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아웃 들어가며 인사하는 이대호 9월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2사 1루 롯데 이대호가 안타를 쳐낸 뒤 더그아웃에 들어가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롯데 이대호 ⓒ 연합뉴스


롯데가 전설이 떠나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선물했다.

래리 서튼 감독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는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1방을 포함해 장단 9안타를 때려내며 3-2로 승리했다. 롯데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포스트시즌 탈락 시즌이 5년으로 늘어났지만 만원관중이 들어찬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64승4무76패).

이날은 롯데는 시즌 최종전이기도 했지만 올해 시즌 최종전은 의미가 남달랐다. 롯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자 KBO리그 역대 최고타자 중 한 명인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의 은퇴경기와 은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4타수1안타1타점을 기록했고 8회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올라 한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투수 데뷔전에서 홀드를 챙기고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프로 입단 6년 만에 트리플크라운 달성

지난 2017년 '라이언킹' 이승엽(SBS 해설위원)을 통해 탄생한 '은퇴투어'는 작년까지 두 번째 주인공이 나오지 않았다. 2020년 KBO리그 최초 2500안타의 주인공 박용택(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이 두 번째 은퇴투어의 주인공이 될 뻔 했지만 야구팬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무산됐다. 개인기록은 조금도 나무랄 데 없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경험이 없고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미진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다시 올해 이대호에 대한 은퇴투어 이야기가 나왔고 이번에는 그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대호는 KBO리그는 물론 해외리그에서의 뛰어난 실적, 그리고 국가대표로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20년이 넘는 커리어 내내 이렇다 할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았을 정도로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그렇게 이대호는 올해 올스타전을 시작으로 9월22일 LG 트윈스전까지 전국을 돌며 은퇴투어를 진행했다.

지금이야  한국야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선수가 됐지만 사실 이대호도 프로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여러 유망주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이대호는 경남고의 에이스 겸 4번타자, 그리고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중심타자로 활약했지만 부산고의 추신수(SSG랜더스)에 밀려 연고팀 롯데에 1차지명을 받지 못했다. 신생 구단으로 2차1라운드 우선지명권 3장을 얻은 SK 와이번스 역시 이대호를 거르고 투수 김희걸과 조형식,내야수 김동건을 지명했다.

이대호는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승승장구하며 한화 이글스의 미래로 떠올랐던 동갑내기 김태균(KBS N 스포츠 해설위원)에 비해 성장속도가 조금 느렸다. 2004년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20홈런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많은 야구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체중을 감량하지 않으면 프로무대에서 롱런하기 힘들 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2006 시즌에 증명됐다.

이대호는 2006년 타율 .336 26홈런88타점을 기록하며 1984년의 이만수에 이어 22년 만에 타격 트리플크라운의 주인공이 됐다. KBO리그에서 투수 트리플크라운은 3명의 선수(선동열,류현진,윤석민)에 의해 6번이 나왔지만 타격 트리플크라운은 단 2명이 세 차례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6년에 달성한 트리플크라운이 이대호의 커리어에서 최고 시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인미답 7관왕과 일본시리즈 MVP까지

2009년 3년 연속 3할을 유지하던 타율이 .293로 떨어진 이대호는 2010년 아쉬움을 털어내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시즌'을 만들어냈다. 127경기에 출전한 이대호는 타율 .364 44홈런133타점99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111의 성적으로 도루를 제외한 7개의 개인타이틀을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에도 3관왕(타율,최다안타,출루율)에 오르며 FA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며 해외리그 도전을 선택했다.

2012년 오릭스 버팔로스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일본 진출 첫 해부터 퍼시픽리그 타점(91개)과 OPS(.846) 1위에 오르며 빠른 적응을 보였다. 2013년에도 타율 .303 24홈런91타점으로 맹활약한 이대호는 2014년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해 첫 해 3할 타율과 함께 최다안타 2위(170개), 2015년에는 31홈런98타점과 함께 일본시리즈에서 16타수8안타2홈런8타점을 몰아치며 MVP에 선정됐다.

일본에서의 4년 동안 타율 .293 98홈런348타점으로 맹활약한 이대호는 2016년 미국으로 눈길을 돌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만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 루키로 활약한 이대호는 풀타임 주전자리를 보장 받지 못했고 투수친화적인 세이프코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104경기에서 타율 .253 14홈런49타점을 기록하며 '조선의 4번타자'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5년 간의 성공적인 해외리그 생활을 마친 이대호는 2017년 '친정' 롯데와 4년 총액 150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에 계약을 맺고 다시 부산 사직야구장을 누볐다. 이대호는 2017년 34홈런111타점으로 롯데를 5년 만에 가을야구로 복귀시켰고 2018년에도 37홈런125타점을 기록하며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대호는 2019년부터 작년까지 성적이 조금씩 하락하면서 팬들을 걱정시켰다.

2021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2년 계약을 체결한 이대호는 일찌감치 2022 시즌이 끝나면 현역생활을 마감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은퇴시즌을 맞은 이대호는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332 23홈런101타점 179안타를 기록했다. 이대호는 만40세 시즌에 100타점을 돌파하면서 은퇴시즌에 100타점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올해까지 5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롯데는 이대호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 은퇴를 말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대표팀에서 더욱 강해지는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부산의 빅보이'를 넘어 '조선의 4번타자'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표팀에서의 뛰어난 활약 덕분이다. 실제로 이대호는 대표팀에서 타율 .296 11홈런49타점을 기록한 이승엽, 타율 .364 3홈런43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김현수(LG)와 함께 '국대3대장'이라 불릴 정도로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대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결정적인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성인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이대호는 타율 .409 2홈런10타점을 기록했음에도 한국야구가 '도하참사'를 당하는 바람에 활약이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대호는 2년 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9경기에 모두 출전해 타율 .360 3홈런10타점을 기록하면서 한국의 '퍼펙트 금메달'에 크게 기여했다. 베이징 올림픽은 이대호가 일본 및 해외 구단에 깊은 인상을 남긴 대회였다.

이대호는 해외진출을 앞두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타율 .368 1홈런6타점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571의 타율을 기록했던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워낙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면서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대형홈런을 때린 이대호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대호는 한국이 조기 탈락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홀로 11타수5안타(타율 .455)로 맹타를 휘둘렀다.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3할대의 고타율을 기록하던 이대호는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된 후 출전했던 2015 프리미어12에서 타율 .222로 주춤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9회초 2타점 짜리 역전 결승 적시타를 때리며 한국의 초대 우승을 견인했다. 국제대회에서 통산 타율 .323 7홈런49타점의 성적을 남긴 이대호는 2017 WBC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조선의 4번타자'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았다.
'
롯데와 부산을 저버리지 않은 의리의 사나이

통산 타율 .309(14위) 2199안타(5위)374홈런(3위)1425타점(3위). 타자로서 기량이 최고조에 오를 수 있는 30대 초·중반 5년(2012~2016년)을 해외에서 보낸 이대호의 통산 성적이다. 만약 이대호가 온전히 KBO리그에서만 선수생활 전부를 보냈다면 안타와 홈런,타점 등 대부분의 기록에 이대호의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것이다(물론 통산 홈런,타점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승엽 역시 전성기 구간 8년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 시절 일본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에는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이대호가 무려 17년 동안 활약하며 청춘과 황혼의 시간을 모두 바쳤던 고향팀 롯데에서는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적도 없다. 개인성적부터 대표팀 활약까지 완전무결해 보이는 이대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흠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부진했던 팀 성적이다.

하지만 이대호는 해외리그에서 활약했던 5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롯데를 제외한 다른 팀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다면 전력이 더 강한 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었지만 이대호에게 롯데가 아닌 다른 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처럼 이대호가 롯데, 그리고 부산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롯데팬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대호의 영구결번 지정에 팬들의 작은 이견이나 잡음조차 없는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조선의 4번타자 은퇴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