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풀타임> 스틸컷

영화 <풀타임>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 스릴러 영화가 탄생했다. 생계를 상대로 싸우는 노동자를 위로한다. 출퇴근, 육아, 이직, 업무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내용과 위로가 가득하다. 24시간은 그저 물리적 시간일 뿐이다. 그중에서 여성이자, 워킹맘, 싱글맘인 주인공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삶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극한 직업, 일하는 싱글맘
 
아직 캄캄한 어둠이 집어삼키고 있는 꼭두새벽, 쌔근쌔근 곤히 잠든 숨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날카로운 알람 소리로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파리 외곽에 살며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쥘리(로르 칼라미)는 파리의 5성급 호텔 룸메이드로 일한다. 전국적인 파업이 며칠째 계속되면서 출퇴근은 지옥이 되고 있다. 좋아질 기미는 없고 날마다 더 나빠지기만 한다.
 
하지만 파리 중심부에 있는 호텔은 이 여파와 무관하다.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직장을 퇴근해도 육아로 출근하는 루틴이 반복하고 있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아이들을 깨워 등교 준비 후 동네 어르신 집에 맡긴다. 이마저도 빠듯하다. 아이들의 자아가 생겨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부쩍 어르신이 애들 돌봄을 버거워 하신다.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그 시간마저 사치다. 양육비도 며칠째 입금되지 않아 생활비도 쪼들린다. 사야 할 것들은 많고 은행 독촉 전화도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온다. 이판사판으로 전남편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쥘리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영화 <풀타임> 스틸컷

영화 <풀타임>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파업이 길어지자 장거리 출퇴근은 교통대란의 꽃이 된다. 안 좋을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다. 기차는 연착되고 버스는 몇 대 다니지도 않는다.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뚜벅이는 고달픈 나날들이다. 전국의 교통 시스템이 며칠 만에 무너지자 도미노처럼 쥘리의 삶도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문제가 결코 별개가 아닌,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쥘리는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몇 년째 신뢰를 얻고 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워라벨은 고사하고 원하는 일이라도 하면서 경력을 쌓고 싶었다. 워킹맘이라고 개인의 성취까지 포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경력단절이 있지만 이직에 성공해 인정받고 싶다.
 
어느 쪽 하나 순탄치 않다. 상사는 잦은 지각으로 근무태만을 운운하고, 제시간에 면접장에 도착하기 위해 호텔의 손님용 택시를 타기도 했다. 시간과 돈, 육체, 하물며 영혼까지 끌어모아 쥐어짜고 있는 최대치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 나는 엄마이자 가장이니까.
 
출퇴근, 육아, 삶의 전쟁
  
 영화 <풀타임> 스틸컷

영화 <풀타임>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풀타임>은 지어낸 이야기지만 얼마 전 폭우로 아수라가 되었던 대한민국 모습과 교차된다. 갑작스러운 비가 계속되자 도로가 물에 잠기고, 대중교통마저도 멈춰 오도 가도 못했던 때 말이다. 귀가 미션, 출근 전쟁이라는 난제에 놓인 시민들의 불편함은 말도 못 했었다.
 
통근 열차가 오지 않자 버스, 택시, 렌탈, 카풀, 히치하이킹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슬아슬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간곡한 삶.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러닝타임 동안 숨 가쁘게 돌아간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압박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영화는 다르덴 형제와 켄 로치 감독처럼 사회적 문제를 다룬 명작과 비슷한 결을 취한다. 삶을 살아가는 치열한 모습이 모든 것을 불태울 만큼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녀가 눈물을 머금고 화장을 고치는 서글픈 모습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쥘리의 일상은 파업으로 서서히 붕괴되어 버린다.
 
속도감, 몰입감, 공감력이 큰 영화다. 과거 파리의 노란 조끼 시위와 오버랩된다. "나 하나쯤이야",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실감했다. 나와 우리, 세상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어도 어쩌면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장 같았다. 쥘리의 마지막 미소에서 차오르는 벅찬 감정은 비단 안도감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만든 일상 공포가 아찔하게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 게재 됩니다.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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