학구열이 높은 베트남인들은 문창제군에게 시험합격을 빕니다. 관우신에게는 집과 일터에 재앙이 닥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지요. 쩐흥다오에게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빕니다. 신들로 가득한 좁은 섬에서 부적을 사서 태우고 기원하는 이들에겐 삶이 꼭 그만큼 간절한 것도 같습니다.

옥으로 만든 산처럼 보인다 해서 응옥썬(玉山)이라 이름 붙은 사당과, 섬과 육지를 잇는 서욱교(栖旭橋)의 붉음이 아름답습니다. 하노이 사람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호안끼엠 호수 인근 건물에 호찌민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 쩐흥다오와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으로 손꼽힌다.
▲ 베트남 호안끼엠 호수 인근 건물에 호찌민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 쩐흥다오와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으로 손꼽힌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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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베트남, #하노이, #여행, #응옥썬 사당, #김작가 여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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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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