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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오후 1시 39분(현지시각 오전 7시 39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있는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 활동가가 긴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수십 대의 이스라엘 군용차와 군인들이 (나블루스)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와서 건물을 봉쇄하고 폭탄을 발사했다. 건물에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은 총으로 위협하며 발사했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사진이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다급한 목소리에서 현지의 심각성이 그대로 전달됐다.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동안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했다. 2021년 5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가자지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인 이번 공습으로 49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고 이 중 17명은 4세부터 18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이라고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발표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9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나블루스를 공격하여 1명이 사망하고 32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했으며(현지 활동가는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8월 2일 서안지구 북부도시 제닌에서도 이스라엘군인의 발포로 17세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사망했다고 지역 언론은 전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공격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이스라엘 테러를 모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이슬라믹 지하드(Islamic Jihad) 그룹의 수뇌부들을 무력화하기 위함이고 이슬라믹 지하드 그룹의 구체적인 테러행위에 대한 응징이 아닌 '테러행위에 대한 선제조치(Pre-emptive)'라고 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사망한 이번 공격은 명백하게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양측(?)'간의 무력사용 자제를 촉구하거나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다. 언론 역시 이스라엘의 공습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사실을 전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보복 미사일 공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며 이번 공격을 '양측(?)간의 무력분쟁'으로 설명했다.

현지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의 실제 현실과 언론 보도가 만들어내는 팔레스타인 현실 사이의 가장 큰 괴리는 어떤 언론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하의 식민지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서구 외신의 기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OPT(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즉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들'이라고 한다. 현실 속 서안지구는 이스라엘 국방부가 관할하는 지역이고 동예루살렘은 아예 이스라엘 땅이라고 법제화하였으며 특히 가자지구는 모든 육로가 한국의 휴전선보다 더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혀있고, 바닷길과 하늘길도 막혀있는 감옥 상태의 지역이다.

이러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바탕으로 한 점령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든 필요할 때 점령지를 공격한다.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 패턴도 반복된다. 먼저 이스라엘이 테러와 안보를 빌미로 가자지구를 공격하면 가자지구 무장세력(하마스)은 보복 로켓 공격을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공격을 확대하며 전투기와 최신식 전차와 군사 장비를 동원하여 가자지구를 폭격한다. 동시에 서안지구의 각 도시들도 공격받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시위를 하고 체포된다.

무수한 희생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질 때 이집트가 중재자로 나서며 '양측(?)은 휴전을 선포하고 결국 이스라엘의 공격은 잠시 중단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군사점령은 계속됨)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와 언론은 죄 없는 민간인의 희생을 내세우며 '양측'간의 무력충돌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다시 8월 9일 오후 5시(현지시각 오전 11시) 아침의 공격으로 당일 예정된 아디와의 온라인 회의가 연기될 거라 예상했지만 현지 활동가들은 회의를 개최했다. 놀란 마음에 센터 활동가들의 안부를 묻자 "우린 괜찮아. (그리고) 놀라지 않았어. 이런 거 일상이야"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또 현지의 피해 상황을 물으며 "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공격하는 거야?"라고 묻자 센터 활동가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할까? 우리는 점령되었고 설령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유를 들어본 적 없어. 우리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 외엔"이라고 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제야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군사점령 하에 지내고 있고 가끔 내가 기억 못 하고 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동화님은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군사점령, #식민지,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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