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7 18:33최종 업데이트 22.09.0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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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갑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차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 후 간소화 방안대로 차린 차례상을 지켜보고 있다. 2022.9.5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제공] ⓒ 연합뉴스


[검증대상] "차례상에 전 빠져도 되고, '홍동백서' 등 근거 없다" 성균관 발표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예법을 다룬 문헌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지난 5일 추석 차례상 음식을 9가지로 줄인 표준안을 발표하면서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명절에)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도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차례상 과일도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과 상관 없이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인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의 불화가 초래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라면서 "이번 추석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가정 의례와 관련해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언론 등에서는 그동안 전통 예법을 중시해온 유림에서 뒤늦게 명절 차례상 논란을 풀 해법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실제 전과 같은 기름진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게 예법에 어긋났는지, '홍동백서' 같은 표현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는지 각각 살펴봤다.

[검증내용①] 조선시대 '기름 사용한 음식'은 사치... "공경하지 않는 것"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차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간소화 방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차례상. 2022.9.5 ⓒ 연합뉴스


기름에 지진 전(부침개)이나 기름에 튀긴 유과는 그동안 차례상에 빠지지 않았던 음식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전을 부치는 데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명절 노동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성균관은 5일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했다"고 밝혔다.

실제 조선시대 유학자인 사계 김장생(1548~1631년) 사후인 1687년 간행된 시문집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는 "혹자는 이르기를, '기름으로 볶은 음식물을 쓰는 것도 역시 온당치 않다'고 하는데, 과연 모두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라는 제자 송준길의 질문을 받은 김장생이 "기름으로 볶은 음식물을 쓰지 않는 것은 <의례>에서 나왔네. 지금 세속에서 반드시 밀과(蜜果)와 유병(油餠)을 써서 제사 지내는데, 이것은 고례에는 맞지 않는 듯하네"라고 답하는 대목이 등장한다(참고 자료: 한국고전번역원 정선용 번역 '사계전서').

이에 대해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기름진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게 예법에 맞지 않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면서 "중국 예법도 그렇고 우리나라 종묘제례에도 기름에 지진 음식이 나온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책을 읽을 초롱불에 쓸 기름도 귀한데 음식을 만드는 데 기름을 소비하는 걸 사치스럽게 여겼다"면서 "퇴계 이황 선생이 '내가 죽으면 기름에 튀긴 과자나 음식은 (제사상에) 올리지 말라'고 유언했던 것도 그렇고 사계 선생도 선비의 검약 정신에 입각해서 사양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갑 회장도 이날 <오마이뉴스>에 "옛날에는 일반 가정에서 기름을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어른들이 음식을 만들 때 기름이 튀는 걸 지저분하게 여겨서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라고 예서에도 나와 있다"면서 "차례는 제례보다 간소해서 기름진 음식을 안 올려도 괜찮은데, 그동안 종묘제례와 같은 제사상 차림으로 지켰던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실제 관혼상제 등의 예법을 기록한 유교 경전인 <의례>에는 "전물(奠物)로 쓰는 구(糗; 볶은 쌀)는 모두 기름에 볶지 않는다"면서, "기름으로 볶으면 설만하게(무례하고 단정치 못하다는 뜻 - 기자 주) 되는 바,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사상례의 기)라는 주석을 달았다.

다만 최 회장은 "기름진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게 예법에 어긋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가족의 기호에 따라 전을 만들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하나의 표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증내용②] 조선시대 예서에 '홍동백서' 없어... "근대 이후 민간에서 생성 추정"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어린이들의 문화체험을 위한 차례상이 차려져 있다. 2022.9.5 ⓒ 연합뉴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1920년대 이후 신문 기사를 모아놓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홍동백서'란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1920년 6월 26일 <조선일보> '조선 유림에게 고함(2)'라는 기사에서 "제수의 홍동백서 등이나 주장하야 지례자로 자위하는 보통유자를 다견하얏지만은"이라는 대목에 '홍동백서'란 표현이 등장한다. 적어도 대한제국이나 일제강점기에도 이같은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신문 기사에 '홍동백서' 등장... 1960·1970년대 '대표적 진설법'으로 소개

해방 후인 1961년 2월 16일 <조선일보> '만물상'도 "제상의 진설법은 까다롭고 또 이른바 '가가례'라 집집마다 예법이 다를 수 있지마는 대체로 기본법칙은 홍동백서요 조동율서다"라며 이를 대표적인 진설법(제수 등을 차리는 절차)으로 소개했다.

<동아일보>도 1978년 12월 28일 '새해 차례상 차리기' 제목의 기사에도 "옛 진설법에 의하면 포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는다(좌포우혜), 생선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어동육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동미서두),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놓는다(홍동백서)"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기사에서는 "그러나 이런 격식은 지금으로서 의미도 알 수 없고 형식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면서 "또 마음을 다한 것이 제사의 근본이며 물질로만 차린 것은 제사의 끝이라 한 옛 성현의 뜻에도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는 당시 자문을 맡은 원선희 여성저축생활중앙회장의 견해로 추정되는 대목도 함께 담겼다.

1980년 9월 16일 <경향신문> 기사(정성스럽게 낭비없게... 겨레의 명절 추석맞이 상차리기)에서도 당시 김경진 숙명여대 교수는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에 대해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여 붉은 것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하는 식의 격식이 거론되는데 이는 노론과 소론 등 당파와 가문에 따라 모두 다른데다 가정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당쟁을 끌어들인 때문에 쓸데없이 까다로워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례편람>에 홍동백서 등장? "사실 아냐... 과일 종류도 명시 안 해"
 

<동아일보>는 1985년 2월 18일 ‘되살아난 옛 정취 구정’ 기사에서 “현재 보편화돼 있는 차례와 기제사예법은 조선조 숙종 때 편찬된 ‘사례편람’에 근거한 것이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 등도 여기에 기록돼 있다”고 그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혔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 동아일보

 
1985년 2월 18일 <동아일보>는 '되살아난 옛 정취 구정' 기사에서 "현재 보편화돼 있는 차례와 기제사예법은 조선조 숙종 때 편찬된 '사례편람'에 근거한 것이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 등도 여기에 기록돼 있다"고 그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사례편람>은 조선후기 유학자인 도암 이재(1680~1746년)가 중국 예서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관혼상제' 사례(四禮)에 관해 쓴 책이다.

하지만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명확히 중국 예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조선시대 예서에도 없다"면서 "명확히 어디에서 최초로 나타났는지 100%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근대 이후 민간에서 음양오행과 접목해서 생성되지 않았나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사례편람>에는 "제상의 남쪽 끝에 과일 접시를 진설하고, 그 다음 줄에는 채소와 포와 식혜를 차리고, 북쪽 끝에 잔대와 초접(식초를 담은 접시-기자 주)을 놓되, 잔은 서쪽, 접시는 동쪽이다"라고 돼 있을 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김 위원은 "'사례편람'도 '사계전서'도 중국 '주자가례'를 한국식으로 풀어쓴 책인데 과일 종류나 명칭도 명시돼 있지 않고 그냥 '果(과일 과)'자만 쓰고, 주석에는 제철 과일이면 족하다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조율이시(棗栗梨柹) 또는 조율시이(棗栗柹梨)·좌포우해(左脯右醢)·어동육서(魚東肉西) 등의 진설 방식은 예서에 규정된 바가 없다. (중략) 과실의 경우 '과(果)'라고만 했을 뿐이다. 따라서 진설의 대표적 방식으로 알려져 있는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은 후대에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일생의례사전 '진설(陳設)' 편)
 
김미영 위원은 "제례 음식 자체가 '꼭 올려야 한다'는 건 없다. '주자가례'에도 지역 산물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계절성도 포함돼 있고 시대적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300년 전 조선시대 조상들이 드시던 밥상과 지금 우리가 마주대하는 밥상이 다르기 때문에 제례상도 거기에 입각해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제례 문화도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증결과] "전 안 올려도 되고 '홍동백서' 근거 없다" 성균관 주장은 '사실'

조선시대에는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당시 양반들은 제례 음식에 기름을 사용하는 걸 사치스럽게 여겼고, 당시 예서에도 기름으로 볶은 음식을 제례상에 쓰는 게 공경하는 게 아니라는 대목도 등장한다. 또한 당시 제례상 진설법에 '홍동백서' 같은 표현은 없었고 '조율이시'(대추·밤·배·감) 같이 구체적 과일 이름도 명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차례상에 전 같은 기름진 음식을 안 올려도 되고, '홍동백서' 같은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성균관 주장은 '사실'로 판정한다.

"차례상에 전 빠져도 되고, '홍동백서' 등 근거 없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사실
  • 주장일
    2022.09.05
  • 출처
    추석 차례 간소화 표준안출처링크
  • 근거자료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2.9.6.)자료링크 김장생, '사계전서' 41권 의례문집 제례 편(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선용 역))자료링크 동아일보 1985년 2월 18일 기사, ‘되살아난 옛 정취 구정’(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자료링크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2.9.6)자료링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일생의례사전 ‘진설(陳設)'(국립민속박물관)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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