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6 17:36최종 업데이트 22.09.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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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돌이켜보면 냉전 시기에도, 냉전이 끝난 뒤에도 전쟁은 그치질 않았다. 베트남전쟁, 걸프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전쟁 같은 국가와 국가가 싸운 전쟁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유고 연방처럼 한 국가가 여러 국가로 나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 그리고 전쟁까지 이르지 않은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나 군사 분쟁들까지 세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충격적인 까닭은 두 나라가 유럽에 위치한 주권국가이기 때문이다. 1996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맥도날드 매장이 있는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일명 맥도날드 이론을 이야기했다.


국제 사회에 개방되어 경제적·정치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양국이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비해 충격적이긴 한다. 다만 커다란 충격 때문에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들이 힘을 얻는 것이 우려스럽다. 이런 고정관념은 각국의 군사비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에 대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때문이다.

러시아 침공 후 미·영 군수기업 주가 폭등

최근에 읽은 정치철학자 이진우 교수의 책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는 갈등을 "폭력이 아니라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제도적 평화주의"에 취했기 때문에 수많은 징후에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등한시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인류가 평화주의의 달콤함에 빠져 전쟁 가능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것일까? 구체적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인류는 평화의 시대라는 달콤한 말이 무색할 만큼 일상적으로 평화보다는 전쟁을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가 전쟁의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것은 평화에 젖어서가 아니라 전쟁 준비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착취와 불평등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사비 문제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들의 존재 그리고 군수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각국 정부의 정책은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독교 국가, 특히 유럽 국가들이 평화를 말하면서 군수산업으로 먹고사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꼭 기독교 국가나 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다. 북미 대륙의 미국이나 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 등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군사 강대국이고 가장 많은 무기를 생산하는 나라들이다.

해마다 각국의 군사비 지출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스톡홀름평화연구소(이하 '시프리 SIPRI')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의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019년보다 2.6% 증가한 1조 981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10년 전인 2011년보다 무려 9.3%가 증가한 금액이다. 2009년 세계적인 금융 및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인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군사비 지출을 늘려온 셈이다.

더욱이 2020년은 전대미문의 전염병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해다.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 대응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군사비 지출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2020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 현황. 출처 SIPRI YEARBOOK 2021 요약본 한국어판(피스모모 발행) ⓒ SIPRI YEARBOOK 2021

 
군사비 증가를 곧바로 전쟁의 원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무기 산업의 이익과 전쟁의 깊은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군사비 증가와 전쟁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사비 지출의 상당 부분은 신무기 개발과 무기 획득이다.

시프리에 따르면 세계 25대 무기 생산 및 군수 기업들의 총매출액은 2019년에 모두 3610달러로 추정되는데 이는 해당연도 군사비의 20%에 달하는 돈이다. 무기와 전쟁 물품 그리고 전쟁과 관련한 각종 서비스로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로서는 각국의 군사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매출과 이윤이 늘어난다. 이윤이 극대화되는 시점은 당연하게도 전쟁이 발발하거나 무력 충돌이 늘어날 때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 비극 속에서 군수산업체들은 막대한 돈벌이를 했다. 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이 지난 5월 말 미국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12.2%, 노스롭그루먼은 16%, 영국 BAE 시스템즈의 주가는 무려 17.7%가 급등했다.

한국의 군수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폴란드는 K2전차, K9자주포 등 모두 12조 원에 달하는 한국산 무기를 수입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 자국 무기를 지원하느라 텅 빈 무기고를 채우면서 한국산 무기 수입이 늘어났다. K2전차를 개발한 현대로템, K9자주포를 개발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전쟁 전과 비교해 여섯 달 만에 무려 40% 이상 올랐다.

전쟁이 이렇게 큰 돈벌이가 되다 보니 군수산업체들은 전쟁 정보를 발 빠르게 입수하고, 때로는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전쟁이나 군사적 분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의원 출신으로 군수산업체를 감시하는 국제단체 커럽션 워치(Corruption Watch) 사무국장인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무기 산업은 전 세계 무역 시장에서 가장 부패한 산업으로 국가안보를 핑계로 많은 정보와 의사결정이 민주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부패한 정부와 군수산업체를 무기 거래 중개인들이 연결해주면서 거액의 뇌물이 오가는데, 이를 파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사 어렵게 뇌물의 정황을 포착하더라도 관계자들이 처벌받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뇌물과 불법적인 로비가 전쟁 혹은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노골적인 방법이라면 정부나 군의 고위 관료를 군수산업체들이 경영자나 고문으로 데려가는 일명 회전문 인사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군수산업체의 회전문 인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딕 체니다. 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1989년~1993년 재임)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후 핼리버튼의 경영자가 되었다가 다시 부통령이 된 사례다. 딕 체니를 필두로 한 일명 매파가 이라크 전쟁을 강력하게 주장한 덕에 딕 체니가 경영자로 있던 핼리버튼은 전후 사업으로 110억 달러어치 계약을 미국 행정부로부터 따낸다. 딕 체니는 당시 핼리버튼과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부통령을 그만둔 뒤에도 핼리버튼으로부터 해마다 15만 달러씩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또한 고위 군인들이 군수산업체로 옮겨가는 회전문 인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방위산업체에 취직한 직업군인이 413명이었고, 비록 낙마하기는 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병관은 4성 장군으로 전역 후 군수산업체 고문으로 일을 했던 사람이다.

일상적으로 '전쟁하는' 사회

군사비 지출과 무기 거래를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것이 바로 무기박람회다. 반려동물 용품 박람회, 출산육아 용품 박람회, 보드게임 박람회처럼 무기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 전시를 하고 거래를 한다.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BAE 시스템즈 같은 세계적인 군수사업체들이 부스를 차려 전투기, 드론, 장갑차, 자주포 등 온갖 종류의 무기를 전시한다. 무기 획득을 담당하는 각국의 고위 국방 관료나 군인들이 박람회를 찾아와 군수산업체들과 거래를 한다.

무기를 사고파는 비즈니스가 끝나면 군수산업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시민들에게 행사를 공개하고 에어쇼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로 마치 무기박람회가 첨단과학기술의 경연장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팔린 무기가 어디서, 누구를 죽고 다치게 하는지는 철저하게 가려진 채로.
 

전세계 무기박람회가 열리는 곳들, 사진 출처는 오메가리서치 재단 https://omegaresearchfoundation.org/resources/arms-fairs ⓒ 오메가리서치 재단

 
무기박람회는 지구촌 모든 대륙의 나라에서 열린다. 군사 강대국이며 부유한 미국과 유럽 대륙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처럼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도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인 서울 ADEX(항공우주산업박람회), 지상군 무기 중심인 DX KOREA(대한민국방위산업전), 해양 방위산업 박람회인 MADEX 그리고 경찰 무기 박람회인 국제치안산업대전이 열린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아덱스는 홀수 해마다 성남 서울공항에서 개최되는데 가장 최근인 2021년 행사에서는 코로나 한복판에서 개최되었음에도 28개국, 440개의 전쟁기업이 참여했고 230억 달러어치의 수주 상담 실적을 기록했다.

아덱스가 쉬어가는 짝수 해에는 DX KOREA가 열린다. 올해에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는데 50개국 350개 군수산업체들이 참여했고 30여 개국에서 무기 획득 사업을 주관하는 고위 정치인과 관료들이 VIP로 박람회를 방문했다. VIP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다른 나라 내전에 깊숙하게 개입한 국가, 미국과 영국처럼 전쟁 중인 나라에 무기를 지원하는 국가, 인도네시아처럼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자국민을 탄압하는 국가들이었다.
 

2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시회(DX KOREA 2022)에서 해외 VIP 및 군 관계자들이 한국산 무기를 살펴보고 있다. 2022.9.21 ⓒ 연합뉴스

 
이처럼 세계 여러 대륙에서 쉬지 않고 무기박람회가 개최되고, 군수산업체들은 무기를 팔아 이윤을 얻기 위해 전쟁이나 분쟁을 조장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세계에서 전쟁은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전쟁을 떠받드는 일상적인 구조 중에서 주로 무기박람회와 군수산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전쟁은 일상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군부대 옆 기지촌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 지역 토착민들의 삶터를 빼앗는 군사기지 및 군시설, 미사일 실험과 군사훈련 같은 일상적인 전쟁 연습까지, 우리 일상과 사회 구조 곳곳에서 전쟁을 위한 토대는 끊임없이 작동하며 때로는 더 커지기도 한다.

물론 선전포고를 하는 정치인들, 전쟁 기간 국제법을 어기며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군인들의 책임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만 물어서는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DX KOREA 2022 VIP 환영 만찬장에서 저항 액션을 펼치는 평화활동가들. ⓒ 전쟁없는세상

 
우리가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일상적인 전쟁 준비, 전쟁을 위한 노력, 전쟁의 토대를 막아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 뒤 광장에 모여 반전을 외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이 무한반복 되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무기박람회를 막기 위한 평화 행동, 여성을 착취하는 군사 안보에 맞서 기지촌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활동, 군사화된 일상과 사회구조 또는 제도를 기록하는 활동들처럼 일상화된 전쟁 준비, 전쟁의 토대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은 다채롭다.

우리가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만 웃을 뿐이다. 전쟁과 전쟁을 준비하는 일을 지극히 예외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로 만들 수 있다면, 죽음을 파는 상인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전쟁으로 취한 이득을 사회 전체에 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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