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5 16:59최종 업데이트 23.02.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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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의 자랑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휴게소장과 우리나라에서 휴게소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회사의 본사팀장, 휴게소 납품업체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8년간 근무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의 글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청송(영덕방향) 휴게소 전경 ⓒ K-휴게소

 
2016년 12월 26일 개통한 서산-영덕고속도로 중 상주-영덕 구간 107.6km에는 2곳의 휴게소가 있다. 의성휴게소와 청송휴게소가 그것이다. 이중 안동분기점에서 영덕 사이에는 청송휴게소(영덕 방향) 한 곳이 있는데 이 휴게소가 이상하다고 한다. 

청송휴게소가 있는 곳은 주왕산국립공원과 영덕대게와 해돋이로 유명한 강구항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보다 교통량이 많다. 이 휴게소는 상행선과 하행선에 각각 있는데 규모는 작아도 주말과 연휴에는 이용객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휴게소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가림판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한다. 자세히 보니 건물 안에 있어야 할 편의점이 건물 밖에 있고 커피 매장은 문을 닫은 채 자판기로 가로막혀 있다. 도대체 이 휴게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송휴게소에서는 건물 안에 있어야 할 편의점이 건물 밖에서 영업하고 있다. ⓒ K-휴게소

  
2016년 12월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문을 열 때만 해도 청송휴게소에는 푸드코트, 편의점, 간식매장, 크리스피크림 도넛, 달콤커피 등 다양한 매장이 있었다. 개장 직후 많은 관광객이 몰려 주차장이 혼잡하자 한국도로공사는 부랴부랴 12억 원을 들여 주차장 확장까지 하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2020년 한국도로공사는 부실 관리를 이유로 휴게소 운영사(A사)와의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휴게시설 임대입찰 공고를 거쳐 새 운영업체(B사)를 선정한다.
  

도로공사의 청송(상/하)휴게소 임대입찰 공고(2020.11.23.) ⓒ 한국도로공사

 
선정된 B사가 2020년 12월 31일 휴게소 운영을 위해 시설을 인수하려고 하니 휴게소 자산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A사가 아니라 A사와 공급 계약을 맺은 외주업체(C사)가 투자를 대행해 실질적인 운영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휴게시설의 양도 및 재임대를 금지하는 임대계약 제10조를 어긴 것으로 운영계약 해지 사항이며 기존 휴게소 운영사인 A사는 이를 원상복구할 의무가 있었다.  C사는 새 운영업체가 선정되자 휴게소를 점거한 채 투자비 반환을 요구했다.
 

휴게시설 임대계약 제10조. 휴게소는 어떠한 이유로든 영업권을 양도할 수 없다. ⓒ 한국도로공사

 
이해할 수 없는 도로공사의 대응

그런데 정작 알 수 없는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계약에 정한 내용대로 낙찰자 B사는 기존 운영사 A나 도로공사에 해결을 요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B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운영권이 중도해지 된 A사는 C사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도로공사는 오히려 새로 낙찰받은 B사가 나서 해결하라고 종용했다. 인수와 운영이 급한 B사는 휴게소를 점유중인 C사와 협의를 진행했지만 C사가 요구한 금액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협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B사는 C사를 상대로 건물인도 및 불법점유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C사는 실제 투자내역을 증거로 제출해 휴게소 매장에 대한 유치권을 주장했다.
 

원고 패소를 결정한 판결문(2022.8.19.) ⓒ 법원


1년을 거친 재판은 결국 매장 유치권을 주장한 C사의 승리로 끝났다. 재판부는 C사가 제출한 증빙 자료를 인정하면서 휴게소 개장에 필요한 인테리어 투자는 운영사인 A사가 부담해야 하는데도 C사가 대행했으므로 C사의 점유권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사이트를 통해 해당 문서를 조회해 읽어 보았다. 그런데 판결문에 드러난 내용과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그동안 청송휴게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누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고가 되어야 할 도로공사가 원고로

정상적인 낙찰을 통해 휴게소 임대권을 확보한 임차인이 시설물을 인수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시설물의 주인인 임대인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소송은 임차인인 낙찰업체 B사가 도로공사와 이전 휴게소 운영사 A사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C사에 제기했다.

C사는 누구인가? 휴게소 계약구조상 도로공사(갑) - 휴게소(을) - 외주업체(병) 구조의 맨 말단에 있으며 휴게소 투자까지 떠맡아 대신한 약자 중의 약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판결문을 보면 도로공사와 운영사 A사가 원고 보조 참가인으로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피고가 되어야 할 임대인 도로공사가 원고가 된 것이다.
 

청송휴게소 소송의 원고측 명단. 도로공사와 운영사 A사가 보인다. ⓒ 법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도로공사라는 '슈퍼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휴게소 평가와 재계약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도로공사에 대해 소송을 하기 부담스러운 B사가 도로공사가 아닌 같은 피해자인 C사를 향해 소송을 제기한 듯하다. 결국 '을'과 '을'의 분쟁으로 바뀐 소송에서 이 모든 관리 책임을 져야 할 도로공사는 피고소인이 아니라 고소인이 되었다.

계약 위반이 일상화된 휴게소

판결문에 따르면 외주업체 C사는 대략 5억원의 인테리어 투자를 대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청송휴게소를 운영했던 A사는 이 비용처리를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로공사는 어떤 감독을 했을까?


회사 대표가 투자를 결정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사는 모든 매출과 비용을 도로공사에 보고하고 승인 받아야 한다. 일부 휴게소 운영사는 급여와 접대비 내역까지 요구하는 도로공사를 향해 경영 간섭이라며 반발하기도 하지만 도로공사는 투명한 매출 및 손익 관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강제한다. 

청송휴게소 운영사인 A사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면 먼저 도로공사의 승인을 받고 공사 완료 후에는 비용지출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그래야 공사가 행정상으로 완료  되고 투자 내역은 휴게소 평가에서 실적(점수)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공사비 증빙 내역이 없는 공사란 있을 수 없고 시스템 상으로 제3자가 공사비를 대신 납부하거나 재임대할 수도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이루어진 채 3년간 운영되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담배의 경우 휴게소 운영사 A사의 이름이 아닌 C사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명백한 재임대다.

도로공사는 3년 동안 이 사실을 몰랐을까? 매년 30회 이상 점검을 나오는 휴게소에서? 또 휴게소 평가에 제출된 서류들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현재의 휴게소 평가는 신뢰할 수 없고 그동안 평가 결과에 따라 계약 해지된 많은 휴게소 운영사들은 억울할 것이다. 반대로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최종 피해자는 국민과 약자

재판 결과에 대해 원고인 낙찰업체 B사는 항소를 포기한다고 한다. 애초에 소송대상이 잘못되었고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해본들 소용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피고인 C사가 휴게소 A사를 대신해 투자한 금액이 확실한 이상 보상없이 유치권을 포기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청송휴게소 영업 중단을 알리는 기사. 결국 불편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 NSP통신

 
그렇다면 앞으로 청송휴게소는 어떻게 될까? 벌써 2년째 반쪽만 운영중인 상황이 계속되어야만 하나? 이 구간에 하나뿐인 휴게소를 이용해야 하는 지역민과 여행객은 무슨 죄인가? 낙찰업체 B사는 무슨 잘못이 있길래 모든 피해를 감수해야 할까? 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보증금과 임대료를 도로공사에 납부하면서도 정상 영업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적자를 전적으로 감수하는 중이다.
  

임대입찰 공고문의 청송휴게소 인수자산 내역. 도로공사는 인수금액은 임차인 간의 문제일 뿐 한국도로공사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법에도 없는 임대인이 없는 임차인 사이의 임대계약 셈이다. ⓒ 한국도로공사

 
이 모든 과정에서 관리의 책임, 해결의 책임을 지고 있는 도로공사는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청송휴게소 임대입찰 공고문에 자산목록과 금액을 명시하고 낙찰자 B사를 선정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C사가 나타나서 유치권을 행사하며 휴게소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유치권과 관련된 자산의 인계인수는 운영업체 간 일이라 하며 모른 척 한다. 휴게소의 소유자이자 임대 계약의 '갑'이며 휴게소 관리책임자인 한국도로공사가 스스로 '갑'이 아니라며 임차인 간 합의와 계약을 종용하는 것이다. 지적했다시피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모든 휴게소는 도로공사의 승인없이 공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최종 승인권자(책임자)는 도로공사가 된다. 

앞으로 다른 휴게소에서도 투자비 내역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이 저마다 유치권을 행사해 시설을 점유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은 휴게소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 때도 도로공사는 지금처럼 대응할 건가? 청송휴게소의 영업제한 및 유치권 소송에서 도로공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예견되는 휴게소 영업중단 사태를 가늠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한편 도로공사는 ▲ B사가 임대인인 도로공사가 아닌 같은 피해자인 C사에 소송을 하게 된 것이 도로공사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지 ▲ A사가 C사에 재임대한 사실을 도로공사는 3년간 몰랐는지 ▲ B사는 정상적으로 보증금과 임대료를 도로공사에 납부하면서도 정상 영업을 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를 묻는 <오마이뉴스> 질의서에 "상기 사항은 재판 계속중인 사항이라 답변드리기 곤란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사안 해결을 위해 지속적 노력 중"이라고 답변서를 보내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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