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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 장갑, 집게, 텀블러(마실 물은 꼭 텀블러에 담아와 주세요)

해안가를 청소하는 환경단체에서 봉사활동 갈 때의 준비물이었다. 일상에서 많은 경우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 시민대학에서 업사이클 강의할 때에도 정수기의 일회용 종이컵에 손이 더 많이 갔다. 가끔 텀블러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볍고 깔끔하게` 사용하는 테이크 아웃 컵이 더 손에 익었다.

하지만 제주도 해안가 청소를 하는데 거기서 일회용 페트병으로 물을 마시고 다시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모순이라 생각했다. 결국 텀블러를 가지고 제주도로 갔다. 역시나 무겁고 불편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아침에 넣어 놓은 얼음이 저녁이 되어서도 계속 남아있었다. 무더운 제주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도 10분도 되지 않아 얼음이 녹아 밍밍한 커피가 되지만 텀블러 속의 커피는 여전히 갓 잡은(?) 싱싱한 맛을 유지했다.

그 뒤로 일상에서 텀블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닫게 된 몇 가지 유용한 삶의 변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커피값을 확실히 절약할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얼음들이 잠깐의 음료를 차게한 후 버려진다. 이제 내 눈에는 수많은 에너지 낭비로 보인다.
▲ 커피를 마시고 남은 얼음은 텀블러에 넣는다. 지금도 수많은 얼음들이 잠깐의 음료를 차게한 후 버려진다. 이제 내 눈에는 수많은 에너지 낭비로 보인다.
ⓒ 고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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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가 상승률은 전 세계적으로 광기를 불러오고 있다. 뉴욕에 사는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 일반 식당의 베이글과 카페라테가 2만6000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지난 4월부터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도 가격을 인상했다. 기후 위기, 물가상승과 맞물려 앞으로도 물가는 전체적으로 올라갈 예정이라 한다.?

직장인 평균 커피 지출은 월 12만 원이라 한다. 개인적으로도 한 달에 평균 4~5만 원을 커피값으로 지출했다. 지인들과 카페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카페인을 보충하거나 콜라나 사이다처럼 설탕이 들어간 음료보다는 커피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지나 외부 활동을 할 때 한 손에는 꼭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커피를 사서 마시게 되는 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대량으로 사둔 콜드브루와 얼음을 텀블러에 넣어 모닝커피를 즐긴다. 그리고 외부에 나갈 때 얼음과 커피를 넣어 외출한다. 이렇게만 해도 외부에서 커피를 마실 일은 거의 사라진다. 시원한 음료를 사 마셔야 한다는 욕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차가운 음료, 습관적인 카페인 섭취 등의 욕구들이 집에서 미리 타 놓은 아이스 커피로 사라지자 더 이상 커피를 결제하는 일이 없어졌다. 물론 사람들과 함께 회의하거나 대화를 위한 카페는 여전히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미 커피가 텀블러에 남아 있다면 얼음을 좀 더 채우고 저렴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넣거나 다른 메뉴를 시키게 되었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물을 사 마시는 일이 아예 사라졌다. 특히 여행 중에는 물을 자주 사 먹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때 숙소에서 얼음을 가득 채워 나가면 반나절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 여기에 전시관의 음수대나 식당의 정수기에서 물을 다시 채우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여행중에도 텀블러는 요긴하게 쓰인다. 이렇게 물을 중간중간 보충하면 생수를 살 필요가 없어진다.
▲ 전시관, 식당에서 물을 보충하면 사먹지 않아도 된다.  여행중에도 텀블러는 요긴하게 쓰인다. 이렇게 물을 중간중간 보충하면 생수를 살 필요가 없어진다.
ⓒ 고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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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에 얼음을 가지고 다니면서 물을 채우면 편의점 생수 못지않게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얼음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 해도 대부분 외부에서 마시는 액체류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뜨거운 음료를 하루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 관점에서 텀블러를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어디서든 여름이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고 겨울이면 따뜻한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이 세상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는데 텀블러 속 세상은 최대한 느리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이러한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면 환경보호를 넘어 지구 에너지 생태계에 작지만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카페나 패스트푸드 점에서 버리는 얼음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단지 시원한 콜라를 마시기 위해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음료를 따른다. 그리고 잠깐 시원해진 음료를 마시고 나면 70%의 얼음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얼음을 버린다. 얼음을 버리면서 쓰레기를 버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차피 녹아 없어질 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음을 만드는 데에도 에너지가 소비되고 그만큼의 탄소가 발생한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얼음들을 폐기한다. 내 눈에는 이제 얼음이 아니라 수많은 에너지가 폐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항상 카페에 가서 남는 얼음은 그대로 텀블러에 담기로 했다. 가끔은 집에서 탄 커피와 카페 얼음에 남아있는 커피가 섞여서 커피 맛이 변하긴 하지만 그래도 유용하게 에너지를 재활용한다는 관점에서는 멋진 생각이라고 본다. 

나 하나로 세상이 변하진 않지만 주변이 변한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항상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채우면 외부에서 카페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 이제 항상 텀블러를 휴대한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항상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채우면 외부에서 카페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 고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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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시민대학에서 업사이클링 강의했다. 그때 수강생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미국, 중국에서 엄청나게 버려대고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봤자 의미가 없어요"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점점 환경 허무주의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수강생도 있었다. 빨대나 젓가락을 항상 챙겨서 다니면서 카페에서는 일회용 빨대 대신 본인 것을 사용하고 사람들이 정수기에서 일회용 컵으로 마실 때 텀블러를 사용했다. 그분을 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결국 텀블러 사용이나 환경 실천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회의적인 생각이 더 많아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의 범위도 적어졌을 것이다.

결국은 나 하나의 행동이 지구를 바꾸진 못하지만, 주변을 조금씩 바꾼다. 텀블러를 항상 갖고 다니며 유난(?)을 떨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한두 명씩 용기 내 텀블러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텀블아웃` 하면서 카페에서 함께 텀블러에 커피를 받거나 다른 환경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항상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일단 나부터 텀블러를 시작해보자.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면서 효과를 확인하면 주변에서 주목하기 시작한다. 내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친환경 빨대를 갖고 다니던 수강생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던 나처럼 말이다.

태그:#친환경, #텀블러, #일회용,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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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디지털 기기 추종자였지만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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