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선수 못지않은 '열혈남아' 감독들의 승부욕이 그라운드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8월 15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첼시와 토트넘의 2022~202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경기에서 양팀의 사령탑인 토마스 투헬과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화끈하게 충돌했다.
 
양팀은 나란히 3-4-2-1 전형을 들고나왔다. 토트넘은 해리 케인, 손흥민, 데얀 클루셉스키가 전방에, 라이언 세세뇽, 피에르 에밀 호이비에르, 로드리고 벤탄쿠르, 에메르송이 중원을 구성했고, 스리백은 벤 데이비스, 에릭 다이어,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맡았으며, 골키퍼 장갑은 위고 요리스가 꼈다.

첼시는 라힘 스털링, 메이슨 마운트, 카이 하베르츠가 전방, 루벤 로프터스 치크, 은골로 캉테, 조르지뉴, 마크 쿠쿠렐라가 중원, 수비진은 리스 제임스, 티아구 실바, 칼리두 쿨리발리, 수문장으로는 에두아르 멘디 골키퍼가 출격했다.
 
첼시는 전반 19분 만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쿠쿠렐라가 올려운 코너킥을 쿨리발리가 발리슈팅으로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끌려가던 토트넘은 후반 23분 호이베르의 중거리 땅볼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콘테 감독은 동점골이 터지자마자 특유의 포효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출했다. 원래 경기중 감정표현과 제스처가 활발한 스타일이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친정팀 첼시에게 유난히 약했던 모습을 보이다 어렵게 터진 동점골이었기에 기쁨이 더 클만도 했다. 하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굳이 상대 벤치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세리머니를 이어간 게 화근이었다. 첼시 벤치 쪽에서는 충분히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투헬 감독은 발끈했고 바로 다가와서 콘테 감독에게 소리를 지르며 격하게 항의했다. 두 감독은 몸을 맞부딪치며 거센 언쟁을 벌였다. 곧바로 심판과 양팀 관계자들이 몰려와 두 감독을 떼어 놓았다. 두 감독의 1차 충돌이었다.
 
동시에 그라운드에서도 동점골이 터지기 직전 첼시 하베르츠가 토트넘 벤탄쿠르의 거친 태클에 넘어졌음에도 주심이 파울로 인정하지 않았고, 첼시 선수들이 몰려가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벤치와 그라운드 양쪽에서 모두 소란이 일어나는 진풍경이 연출된 끝에, 심판은 토트넘의 골을 인정하고 양측 코칭스태프에 모두 경고를 주면서 상황을 마무리했다.
 
불과 9분뒤에는 투헬이 복수에 나섰다. 첼시가 후반 32분 제임스의 골로 다시 2-1로 리드를 잡자 투헬은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며 토트넘 벤치 구역을 통과하여 관중석 앞까지 폭풍 질주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누가봐도 콘테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콘테는 실점과 동시에 얼굴을 떨궜다.
 
하지만 토트넘은 끝까지 호락호락 첼시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첼시의 승리 분위기가 굳어가건 후반 추가시간 5분, 토트넘의 마지막 코너킥 상황에서 케인이 천금같은 헤딩 극장골을 터뜨리며 다시 한번 동점을 만들어냈다.

코너킥을 앞두고 양팀 선수들이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토트넘 로메로가 첼시 쿠쿠렐라의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심판은 이를 놓쳤다. 치열했던 경기는 그렇게 2-2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는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종료됐지만 양팀 감독들의 신경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통 경기를 마친 후 가벼운 악수를 나누는 것은 감독들 간의 관례다. 콘테와 투헬도 종료휘슬이 울리자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악수를 하고 지나치려던 콘테의 손을 돌연 투헬이 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자신을 향하여 돌려세웠다. 양팀 감독의 2차 충돌이었다. 콘테와 투헬은 또다시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였고 양팀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주심은 콘테와 투헬을 동반 퇴장시켰다. 분을 이기지 못한 콘테는 피치를 빠져나가면서 자신의 옛 제자인 첼시 선수들과도 언쟁을 벌였다.
 
두 감독은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이후 공식 인터뷰를 통하여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콘테는 투헬과의 충돌에 대하여 "그 일은 중요한 게 아니다. 축구가 중요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와 투헬의 문제일뿐이다"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면 나도 공격적으로 답한다"라며 우회적으로 투헬에게 책임을 돌렸다.
 
주심의 퇴장 판정에 대해서는 "심판이 다이나믹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판정을 받아들인다"라고 밝혔다. 토트넘의 득점 상황에 앞서 모두 먼저 파울이 있었다는 투헬의 주장에 대하여 콘테는 "주심의 판정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감독들이 판정에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라고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다.
 
투헬은 한층 차분해져서 가벼운 미소까지 띄면서 질문에 답했다. 투헬은 "악수를 할 때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콘테의 생각은 달랐단 것 같다"라며 콘테의 손을 놓지 않고 잡아 끈 이유를 고백했다.

그럼에도 투헬은 "축구 경기의 일부였다. 우리 모두 팀을 위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과열되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콘테에게 나쁜 감정이 없고, 콘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쿨한 반응을 보였다.
 
투헬은 오히려 주심에 대한 불만이 더 컸다. "토트넘의 첫 골이 어떻게 오프사이드가 아닌지, 두 번째 골에서 어떻게 선수의 머리를 잡아채고도 파울이 아닌지 납득할수 없다. 이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양팀 모두 아쉬움이 남을만한 결과였다. 첼시는 그간 지역 라이벌인 토트넘에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포체티노-무리뉴- 누누 산투 전 감독 모두 첼시에 고전했고, 특히 지난 시즌에는 리그와 컵대회(리그컵 준결승)를 포함하여 첼시가 4전 전승에 8득점 무실점으로 토트넘을 압도하며 사실상 '천적'의 이미지를 굳혔다. 지난해 11월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은 콘테 감독은 심지어 친정팀 첼시를 상대로 아직 승리가 없다.
 
이날 승부 역시 사실 내용면에서는 첼시가 토트넘을 압도한 분위기였다. 점유율과 슈팅 숫자 등에서 모두 첼시가 크게 앞섰다. 투헬 감독이 판정문제를 지적한대로 토트넘이 그나마 기록한 2골도 모두 정당성 여부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득점이었다.
 
'한국축구의 자존심' 손흥민 역시 첼시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를 포함하여 첼시전에서 통산 16경기에 나섰으나 단 2골에 그치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에서도 80분을 소화했으나 공격포인트를 따내는 데 실패했다. 찬스메이킹에서도 후반 호이비에르의 동점골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존재감이 미약했고 전반 선제골 상황에서는 마크맨을 놓치며 실점의 빌미를 허용하는 등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그나마 토트넘은 손흥민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까다로운 첼시 원정에서 오랜만에 득점포와 승점 1점을 따내며 지고있던 경기를 극적으로 만회한 것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콘테와 투헬은 현재 축구계를 대표하는 명장이자 한 성격하는 다혈질 감독들로도 유명하다. 특히 콘테는 바로 첼시의 전임 감독이었고, 첼시 사령탑 시절에는 또다른 전임감독인 무리뉴와도 경기장 안팎에서 앙숙이 되어 여러번 으르렁거린 전력도 있다.
 
투헬은 첼시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EPL에 복귀한 콘테와의 상대 전적에서 3승 1무의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데 이어 이제는 신경전과 기싸움에서도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알렉슨 퍼거슨 vs 아르센 벵거, 벵거 vs 무리뉴, 무리뉴 vs 콘테 등을 잇는 EPL의 새로운 '감독 라이벌리'의 가능성을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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