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 나무옆의자 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그 장소가 선명히 그려지는 글은 오랜만이었다. 편의점 사장님과 독고의 첫 만남 장소였던 서울역부터 동네 작은 골목에 위치한 ALWAYS 편의점까지. 작가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도 한 번쯤은 가봤을 서울역, 필요한 무언가를 사기 위해 급하게 들렸을 동네 편의점과 같이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써내려 간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 속에서 어딘가 종기처럼 자라나는 아픔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뜨리기보다 묻어두고 살아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라는 말로 본인의 아픔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다. 마음도 몸과 같아서 힘들 때는 잠시 멈추고 쉬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독고가 근무하는 편의점은 그런 현대인들에게 쉼의 공간이다. 혼술하는 가장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그동안 힘들었겠다며 공감해주는 것, 꿈을 잃은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것, 재기가 필요한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 자식에게 품었던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자식의 진심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 

독고라는 캐릭터의 힘은 강하다. 챕터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책이지만 결국 중심에는 항상 독고가 있다. 독고는 노숙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아는 이에게도, 그가 누군지 모르는 이에게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조차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지만 편의점에 찾아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독고라는 캐릭터는 서로 대화와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했으면 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다른 꿍꿍이 없이 나를 위로해주고,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독고 역시 과거의 상처가 있고, 그 기억을 피해 서울역의 노숙자로 기나긴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독고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고통과 두려움에 힘겨워 하지만 이내 진짜 삶을 선택할 때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깨달음이다. 가끔 인연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들어지곤 한다. 평생을 교직에 몸 담다 노후에 오픈한 작은 편의점, 자신의 편의점이 누군가의 생업임을 항상 잊지 않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편의를 배려해주는 염 여사. 사람 귀한 줄 아는 그분과의 만남이라 다행이다. 

누군가의 삶에 좋은 변화를 일으키는 귀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이 작은 편의점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평범하지만 귀한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마음을 적셨다. 때론 장대비처럼 차갑게, 때론 여우비처럼 간질거리게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

김호연 (지은이), 나무옆의자(2021)


태그:#불편한편의점, #김호연, #베스트셀러, #추천도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