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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쳐도 화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전자피아노
▲ 5만 원 전자 피아노 안 쳐도 화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전자피아노
ⓒ 장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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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였습니다. 방에서 치기 싫은 피아노를 억지로 치다가 부모님이 차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하나 문틈으로 살폈습니다. 

"쟤 피아노 가르친 게 제일 돈 아까운 거 같아."

그 말이 어린 저에게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하나 배웠는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박치였던 저는 피아노를 선생님이 치라는 대로 치지 않고 내 마음 내키는대로 쳤지요. 

크고 나서 보니 박자와 음정을 이해 못 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왜 가르치는대로 하지 않냐고 나무라는 것에 치기 어린 반항을 했습니다. 기어코 내 마음대로 쳤습니다. 선생님은 어린 저의 치기를 받아들이지 못해 부모님께 제 행동을 말씀 드렸습니다.

결국 저는 개인 교습으로 갈아 탔고 피아노를 샀으며 총 3년을 배웠고 체르니 30번까지 마치고 피아노를 끝냈습니다. 그렇게 외벌이 박봉에 부모님은 큰 맘먹고 피아노를 사주고 긴 시간 사교육을 시켜주었지만 저는 여전히 음치, 박치에 악보도 제대로 못보는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정말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운 결과였습니다.

어렸을 때, 사교육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한 것은 피아노 하나였습니다. 욕심을 부렸고 부모님을 졸라 길게 했었던 피아노 교습에서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던 것이지요. 제가 사교육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제가 경험한 사교육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치로 인해 저는 대부분을 '엄마표'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기르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왜 예체능 학원을 그렇게 보내는지 고학년이 되보니 알겠어. 영어, 수학학원 다니다보면 예체능은 엄두도 못내. 지금 시켜!"라는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3학년 되기 전에 음악학원은 꼭 보내라는 당부와 함께 전화를 끊었지요. 

대신 전자피아노를 샀습니다 

애증의 음악입니다. 3학년이면 음악 수업이 시작되는데 음계를 다 볼 줄 안다는 전제 하에 수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아예 안 가르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다수 아이들이 알아 오니 음계를 이해시키는데 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인 듯 했습니다.

아직 저는 아이가 3학년이 안 되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요. 마치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다 떼고 들어가야 적응에 수월하다는 이야기와 맞닿는 이야기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실 이번 여름방학 시작 전에 아이를 방학 특강이라도 음악학원을 보낼 지 고민이었습니다. 아이는 나를 닮아 음치, 박치였고 음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지만 혹시나 교실에서 혼자 제대로 못해 곤란한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또한 인생을 풍부하게 하려면 음악을 즐기고 아이가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참이라 고민을 했습니다. 최종 결정자는 아이이기에 '음악학원'을 방학 때 다녀볼 것인지 물었습니다. 역시나 거절 당했습니다. 

결국 저는 작은 전자피아노를 사주었습니다. 5만 원쯤 주고 산 전자피아노는 피아노라기보다 멜로디언에 부는 부분만 빠진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저 뚱땅거려 보라는 엄마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혹시나 비싼 걸 사주고 나면 왜 안 하냐며 아까워할까봐서 안 쳐도 타격없는 가격대로 고르다보니 정말 멜로디언 같은 전자피아노가 집으로 배달왔습니다.

처음에는 제법 치더니 이제는 그냥 그런 장난감 취급을 받습니다. 아이가 아침 먹을 때 종종 제가 인터넷으로 악보를 찾아 쳐주곤 합니다. 그럼 아이도 흥미가 생겨 따라 와서 쳐보곤 합니다. 일단 흥미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돈값을 한 전자피아노를 바라보며 2학년 2학기 겨울방학을 기다립니다.

태그:#피아노, #음악학원, #전자피아노,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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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맞벌이, 지금은 전업주부 하지만 고군분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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