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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에 미르길이 있다. 헌복동에서 서망항까지 19.7km 길이다. 바다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하는 오솔길이다. 하늘로 오르는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미르는 용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미르길 4코스 '굴포 트레킹길'을 걸었다. 굴포항에서 동령개마을까지 7.1km 이어진다. 미르길 여섯 구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코스다. '물길 따라 걷는 힐링 숲길'로 2021년 '걷고 싶은 전남 숲길'에 뽑히기도 했다.

윤고산사당

미르길 4코스가 시작하는 굴포 바닷가에 윤고산사당(尹孤山祠堂)이 있다. 고산 윤선도가 바닷물을 막기 위해 만든 둑에 있다. 그곳을 가운데 두고 짝별방파제와 굴포방파제가 양옆에서 감싼다.
 
  둑을 쌓아 농사지을 땅을 만든 고산 윤선도에게 고마워하며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 윤고산사당  둑을 쌓아 농사지을 땅을 만든 고산 윤선도에게 고마워하며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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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은 1649년부터 1650년까지 굴포에 머물렀다. 그때 바다를 메우려고 둑을 쌓았다. 몇 번이나 쌓았지만 무너졌다. 어느 날 밤, 구렁이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서리가 내려있었다.

그 자리를 따라 둑을 쌓았더니 무너지지 않았다. 농사지을 땅 30만여 평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며 고산 윤선도에게 고마워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고산 윤선도 제사를 지내는 이유다.

한동안 이곳은 배중손사당이었다. 2021년, 용장성에 삼별초 추모관이 생겼다. 이곳에 있던 배중손 장군 동상과 항몽순의비가 추모관 앞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곳은 다시 윤고산사당이 되었다.

굴포 트레킹길

짝별방파제를 출발했다. 바닷가를 따라 윤고산사당을 지나 굴포방파제에 이르면 미르길 4코스 안내판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숲길이다.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폭만 넓혔다. 작은 물결이 바위에 부서지고, 시원한 바람이 늦더위를 몰아냈다.
 
  앞이 탁 트였다. 운이 좋으면 앞에 있는 섬 왼쪽으로 추자도와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 굴포등대  앞이 탁 트였다. 운이 좋으면 앞에 있는 섬 왼쪽으로 추자도와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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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땅을 조용히 지나고, 조금 더 가면 굴포등대가 갯바위에 세워져 있다. 하얗고 작은 등대다. 굴포항으로 오가는 뱃사람에게 뱃길을 알려준다. 앞은 탁 트였다. 큰 바다다. 운이 좋으면 추자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추자도는 직선거리로 45km쯤 떨어졌다.
 
  바닷가로 내려가 갯바위에 서면 하늘도 바다도 온통 새파랗다.
▲ 갯바위  바닷가로 내려가 갯바위에 서면 하늘도 바다도 온통 새파랗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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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넓고, 잘 만들어졌다. 비탈진 곳은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쌓인 곳은 양탄자처럼 폭신폭신하다. 갯바위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올 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가봐야 한다. 최고 전망대가 기다린다. 벤치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 보내기 좋다. 밑으로 내려가 갯바위에 서면 하늘도 바다도 온통 새파랗다.

진도자연휴양림 앞을 지났다. 길 양옆에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밑에는 어린 동백나무가 수두룩하다. 절개를 나타내는 대나무숲도 있다. 곰솔, 후박나무, 비파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도만두나무, 다정큼나무, 소태나무 들도 함께 숲을 이뤄 하늘을 가린다.

굴을 따던 어머니가 물이 차오르자 아들을 애타게 불렀다는 업생이바위는 수풀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다. 간첩 무리를 잡은 뒤 만들어진 해안 초소는 없어지고 넓은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구기자와 대나무 뿌리에서 샘솟는 물을 마신 마을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천수샘에는 지금도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굴포 트레킹길이 끝나는 곳이다. 오목하게 들어선 개어귀 마을이다.
▲ 동령개마을  굴포 트레킹길이 끝나는 곳이다. 오목하게 들어선 개어귀 마을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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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포 트레킹길 마지막은 동령개마을이다. 오목하게 들어선 작은 개어귀 마을이다. 줄지어 선 느티나무와 팽나무 너머로 바다가 시원스럽게 보였다. 파도가 밀려와 작은 몽돌에 부딪혀 싱그러운 소리를 냈다.
 
  진도자연휴양림 산림문화휴양관이 거북선 모양이다. 모든 방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 산림문화휴양관  진도자연휴양림 산림문화휴양관이 거북선 모양이다. 모든 방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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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자연휴양림 숲속의집에 짐을 풀었다. '섬, 바다, 숲, 소리가 함께하는' 곳이다. 드넓은 바다를 품었다. 산책로만 걸어도 본전을 뽑을 만하다. 휴양관은 거북선을, 숲속의집은 판옥선을 본떠서 만들었다. 어느 곳에 머물러도 바다가 보인다.
 
  휴양림 앞 먼바다가 아침노을을 받아 발갛게 물들었다.
▲ 휴양림 앞바다  휴양림 앞 먼바다가 아침노을을 받아 발갛게 물들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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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밖에 나와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밤새 풀벌레 우는 소리가 파도 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날이 밝아지고 해 뜰 무렵이 되자, 휴양림 앞 먼바다는 아침노을을 받아 발갛게 물들었다.

여귀산

아침 일찍 여귀산(女貴山)에 올랐다. 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오르기 쉬워 보여도 빽빽한 숲을 지나고 바위를 타야 한다.

미르길 2코스 근방 여귀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길 건너 오른쪽으로 150m쯤 가면 들머리다. 농장에서 키우는 개들이 새벽 손님을 맞이하는 듯 한꺼번에 짖어댔다. 철조망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왔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가야 할 여귀산 정상과 벌바위가 뚜렷하게 보인다.
▲ 여귀산 정상과 벌바위  산등성이에 오르면 가야 할 여귀산 정상과 벌바위가 뚜렷하게 보인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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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거칠어질 즈음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산 아래쪽과 바다는 안개로 덮였지만, 올라야 할 벌바위와 여귀산 정상은 아침 햇살을 받아 뚜렷하게 나타났다. 산등성이 길은 바윗길이다. 조심스럽게 걸었다. 오르는 바위마다 몸에 좋다는 부처손이 떼 지어 붙어 있었다.

작은여귀산이라고도 하는 벌바위에 올랐다. 낮은 산들이 안개에 잠겨서 등성이만 길게 이어져 보였다. 산과 바다와 들녘 경치가 넋을 잃게 했다. 정상 전망이 기대되어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벌바위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밀매실재로 갔다.
 
  맨 꼭대기에 서면 사방으로 산과 바다와 들녘이 보인다.
▲ 여귀산 정상  맨 꼭대기에 서면 사방으로 산과 바다와 들녘이 보인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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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남서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섬들이 안개에 싸여 보일락말락 했다.
▲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진도 남서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섬들이 안개에 싸여 보일락말락 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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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벌바위 너머 산들이 안개에 잠겼다.
▲ 벌바위  지나온 벌바위 너머 산들이 안개에 잠겼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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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귀산 정상을 향해 다시 치고 올라갔다. 그늘진 숲길이지만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철계단을 오르고, 쇠줄을 잡고 오르고, 바위를 기어오른 뒤에야 정상에 섰다. 해발 457.2m다. 사방팔방으로 훤하게 트여 있어 어디를 봐도 절경이었다.

진도 남서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새 떼 같은 섬 조도(鳥島)는 안개에 싸여 보일락말락 했다. 지나온 벌바위 쪽 낮은 산들은 안개에 잠겨 잠에서 덜 깨어난 듯했다. 정상에서 한참 머물렀다.

다시 밀매실재로 내려와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은 동백나무 숲이다.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했다. 가파른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날머리가 나오고, 길을 건너니 바로 주차장이다. 두 시간 남짓 산행으로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여귀산은 이름 그대로 음의 기운이 강한 산이다. 그래서 예술의 힘이 넘쳐 흐른다. 육자배기, 다시래기, 씻김굿 같은 남도 음악이 여귀산 자락에서 나왔다. 산 아래에 국립남도국악원과 진도국악고등학교가 자리 잡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우리 가락이 널리 퍼져, 흥겨운 맛과 멋이 온 나라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태그:#미르길, #여귀산, #윤고산사당, #굴포트레킹길,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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