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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에서 바라본 책빵 고스란히의 모습
▲ 책빵고스란히7 카운터에서 바라본 책빵 고스란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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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삼덕동 신천대로변 '동인삼덕생태문화골목'에 들어서면 책과 비건 빵을 파는 아담한 반지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책빵고스란히'는 이승은·지은 자매가 운영한다. 이름처럼 빵과 책이 함께 있다.

'고스란히'의 사전적 의미는 '건드리지 아니하여 축이 나거나 변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온전한 상태'다. 지구도, 사람도, 뭇 생명들도 온전한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다. 무엇을 판매하는 곳인지 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앞에 '책빵'을 더했다. 언니 승은씨는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맡고 동생 지은씨는 빵을 좋아해서 빵을 굽는다. 지은씨는 이 공간의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책빵고스란히를 찾아갔다. 

비거니즘 실천하면서 삶의 지향과 방식 달라져

대구에서 나고 자란 자매는 창업을 하기 전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승은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지은씨는 작은 기업의 회사원이었다. 승은씨는 먼 훗날 퇴직을 하면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이 조금 빨리 실현된 이유가 궁금했다.
 
책빵고스란히는 이승은(좌), 이지은(우) 자매가 함께 운영한다.
▲ 책빵고스란히3 책빵고스란히는 이승은(좌), 이지은(우) 자매가 함께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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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내부적인 갈등으로 어려움이 찾아온 시기가 있었어요. 천천히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은이 먼저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준비하겠다고 나섰죠. 제가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한번 운영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승은)"

승은씨가 2019년 비거니즘을 실천하면서부터 지은씨가 빵을 만드는 재료와 공정도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빵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저는 육식이 몸과 잘 맞지 않아서 이미 육류 섭취를 잘 안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까 비건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승은)"

"저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지향하며 살고 있어요. 판매하는 빵도 비건 베이커리로 방향을 바꿨죠. 저도 시중에 판매하는 빵을 먹으면 속이 불편할 때가 많았는데요. 속도 편하고 맘도 편한 먹거리를 개발하게 되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지금도 제가 만든 빵 외에는 못 드시겠다고 해요. (지은)"


"지구와 다른 존재에게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자"

책방 고스란히는 2019년 11월 22일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어디에 문을 열 것인지부터 고민이었다.

"오픈하기 전에 추풍령 쪽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뭔가를 얻으려면 김천 시내로 가야 했어요. 굳이 대도시인 대구에서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김천에 자리를 알아보니 거기서는 우리 빵을 아무도 안 사먹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일단 대도시에 자리를 잡아보자 했죠. (승은)"

공간 컨셉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무엇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와 토론이 오갔다.
 
책빵고스란히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 음료를 포장하고 싶으면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야 한다. 만약 텀블러가 없을 경우 매장에서 텀블러를 대여할 수 있다.
▲ 책빵고스란히6 책빵고스란히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 음료를 포장하고 싶으면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야 한다. 만약 텀블러가 없을 경우 매장에서 텀블러를 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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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활동 자체가 다른 존재나 지구에게 어떻게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부담과 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가장 컸어요. 뭘 시도 할 때마다 많이 고민해요. 비건도 해야하고, 제로웨이스트도 해야할 것 같고. 영역이 넓어지니 자꾸 그 생각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도. (승은)"

두 사람은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비건'이라는 큰 컨셉에 좀 더 초점을 맞춰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비닐로 된 포장재, 일회용 컵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음료를 포장하기 위해서는 텀블러를 지참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손님들의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여러 매체와 활동 등으로 공간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텀블러가 없는 손님들에게는 매장에서 대여를 해주기도 한다.
 
책빵고스란히 비건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하지 않는다.
▲ 책빵고스란히5 책빵고스란히 비건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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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소회가 궁금했다.

"손님이 올까? 진짜 오는 건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 문 연 날 손님이 꽤 와주셔서 좋았어요. 아, 이제 시작이구나 했죠."

승은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여전히 두근거리는지 가슴에 두손을 포개고 웃는다.

일주일에 3일만 여는 가게

책빵 고스란히는 일주일에 딱 3일만 문을 연다. 목요일부터 토요일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
 
책빵고스란히 외관
▲ 책빵고스란히8 책빵고스란히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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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주5일 문을 열고 저녁 6시 30분에 영업을 마쳤다. 그런데 퇴근 후 방문하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늘면서 운영시간을 늘리는 것을 고민했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다. 시간을 늘리는 대신 주 4일만 운영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지난 4월 지은 대표가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달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퇴원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빵을 만드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았다. 운영진의 체력과 마음가짐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6월에 다시 문을 열면서부터는 3일만 운영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지은씨가 아프면 승은씨 혼자 책방만 문을 열고, 반대로 승은씨에게 일이 생기면 지은씨 혼자 카페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둘 중 어느 하나가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가곤 했다.

"결국 카페와 서점이 같이 문을 열어야 손님들이 오시는구나 느꼈어요. 두루두루 할 줄 알면 한 명이 없어도 둘 다 해 볼 텐데 그렇지 않으니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안 되는 구조죠. 계속 같이 운영을 해야 해서 3일 운영이 현실적인 것 같아요. (승은)"

비건 언니의 사심을 가득담은 사랑스런 메뉴들

빵을 만드는 지은씨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아침 7시부터 일과가 시작돼요. 11시 반에 문을 여니까 그 전에 빵이 나와야 되거든요. 문을 열면 손님들 맞이하고 다음 날 필요한 재료들의 밑작업을 해요. 8시까지 영업을 하고 뒷정리하고 나면 9시가 넘어요. (지은)"

지은씨는 자신이 개발한 메뉴를 손님들이 맛있다고 말할 때 뿌듯하다고 말한다.
 
"'비건인데 이렇게 맛있어요?'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어요. 비건은 맛이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메뉴 개발할 때 고민을 엄청 많이 하거든요. 맛있다고 하시면 정말 뿌듯해요. (지은)"


그렇다면 지은씨가 가장 자신할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일까?
  
"샌드위치요. 주로 제과류를 판매했는데 샌드위치는 언니가 먹고 싶어 했어요. 분명히 손님들도 좋아할 거니 만들어보라고 부추겼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샌드위치 종류를 늘려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지금은 두 종류거든요. (지은)"

승은씨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메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가 채식을 하기 전에 스콘을 정말 많이 먹었어요. 스콘과 홍차를 같이 먹을 때의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동생에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꼬신거죠. 그렇게 스콘을 만들어내고, 비건 밀크티도 만들었어요. (승은)"
 
책빵 고스란히에서 판매하는 비건메뉴
▲ 책빵 고스란히 메뉴 책빵 고스란히에서 판매하는 비건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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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단골이 많아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3일 내내 보는 분들도 있어요. 대부분의 손님을 한주의 한 번씩은 꼭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사해요. (지은)"

지구에 더 좋은 방식의 삶 고민하는 책방

책방을 둘러보니 노동, 생태, 환경, 비건,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승은 씨는 생태 서점을 운영한다. 비건, 기후위기, 젠더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 책빵고스란히4 이승은 씨는 생태 서점을 운영한다. 비건, 기후위기, 젠더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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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저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는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비건을 하면서부터 관련된 책이나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파헤치듯이 봤어요.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관심이 넓어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비건도 소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잖아요. 책을 들일 때 그런 저의 관심사와 지향을 반영했어요."

공존을 꿈꾸는 독서

책빵고스란히에는 공간의 성격처럼 생태와 환경을 우선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책방에서는 공존을 위한 독서모임도 운영한다.
  
책빵고스란히를 운영하는 이지은(좌), 이승은(우) 자매의 뒷모습
▲ 책빵고스란히2 책빵고스란히를 운영하는 이지은(좌), 이승은(우) 자매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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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기후위기, 비건, 생태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시작하게 된 모임이 '공존을 꿈꾸는 독서'예요. 아무도 신청 안 하면 우리끼리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요. 다행히 함께 읽는 분들이 생겨나서 지금은 고스란히의 대표 모임으로 자리잡았어요. 환경, 기후위기, 동물권 등 주제에 따라 책을 읽어요. 처음에는 열의가 넘쳐서 한 달에 2권 읽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한 권 읽어요. 매 월마다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어요. (승은)"

이 곳의 북큐레이션을 보다보면 최신 북 트렌드를 잘 읽어내는 책방지기의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소설 신간도 제법 많다. 책방지기로서 꼭 추천하는 책이 있는지 물었다.

"비건에 대해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추천드려요. 저는 여전히 <아무튼, 비건>이 좋고,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 많이 추천드리고요. 모임에서 같이 읽었던 책 중 <절멸>이 있어요. 여러 작가님들이 비인간동물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하는 책이거든요. 그리고 심화 단계의 책을 원하신다면 <짐을 끄는 짐승들>을 추천합니다."

3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니
 
책빵고스란히 비건상회에서는 다양한 비건 식료품을 판매한다.
▲ 책빵고스란히9 책빵고스란히 비건상회에서는 다양한 비건 식료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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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문을 연지 햇수로 3년이다. 승은씨는 요즘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는 누군가 와서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면 그냥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말한다며 웃는다.

"회사 생활보다 자율성이 많아요. 그 자율성이 때로는 굉장히 큰 압박과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죠. 창업하면 보통 3년 차 때 판가름이 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는 그 3년을 버텼잖아요. 뿌리는 단단히 내렸으니 조금 더 가보자 이런 마음이에요. 지금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좋겠어요.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하고,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수입이 뒷받침되면 지금처럼 계속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책빵고스란히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기 의자였다. 다른 이들은 쉽게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육아인인 내게는 어딘가를 방문할 때 꼭 체크하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 고객층은 아니겠지만 아이와 양육자를 생각한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아기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 책빵고스란히10 아기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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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위한 책도 판매한다.
▲ 책방고스란히12 어린이들을 위한 책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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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반지하 공간이어서 사실 유모차와 휠체어가 들어오기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진입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경사로를 둘러싸는 방법은 공간의 1/3을 차지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포기해야 했어요. 다음 번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경사로를 만들자고 늘 생각해요."
 

이미 도래한 기후위기, 완벽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함께해야
 
책빵고스란히에 비치된 CC. 기후변화세터에서 발행한다.
▲ 탄소발자국제로 책빵고스란히에 비치된 CC. 기후변화세터에서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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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중부 지방 일대 기록적 폭우는 곳곳에 침수 피해와 인명 피해를 남겼다. 기후 전문가들은 기후재난이 앞으로 더 거세지고 더욱 잦아질 것이며, 특히 재난에 취약한 계층에게는 더욱 심각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성장 계획을 멈추고, 생명을 살리는 성장으로 방향키를 돌리자고,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하며 또 연대해 나가자고 촉구한다.

승은씨는 샴푸바와 린스바를 사용하는 것부터 천천히 기후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 작은 시작이지만 행동으로 나설 것을 강조한다.
 
"많은 분들이 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으실 거예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한다고 변화가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저는 완벽하게 다짐하고 실천하면 시작이 어렵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시라고 말씀드려요. 하나씩 실천하다보면 내가 특히 잘 할 수 있는 것이 눈에 보이거든요. 그 행동을 더 확장시키는 거죠.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목표를 정하거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쓰는 것 혹은 대나무 칫솔을 써본다든지. 누군가는 하찮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시작이 되거든요. 완벽한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직접 행동하는 게 중요해요."

 
책빵 고스란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간이다.
▲ 책빵고스란히1 책빵 고스란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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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책빵고스란히, #동물권, #기후위기, #비건카페, #생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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