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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명과 도시, 사회와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선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외지에서 손님이 와서는 "네가 사는 도시를 보여줘"하고 물어올 때 느껴지는 막막함을 매일 고민하는 이들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텐데요. 한 번쯤 그들의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는 날이 있습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평생을 살아온 도시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게는 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신입생 무렵이 그랬지요. 늘 같은 학교, 같은 반, 같은 아이들과 익숙한 동네를 뛰어놀다 대학교에 들어갔을 땐 완전히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같은 서울인데도 잘 알지 못하는 동네에서 낯선 식당과 카페에 들르고 이따금 놀러가는 곳들도 전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입학 후 몇 달이 지나자 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서울이란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타지에서 서울로 전입해온 친구들이란 것이었죠.

서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제게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저 하나 서울로 올라와 자취며 하숙을 하게 된 이들에겐 이 도시가 온통 낯선 곳이었죠. 그들은 저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곳과 싫어하는 곳을 나누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낯선 도시를 알아갔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과 대화하며 제가 그들보다 서울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신기한 일 아닌가요,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론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게요.
 
전시물
▲ 호찌민 시립 박물관 전시물
ⓒ 김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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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이해하는 첫걸음

한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관심과 낯설게 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저 살아가는 이의 생활권역을 넘어 도시의 생산과 소비, 현재와 과거, 그로부터 내다보는 미래, 또 문화와 계층에 이르기까지를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으니까요.

박물관은 한 도시며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하는 창구입니다. 도시의 과거 가운데 의미 있는 것들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그들의 오늘과 내일을 알게 합니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하죠.

남부 베트남의 대표도시인 호찌민시티의 '호찌민 시립 박물관'도 그런 장소입니다. 건물은 외관부터 화려합니다. 프랑스 식민시기 총독부 건물로, 베트남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응오딘지엠이 2차 인도 차이나전쟁 당시 지하벙커에서 자주 은신하기도 해 더욱 유명합니다.

베트남의 다른 박물관이며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미국과 벌인 2차 인도차이나 전쟁 관련 유물이 여럿 진열돼 있습니다. 인근에 전쟁박물관이 있다지만 이곳에도 전쟁 당시 쓰인 무기며 수통 등의 물건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마도 전 국토, 모든 시민들이 전쟁에 휩쓸렸던 과거를 빼놓고는 사이공의 오늘을 보여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겠죠.
 
전시물
▲ 호찌민 시립 박물관 전시물
ⓒ 김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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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한 남베트남과 만나다

전쟁 외에도 진열된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릇이며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 베틀을 돌리고 바느질하는 여성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얼마 다르지 않습니다. 베트남 전통 혼례복을 입은 부부의 모습을 인형으로 제작해놓았고, 여러 전통복식을 진열해 놓은 곳도 흥미롭습니다. 요즘 베트남 거리에선 아오자이를 입은 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전통복장만큼은 이 나라의 특색을 잘 보여주니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전시실 1층 방 하나를 채우고 있던 항해물품이었습니다. 따지자면 이것이 베트남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일신라 청해진과 고려의 벽란도와 같이 해상무역이 강성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반도는 조선시대 내내 바닷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로 인해 국제정세에 어둡고 세계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지요. 우리 스스로 그를 부끄럽게 여겨서인지 해운은 역사책에서나 박물관에서나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부 전시물
▲ 호찌민 시립 박물관 내부 전시물
ⓒ 김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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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역사를 자랑하는 베트남 박물관

베트남은 다릅니다. 일찍이 바닷길을 통해 중국은 물론 서양 여러 나라며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들과 자유롭게 교류했습니다. 호찌민시티는 동나이강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활발히 교역해 큰 부를 쌓기도 했습니다. 대남국에 이어 프랑스가 이 도시를 중심지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요.

호찌민 시립 박물관은 도시를 설명하며 해운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나침반과 텔레그래프, 조타기 같은 선박운항장비부터 화물의 수와 성질 따위를 표기하는 목재 비표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해운을 알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반도국인데다 분단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이 여전히 해운의 가치며 역사를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 모습에 비추면 상당히 이색적인 전시입니다.

호찌민 시립 박물관은 인근의 전쟁박물관이나 호찌민 시 미술관에 비하면 볼 만한 것이 크게 많거나 다양하진 않은 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진열된 물건의 수가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물건으로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는 운영자들의 의도만큼은 분명히 잡힙니다. 이것이 호찌민시티 여행에서 이 박물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겠지요.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호찌민 시립 박물관, #베트남, #호찌민시티, #박물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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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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