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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기자말]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설치한 관련 안내판 뒤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설치한 관련 안내판 뒤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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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을 전후로, '직장 내 괴롭힘법' 시행 3주년을 골자로 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9년 7월 16일부터 '근로기준법' 제6장의2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및 발생 시 조치 방법을 규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질환과 그로 인한 자살 등 노동자가 당면한 가장 큰 이슈들은 근절되지 않았다는 통계가 기사에 넘쳐난다.

지난 3년간 괴롭힘 유형의 대다수는 폭언(34.6%)과 부당인사(14.6%)이며, 상대적으로 영세한 제조업(18.0%)과 '태움'의 악습이 잔존하는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15.9%)에서 괴롭힘이 많이 일어난다고 고용노동부가 밝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갑질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2019년 44.5%에서 2022년 29.6%로 감소했지만, 그 심각성은 오히려 늘어났다(2019년 38.2%, 2022년 39.5%)고 밝혀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애초에 '직장 내 괴롭힘'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직장갑질119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등 법의 사각지대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는 한 줄이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통계자료에조차 잡히지 않은 이들은 "합법적인 차별"의 희생양으로 70여 년을 살아온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이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왜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을까? 상식적으로 볼 때, 규모 있는 사업장에 비해 지불능력이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들에게 어째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일까?

5인 미만 사업장

'5인 미만 사업장'의 정의부터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명시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일부 규정은 같은 법 시행령에서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법제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핵심적인 부분 상당수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1] 현행 법제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핵심적인 부분 상당수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 법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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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규정은 "최소한의 노동인권 보호"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규정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최소한의 휴식권과 직결되는 '주 52시간제'(법 제50조 및 53조)나 관공서 공휴일의 유급휴일화(법 제55조제2항), 연차유급휴가(법 제60조) 등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규정 상당수가 배제되어 있다.

이뿐 아니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해고사유의 제한(법 제23조 제1항)이나 그 서면통지(법 제27조)조차 강제성을 상실하고,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법 제28조 이하)조차 할 수 없다. 이러한 조항을 보고 있자면, 가뜩이나 사용자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는 영세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최소한으로 기댈 수 있는 버팀목마저 걷어차 버린 느낌마저 든다.

비단 '근로기준법'에서만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채용과정에서의 허위광고 등을 금지하는 '채용절차법'(30인 이상 사업장 적용), 최근 노·사 힘겨루기 장이 된 듯한 '중대재해처벌법'(2022년 현재 50인 이상 사업장,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 적용)과 같은 노동인권에 직결되는 법률이 단지 '사업장 인원'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인원에 따른 적용 범위 제한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도이다. 고용시장 유연화가 진전된 미국의 연방 공정근로기준법도 자원봉사자나 공공행정업무 종사자 등 노동 유형에 따라 적용 제외의 범위를 설정하고 있다. 일본이나 대만도 사업장의 업종 즉 일 자체의 특성에 따라 적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어, 사업의 본질이 아닌 형식적인 숫자만으로 판단하는 우리 법제에 비해 진일보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게다가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상시 근로자 수 산정'에 대한 내용도 의문투성이다. 시행령 제7조의2에서는 "법 적용 사유 발생일 전 1개월 동안 사용한 연인원을 같은 기간 중의 가동 일수로 나누어 산정한다(제1항)"면서도, 5인 미만 여부에 대해서는 제2항 각호에서 따로 '법 적용 기준에 미달한 일수가 2분의 1 이상인 경우'인지를 추가로 판단하는 다소 모호한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식업 등 영세사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파출 등 일용직을 많이 사용하는 달에는 5인 이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5인 미만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본질에 따라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제3의 요인에 따라 노동인권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는 방식이다.
  
사업장 능력 고려한 차등적용이라지만
 
지난 6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철운 공공상생연대기금 집행위원장이 공동고발운동의 사회적 성과와 과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지난 6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철운 공공상생연대기금 집행위원장이 공동고발운동의 사회적 성과와 과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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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동계에서 이러한 불합리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지난 1999년과 2019년, '근로기준법'의 적용배제조항이 헌법상 '근로의 권리'와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1999.9.16. 선고, 98헌마310 전원재판부)는 이들 주장을 배척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등적용이 기본권의 중대한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합리적인 처사라고 보았다.
 
⑴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체로 영세사업장이므로, 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준수할 만한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적용할 경우 사업장의 경제적 부담, 국가의 행정적인 근로감독능력의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⑵ 1953년 제정 당시 '근로기준법'은 상시 15인 이하 사업장에 대하여 적용제외를 두고 있었으나, 입법개선의 노력을 통해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되었으므로 일견 차별이 생긴다 하더라도 "점진적 제도개선으로 인한 부득이한 것"이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⑵의 논의야 현실적인 부분이므로 차치하더라도, ⑴의 논지는 일반화의 오류에 기인한 발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업은 과거의 '규모의 경제'보다는 특정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나머지를 모두 외주화하는 방법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단순히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하여 열악하고, 5인 이상인 사업이라 하여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국가의 행정적 근로감독능력의 부담 가중'이라는 이유는 말 그대로 행정편의주의적인 핑계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본권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차치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대감댁 하인'만을 기본권의 권리 주체로 '합법적으로 갈라치기'하는 지금의 법제는 국가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현 정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 52시간제도 개선'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등 노사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은 그야말로 '남의 일'일 뿐이다. 애초에 법에서 '기본권을 지켜 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면서, 안전한 일터라는 고차원적인 욕구는 차치하고 근로 시간이나 가산임금 등 생계 그 자체에 직결되는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점진적 개선으로라도 노동인권 보호 시작되어야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적용된 이래, 위 적용 제외 범위에 대한 해묵은 논의는 계속되어 왔으나 여전히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법리 싸움'에 기대어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실시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때문에, 그간 외면해 온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하여 점진적·단계적으로라도 확대하여 적용하려는 현실적인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4일 게재된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상시 5인 미만 사업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에서는 이러한 단계적 확대 적용방안을 '보호 필요성의 시급성'과 '사용자의 부담'을 고려하여 3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⑴ 먼저 가장 시급한 안건이면서도 사용자의 지불능력까지도 고려하여 최우선적으로 적용할 규정으로는 ①모성보호 관련 규정, ②'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관련 규정 그리고 ③휴업수당 규정을 꼽았다. 모성보호는 노동인권을 떠나 인간의 삶 그 자체에서 중대한 부분인 만큼 시급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나머지 두 규정은 생계유지를 위한 임금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다만 근로시간 관련하여서는 인건비 증가 등 현실적인 부분 또한 고려하여야 하므로, 가산임금 규정을 배제한 근로시간의 제한 내지는 전면적 규제와 더불어 국가의 경제적 지원대책 강구 등의 과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⑵ 김 교수는 2단계로 '휴식권' 관련 이슈를 꼽았다. 연차유급휴가와 같은 법정 복리후생제도부터 관공서의 공휴일을 유급으로 하는 법 제55조 제2항의 적용을 꾀하여, 장시간 노동 국가로 악명 높은 기존의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연차유급휴가 미사용수당이나 법정 공휴일의 유급 아닌 무급 보장 등 차등적용은 해외의 입법례에서 발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지양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또한 2단계에 포함되었다. 비록 소규모 사업장 내에서는 사업주에 의한 객관적인 조사나 이에 수반되는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등이 쉽지 않을 것이나, 이는 자율적인 조정 또는 중재제도 등 제3의 방식을 통하여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의 시급한 선결과제를 수행한 뒤, ⑶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고제한 규정까지도 적용된다면 더 이상 '사업의 인원'이라는 비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노동인권 보호가 차등 적용되는 이슈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근로기준법, #5인미만사업장, #노무사, #노동법, #5인미만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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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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