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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총학의 취소 해프닝이 벌어졌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강연 사진. 26일 저녁 고려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중계서비스도 진행됐다. 박 대표는 '초청해주시고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꽃도 받았다. (제가 오면) 욕만 들을 줄 알았는데 꽃도 받아서 좋다'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앞서 총학의 취소 해프닝이 벌어졌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강연 사진. 26일 저녁 고려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중계서비스도 진행됐다. 박 대표는 "초청해주시고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꽃도 받았다. (제가 오면) 욕만 들을 줄 알았는데 꽃도 받아서 좋다"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 유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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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많은 사람들이 입장이 어떻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그저 반갑고 고맙습니다. 고려대에 들어오면서 표어인 '자유·정의·진리'를 엘리베이터에서 봤는데, 2022년도에 자유·정의·진리는 도대체 뭘 이야기하는 걸까 고민을 했습니다." 

강연 취소 논란을 겪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가 26일, 현장에 도착해 초반에 꺼낸 말이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예정됐던 강연을 고려대 총학생회가 취소한 것(소식)을 듣고 참 슬프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왜냐하면 '지금 장애인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굉장히 지독한 장애인 차별적인 구조와 일상의 불평등, 이런 것들이 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범죄자' 운운 혐오발언들... 전장연 대표 강연 소식이 알려진 뒤 

사건의 시작은 지난 9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고려대 총학생회 페이지에 인권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박경석 대표의 강연 홍보 포스터가 올라왔다. 그러자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 강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을 넘는 비난과 혐오 표현이 난무했다.

이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에타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강연 취소를 결정했고, 이는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총학생회 측은 원래 공동 주최로 진행하기로 예정돼있던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이하 '인동') 측에도 학내에서 강연을 진행하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나는 고려대 학생이자 이 인권연합동아리 소속이다. 그러나 인동은 내부 논의 끝에, 해당 행사를 애초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인동의 공식 입장 표명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번 강연 취소는 장애 인권에 대한 명백한 혐오이고 장애 운동에 대한 백래시이기 때문"이며, "이렇게 취소된다면, (향후) 대학 내에서 논란이 있는 인권 이슈는 더 이상 다룰 수 없게 될 것"이라서였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함께 연대하고 실천한다'는 동아리 정체성과도 결부된 문제였기에, 동아리 측은 논란 속에서도 강연을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 흐름을 거쳐 26일 저녁, 예정대로 박경석 대표의 강연은 진행되었다.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 2022 장애인권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행사 시작 1시간 전, 일반인·학생 등 사람들이 행사 장소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약간은 긴장된 상태였다. 강연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공지가 추가로 올라가자, 에타 등 온라인상에선 '박경석 대표가 못 지나가게 막겠다'는 글 또한 올라왔기 때문이다. 혹시 그런 일이 실제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탓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강연 장소에 아무런 문제없이, 심지어 예정된 시간보다도 일찍 도착했다. 마련했던 좌석도 꽉 차면서 대략 80명 안팎의 인원이 이번 행사에 참여해, 지하철 시위를 다룬 영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함께 시청했다. 이후엔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박 대표의 강연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혐오에 반대하고 약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인 행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4호선엔 장애인 차별 철폐 역사 깃들어 있다"

박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지하철 출근길 투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왜 하필이면 4호선을 택했냐는 것. 대답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4호선 혜화역은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전치 4주 부상을 입게 된 곳이기도 하고, 서울에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생긴 곳이기도 하단다. 그리고 최근엔, 용산 대통령실과 가장 가까운 곳이 4호선 삼각지역이라고 한다. 결국 4호선은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자, 대통령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할때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이라는 설명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6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위해 ‘제 29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 박경석 대표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6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위해 ‘제 29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 박경석 대표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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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에서도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날 건대에서 장애인 회원분과 함께 강연에 왔다는 학우가 나눈 생생한 경험이 인상 깊었다. 우선 건대에서 고대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저상버스가 올지 안 올지 몰라서 지하철로 환승을 해서 왔다는 것. 그러나 지하철에서도 환승을 해야 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다른 곳으로 한참 이동해서 다시 내려가야만 겨우 환승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평소에 걸리는 시간보다 두세배는 더 걸렸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엘리베이터 보급률이 높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엘리베이터 보급률 100%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취지의 지적이었다. 결국에는 120%, 200%까지 만들어져야 모두가 평등한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에 덧붙여, 박경석 대표는 이러한 논의가 "서울 지역이라서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방은 서울처럼 지하철망이 잘 돼 있지 않고, 특히나 경북 지역은 저상버스가 거의 없다고 했다. 비참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실제 국토교통부 2020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경북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16.2%였다(시내대수 1212대, 저상 196대). 서울은 저상 도입률 비율이 57.8%로 전체 지역 중 가장 높았다. 

"내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그러려면 늘 '24시간 전에 예약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게) 감사하죠?"라는 박경석 대표의 일침이 인상깊었다.
     
26일 저녁 고려대에서 진행된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강연 뒤, 박 대표(오른쪽)가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26일 저녁 고려대에서 진행된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강연 뒤, 박 대표(오른쪽)가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 서울지역대학인권연합동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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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시끌'했던 그 전장연 강연은 예정대로 별탈 없이 진행돼 마무리되었다. 이날 강연 내용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어려움, 장애인 투쟁의 역사, 나아가 일부 정치인과 있었던 갈등의 내용 등 상식적인 것들로 채워졌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든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장애인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던 사회에,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출근길 시위'라는 시민불복종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이게 일부 정치인들의 지적처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시민들 간의 대립인 것인지, 아니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시민의 대우조차 받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처절한 호소인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때이다. 

태그:#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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