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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휠링캠핑장 앞 계곡.
 달궁휠링캠핑장 앞 계곡.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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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건장마로 몇 차례 이슬비만 흩뿌리더니 지리산 캠핑을 앞둔 이틀 전부터 거센 국지성 소나기가 내렸다. 그동안 건장마로 타들어 가던 식물들은 그 비 머금어 생생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여행을 앞둔 입장에선 내심 계속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남편은 이 비로 지리산 계곡물이 불어 더 좋을 거라며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드디어 2박 3일 여정으로 캠핑을 떠나는 8월 2일 아침! 저녁 내내 땅을 후비던 소나기 잠잠해지더니 10시 무렵부터 잿빛 구름이 옅어지더니 햇살까지 얼굴을 내밀었다. 30도를 웃도는 열기에 습도까지 더해서일까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무더웠다. 간단하게 누룽지로 아점을 먹고 12시 30분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땅끝 해남에서 출발, 보성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발효커피를 마시고 다시 지리산으로 향했다. 4시 40분이 되어서야 지리산 입구인 인월동에 도착했고 농협 마트에 들렸다. 지리산 피서객들이 가는 길에 물건을 사는 이곳은 도심가 유명 마트처럼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늘 붐비는 곳인데 하절 성수기라 그런지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여행은 먹는 즐거움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법이라 그런지 봉지마다 한 가득이다. 우린 몇 달 전 방송 출연으로 받은 한돈 삼겹살이 있어 라면 외 대하, 미더덕, 참외, 햇반 등 간단하게 장을 봐 달궁휠링캠핑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려는지 먹구름 걷힌 하늘엔 몽실한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있고 빗물 머금은 숲들은 짙은 초록 이파리를 일렁이며 반겼다. 국지성 소나기가 지나간 계곡은 산으로 오르는 차와 달리 흰거품을 물고 세차게 흘러내렸다. 뱀사골 부근 펜션은 물론이고 가을에 단풍이 좋아 자주 찾는달궁 자동차 야영장과 캠핑카 야영장인 학천 야영장 등 계곡 옆 야영장엔 여름휴가를 맞아 피서를 온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달궁휠링캠핑장도 역시 몇 군데만 빼고 텐트가 즐비하게 쳐져 마치 산골 마을이 조성된 듯 제각각의 텐트가 조화로웠다.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여름 시작 전에 추첨 예약을 해서 당첨이 될 정도로 입소문이 난 장소다. 하루 종일 나무 그늘이 좋을뿐더러 계곡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론 더할 나위 없이 좋아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달궁휠링캠핑장.
 달궁휠링캠핑장.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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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싱글벙글 쇼에서 보내온 허브 한돈으로 김치와 밥까지 볶아먹은 뒤 참외를 먹고 있는데 계곡을 다녀온 남자 두 분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 묻는다. 해남에서 왔다 하니 진도에서 왔다며 하얗게 센 머리로 다정하게 여행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하셨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사람으로 여러 가족 모임으로 오신 듯하였다. 저녁을 먹고 캠핑카에서 자기로 한 계획을 접고 텐트에서 잤다.

호탕하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찾을 때마다 품어 안던 어머니 같은 지리산이라기보다 아버지의 듬직함까지 배어 그동안 힘겨웠던 심신을 싹 씻어주었다.

여전히 물소리, 매미 소리, 까마귀 소리, 두런거리는 사람 소리가 반기는 첫날 아침.
해먹에 누워 그늘 내린 나무를 우러른다. 마치 쾌적 온도 에어컨 가동처럼 선선한 바람이 스치고 깊은 찌든 때까지 씻어내는 물소리에 심신을 맡긴다. 초록 그물망처럼 나뭇잎들 새로 은빛 햇살이 내려 따사롭고 초록이 눈을 명쾌하게 하는 아침이다.

새우, 미더덕을 넣은 너구리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해물을 넣어서인지 국물이 시원함은 물론 굵직한 새우살의 쫄깃함과 미더덕의 바다향이 일품이다.

오후 3시 무렵부터 햇살이 쨍쨍 나 숲 그늘이 내린 곳은 서늘했지만 그늘지지 않는 곳은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뜨거워 계곡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물줄기 흐름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소리로 염천 더위 식히라며 주름결 가득한 계곡물로 이끌었다.

뜨거운 햇살과 다른 차디찬 계곡물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발만 담그다 서서히 일렁이는 물줄기에 손이 가 머리만 빼고 가슴 부분까지 풍덩 몸을 담갔다. "으..." 절로 몸이 움츠러질 정도로 차가운 물에 한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고 냉기가 퍼지는 카타르시스에 머문다

최근 계곡 쪽 화장실과 코인 샤워실까지 생겨 성수기 땐 인터넷 접수로만 예약이 될 정도로 유명해진 곳, 온수까지 나와 코인샤워장에서 계곡 냉기까지 씻어내니 개운했다.

저녁은 가까이 있는 덕동식당에서 송어회를 떠와 먹었다. 맛도 좋았지만 가져간 묵은김치와 싸서 먹으니 의외로 맛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레토르트 전복죽도 깊은 맛이 났다.

저녁을 먹고 지난 밤 계곡 물소리에 잠을 잘못 자 캠핑카에서 자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해 그냥 텐트에서 자기로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계곡 물소리 따라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 날 아침, 밤새 흩뿌린 국지성 소나기에 12시에 철수하려던 계획과 달리 일찍 텐트를 접고 달달궁카페의 달궁라테를 마신 후 집으로 향했다. 휘어 돌고 휘돌며 내려오는 계곡 물줄기도 떠나는 우릴 배웅하듯 함께 흘러내리고 그늘 내리는 나뭇잎들도 잘 가라 손 흔들어 전송하는 지리산 길을 벗어나는 길. 아쉬움으로 고개 돌려 냉기 품은 지리산 자락을 내내 응시한다.

태그:#지리산 달궁휠링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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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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