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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검찰이 그를 겨냥하는 구도는 윤석열 정권의 태생적 특징을 떠올리게 만든다. 윤 정권이 검찰공화국이라는 점이 이런 수사로 인해 더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잘못한 게 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이 수사가 갖는, 이재명 개인을 뛰어넘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의 검찰 수사는 형식상으로는 이재명 개인을 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야당 대표가 돼 있고 그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이 수사는 그 개인의 유무죄를 떠나 민주당 지도부와의 충돌이라는 이미지를 띠기 쉽다.

검찰이 이 수사를 이끌고 있지만, 검찰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윤핵관과 더불어, 윤석열 정권을 움직이는 검찰 사단이 행정부와 대통령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의 힘은 검찰 요직 곳곳에도 닿고 있다. 정권과 검찰이 이처럼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이 수사는 검찰의 수사이기는 하지만 윤 정권의 수사라는 인상을 풍길 여지도 많다.

그래서 이 수사의 끝이 이재명 처벌로 귀결된다 해도, 윤 정권이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공권력인 검찰이 정권과 하나처럼 비쳐지는 양상은 윤 정권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크게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공권력을 사물처럼 활용한 박정희와 전두환
 
지난 7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법무부는 이날까지 국민에게 검찰총장 제청 대상자로 적합한 인물을 천거 받는다.
 지난 7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법무부는 이날까지 국민에게 검찰총장 제청 대상자로 적합한 인물을 천거 받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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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은 선거관리 사무의 공정성을 침해한 일로 인해 4·19혁명을 자초했다. 검찰사무의 공정성도 선거관리의 공정성만큼이나 긴요하다. 검찰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인상을 조성하지 않는 것도 정권 안보에 중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권과 검찰이 하나처럼 비쳐지기 쉬운 구도 하에서 지금 같은 수사가 진행되는 것은 정권 안보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입법·행정·사법이 1인의 수중에 있었던 왕조시대에도, 군주와 공권력 사이에는 차단벽이 많았다. 군주가 공권력을 임의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작동되도록 고안된 장치들이 많았다.

조선시대 경우에는, 경찰청에 해당하는 포도청과 검찰청 비슷한 사헌부는 물론이고 승정원·형조·의금부·한성부·관찰사·군수·장예원·종부시·비변사 같은 곳에도 수사권을 분산시켰다. 또 군주가 형벌을 선고할 때는 심리와 구형 비슷한 절차가 어전회의에서 선행되도록 했다.

사헌부에는 유림세력과 연계된 성적 우수자들이 다수 배치됐다. 사회 여론을 이끌어가는 유림세력이 조선시대판 검찰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는 군주의 공권력 행사가 유림의 견제를 받도록 만들었다. 이런 장치들은 공권력이 군주의 사물(私物)이 아닌 세상의 공물(公物)이 되도록 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정권 핵심부와 공권력을 가급적 가까이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이치를 무시한 채 집권 초기에 검찰 공권력을 '사물'처럼 활용해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트린 집단이 박정희·전두환 정권이다. 1961년과 1980년에 19년 시차를 두고 등장한 두 정권의 검찰권 행사를 몸소 경험한 인물이 37세의 김대중과 56세의 김대중이었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의 군사정권은 전 정권들인 자유당과 민주당을 처벌하기 위해 혁명재판부와 혁명검찰부를 출범시켰다. 군사정권은 혁재와 혁검으로 약칭되는 두 기관을 군사정권 사령부인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회의)에 예속시켰다.

그해 6월 21일 제정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 제3조 및 제6조는 최고회의 의장이 혁명재판소장과 혁명검찰부장의 임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제13조는 혁재·혁검 운영에 관한 사항을 최고회의가 정하도록 하고, 제14조는 혁재·혁검 해산권을 최고회의에 부여했다. 전 정권 수사를 담당할 혁명검찰부를 최고회의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수중에 넣어준 셈이다.

강제수사의 최종 주체는 검찰이 아니었다

네 번째 총선 도전인 그해 5월 13일의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5월 16일 오후 8시에 국회가 해산되는 비운을 겪은 37세의 김대중은 7월 20일 서울지검에 구속됐다.

<김대중 자서전> 제1권에 따르면 민주당 선전부장을 지낸 그는 혁검 수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정권에 깊이 연루되지 않았기에 혁검 대신 일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강원도 인제에서 선거법을 어기고 호별방문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구속시켰다.

하지만 이 강제수사의 최종 주체는 검찰이 아니었다. 모든 수사기관은 중앙정보부장의 지휘·감독을 받으라는 최고회의 공보실의 발표가 19일 밤에 있었다. 이에 따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사전 승인 하에 이뤄진 최초의 구속이 다음날 이뤄진 김대중 구속이다. 검찰이 중앙정보부장 지휘하에 김대중을 체포했던 것이다. 혁검처럼은 아니지만 일반 검찰도 군사정권에 예속됐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 때도 검찰이 정권에 예속됐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에는 그런 예속이 법제화되고 공식화됐다. 군사정권이 검찰을 지휘하는 이 구도는 정권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렸다. 군인들이 뭐든지 마음대로 한다는 인상을 조장했다. 박 정권은 정국을 장악하고자 그렇게 했지만, 길게 보면 박 정권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싸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1963년 10월 대선 때 반(反)박정희 세력이 윤보선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박정희 46.64% 대 윤보선 45.09%라는 근소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것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4·19 혁명 정신을 훼손하고 검찰권 같은 공권력을 사사로이 활용하는 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슷한 상황은 1980년에 전두환 정권이 재야세력과 야당세력을 사법 처리할 때도 재현됐다. 전두환 정권은 비상계엄 하의 군사재판을 통해 재야의 문익환과 야당의 김대중 등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군 검찰이 동원됐다. 56세가 된 김대중은 군 검찰의 수사를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에 대한 재판은 2심까지는 군사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볼 때도,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한 실질적 주체는 사법부가 아니라 전두환이었다. 군사정권의 간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군사법원과 더불어 군 검찰이 활용됐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처럼 전두환 정권도 검찰 공권력을 '사물'처럼 다뤘고 이는 정권의 공정성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권과 검찰의 정치적 거리두기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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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검찰이 정치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하는가는 정권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이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박 정권이나 전 정권보다 불리하다. 그 이유는 뚜렷하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검찰과 태생이 다른 군부 출신이었다. 그래서 정권과 검찰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이미지는 조성되지 않았다. 정권이 검찰을 시녀처럼 부리며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는 인상은 조성됐어도, 정권과 검찰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느낌은 생기지 않았다.

그에 비해, 윤 정권의 경우에는 정권과 검찰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찰에 있던 윤석열 사단이 행정부와 대통령실뿐 아니라 검찰 요직을 장악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정권이고 어디까지가 검찰인지 불분명할 수도 있다. 정권과 검찰의 이 같은 관계로 인해, 윤 정권 하에서는 검찰이 정권의 시녀인 정도가 아니라 둘이 하나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쉽다.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들 중 정권 출범 뒤 지지를 철회한 이들이 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윤 대통령의 인사 문제다.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윤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검찰공화국 이미지가 이 정도로 확산된 가운데, 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검찰이 그를 겨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수사의 대상이 이재명인지 민주당인지, 수사의 주체가 검찰인지 윤 정권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킬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 수사는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타격을 주는 것 이상으로 윤석열 정권 자신에도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수사가 진행되기에 앞서 윤 정권이 먼저 해놓았어야 할 일들이 있다. 검찰 공권력이 사사로이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조치, 윤 정권과 검찰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조치 등등이다. 그런 전제들이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개되는 검찰의 야당 수사는 정권의 야당 수사로 비쳐지기 쉽다. 이는 윤 정권이 검찰공화국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선거관리 사무의 공정성을 침해했다가 몰락한 이승만 정권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과오를 윤 정권이 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 윤 정권에게 시급히 필요한 일은 검찰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태그:#이재명 수사, #김혜경, #검찰공화국, #윤석열 정권,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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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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